타이베이 음악 엑스포 초청부터 출발까지
You are Invited!
페이스북에서 만나 가끔 메신저로 이야기를 나눴고, 실제로는 딱 두 번 본 대만인 친구 ‘존’(John Huang, 黃俊豪)이 보낸 메시지를 받은 내 기분은 딱 날아갈 것 같았어요.
좀 유치하기는 해도, 한국인도 아닌 외국인에게 이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을 이보다 이븐하게 나타낼 수 있는 말은 제 수준에서는 없더라고요. 그와의 판타스틱한 인연에 대해서는 다음 글로 미뤄두고, 존이 힘써준 덕에 지난 9월 6일부터 8일까지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2024 Trendy Taipei’(이하, 트렌디 타이베이)에 초청받게 되었습니다. 음악 글로 버는 돈은 쥐꼬리, 다른 걸로 돈을 벌어 살아가지만 음악 관련 일 하는 게 꿈인 반백 에디터가 음악 행사에 초대받았다는 자체가 영광스러웠거든요.
이전에도 코로나 이전 2018년과 2019년 중국의 음악 전시회에 초청받아 기분 좋게 취재하고 시간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여러 가지로 쉽지 않던 차에, 존의 트렌디 타이베이 초청은 (이표현도 역시 유치하지만) 가뭄 끝의 단비 같았어요. 물론 이런 행사는 꼭 초청을 받아야만 참가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트렌디 타이베이는 대만의 음악적 역량을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에 뽐내는 동시에 음악 산업에 종사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벌이는 거대한 음악축제입니다. 당연히 일반인도 미리 신청만 하고나 티켓을 구매하면 여러가지 세션과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Invited’(초청)는 좀 다릅니다.
뭐 특혜가 있는 것도 아닌데,다르다는 게 좀 재수 없게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디어 또는 관련 업계 종사자로 초청을 받으면 행사 거의 대부분을 참관할 수 있는데다, 업계 관계자들과 음악을 주제로 이야기도 나누고 각 나라들의 트렌드를 알수 있으니 제겐 이보다 좋을 수가 없어요.
물론, ‘기자’로 초청받은 저는 행사의 리포트를 매체에 기고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아시아의 다양한 국가 음악 이슈를 바로 실제 필드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들을 수 있다는 건 음악 마니아인 제게 행복한 일이에요. 음악을 사랑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소통이 쉽지 않아도 행사 이후 그들과 즐기는 시간도 꽤 즐거워요. 항공료와 숙소까지 제공한다는 점 역시 대단한 메리트고요.
일단 트렌디 타이베이 1일 전인 9월 5일 입국, 1주일 후인 12일 출국으로 일정을 잡았고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그날이 코앞으로 왔습니다. ‘이 얼마만의 해외 취재야?’ 카메라 백과 캐리어를 들고 공항으로 가는 셔틀버스부터 심장이 쿵쾅거리네요. 비행기는 12시 출발, 10시30분 쯤 트렌디 타이베이 주최 측에서 예매해 준 건 대만의 국적 항공사 ‘EVA Airways’. 체크인 부스에서 바우처를 내미니 이런 답을 들었습니다.
여권과 이름이 다릅니다.
변경해 주셔야 하겠는데요?
자세히 살펴보니 제 이름 끝 자인 ‘Min’이 ‘Ming’으로 등록이 되어 있더라고요. 부랴부랴 항공사에 전화를 걸었더니 이름 변경에는 30분 정도 걸리고 50달러를 입금해야 한다고… 11시 20분쯤 변경되고 체크인이 끝나니 공항 내 방송이 나옵니다. "12시 00분 에바항공 ***편 탑승자 이정민 님 신속히 탑승구로 와주세요!!" 부랴부랴 수속을 끝내고 11시 40분쯤 비행기에 들어서니 갑자기 싸~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아… 나 환전 또 안했다.
현찰도 없는데...
일단 타이베이 타오위안 공항에 도착하면 트렌디 타이베이 주최 측에서 날 픽업할 테니 따로 돈이 들진 않겠지요. 가서 크게 돈 쓸 일이 없다 보니 ‘비행기 체크인하고 들어가기 전 현금 조금만 인출해 환전하면 되겠지’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내외에서 내가 쓰는 비용을 누가 내 줄 것도 아니고, 대만은 또 신용카드가 안 되는 곳이 많더라고요. 요즘 많이 쓰이는 해외여행용 트래블카드나, 현찰 역시 하나도 없는 상황. 이거 난감하더라고요. 면세구역 내에서 계좌를 이용한 환전은 안 되고 그럴 시간도 없었어요. 어쨌든 일단, 시간이 되어 일단 타이완으로 날아갑니다.
환전 생각은 어느새 허공으로~ 2019년 이후 워낙 저렴한 비행기만 타고 다녀서 그런지, 이코노미석에서도 이제 WiFi를 제공한다는걸 이제 알았어요. 에바항공 한정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30분 정도 와이파이로 메신저와 검색 정도 할 수 있도록 해주더라고요. 하늘을 날아가며 메신저로 '여행을 자랑질하는' 기분, 나름 괜찮더라고요. 뭐 중단되면 나름 쪼는 맛도 줄 수 있으니 럭키비키!
일단 그렇게 도착했고, 주최측 픽업 장소에서 중국 광저우 공연장 대표 캐런( Karen, 双冠)을 만나게 됩니다. 일단, 환전이고 뭐고 문제는 잠시 잊고 그녀와 인사를 나눈 후 양국의 뮤지션과 공연에 대한 이런저런 스몰토크를 나눴습니다. 공연장을 운영하고 퍼포먼스를 기획하는 입장에서 캐런은 'K-Pop 아이돌을 비롯한 다양한 한국 뮤지션의 공연을 기획하고 싶지만 중국 정부의 견제 때문에 쉽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갑자기 눈 앞이 뿌얘졌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현실 이런 것때문은 아니고, 엥? 안경이 부러졌네! 제주도 일주 중 안경을 잃어버려서 급하게 맞춘 건데... 별 충격을 받은 일도 없는데 그동안 학대당한건가? 갑자기 이 녀석이 왜 부러지지…. 급한대로 선글라스를 쓰기는 했지만 계속 선글라스를 쓸 수도 없고 테잎으로 감고 다니긴 너무 모냥이 빠져 난처하던 차에, 갑자기 캐런이 말했어요.
'立國眼鏡’라는 안경점 가봐.
숙소랑 가까워!
오? 대만에 자주 온다니 일단 믿어보겠습니다, 캐런! 일단 주최 측에서 잡아준 숙소에 체크인하자마자 ‘立國眼鏡’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가게에 들어서니 들리는 한국말, 오호! 한국 분이시네? 와… 카렌이 소개한 곳을 검색해 보니, 한국 유학생이나 교민들은 ‘권씨네 안경’이라 부르더라고요. 나중에 물어보니 캐런도 그냥 지나가다 간판이 보여서 이야기해 준거라고...
영어로 ‘안경 맞추고 싶다’ 찾아본 내가 민망할 정도로 당당하게 한국어로 ‘선글라스와 같은 도수로 해주세요!’라 말하니 얼마나 편하던지. 사연을 들은 사장님께 한국 계좌로 송금해 환전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이게 무슨 일이야 ㅎㅎ.
비행기표 이름이 잘못 되고 환전을 까먹고, 안경이 부러지는 이런 소동극은 이렇게 한 방에 정리가 됐어요. 절대 주작 아님! 다른 사람 대만 여행 10번쯤 해도 겪을까 말까 한 일을 한 큐에 겪어버리다니 시트콤 대본이라 해도 너무 작위이잖아요. 만약 내가 시트콤 PD인데 작가가 이런 대본 써오면 ‘너무 작위적이잖아!’ 던져버릴 텐데…. 결론이 나름 해피엔딩이라 다행이었습니다. 휴…
대만 트렌디 타이베이 투어는 첫날부터 이리 요란하게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요? 점점 기억이 흐려지기 전 트렌디 타이베이에서 생긴 추억들을 시리즈로 올려보렵니다. 기대까진 아니더라도, 꾸준히 읽어주시면 고맙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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