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페이에서도 Music & Beer Life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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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시간은 오후 세 시 반. 일단 안경이 부러진 채 ‘Marriott Bonvoy’ 호텔에 체크인한 다음 바로 ‘立國眼鏡’에 가기 위해 나오는데 ’2024 Trendy Taipei’(이하, 트렌디 타이베이)의 담당자이자 친구인 ‘존’(John Huang, 黃俊豪)과 마주쳤어요. (‘立國眼鏡’(이하, 권씨네 안경)이 어딘지 와 한국에서 대만에 오기까지의 우여곡절을 확인하시려면 이전 글 ‘Trendy Taipei, 출발부터 시트콤’을…)
안부를 나누고, 나의 모험 이야기를 잠깐 들은 존은 키득키득 웃더니 ‘어, 오후 6시 바비큐 파티라 여기서 참가자들 밴으로 바로 갈 건데…어차피 너 혼자 길 잘 찾을 수 있지?’하며 주소 보낼 테니 바로 오라 알려줍니다.
구글맵을 찍어보니 권씨네 안경까지 거리는 자전거로 얼추 삼십 분. 올해 4월 타이베이*가오슝 여행 때 가입하고 설치한 ‘U-Bike’ 앱을 다시 한번 활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U-Bike는 타이베이와 가오슝 등에서 탈 수 있는 따릉이 같은 공유자전거예요. 기어도 있어 생각보다 잘 나가기도 하고, 도시 곳곳에 있어 여행하며 탈만 하더라고요.
마침, 날도 좋아서 선글라스를 쓰고 다녀도 어둡지 않고… 그렇게 안경을 맞추고 Uber Taxi로 바비큐 파티 장소 부근 ‘쑹산츠유궁으로 향해봅니다. 일본이나 태국, 타이완 여행을 다니면서 택시를 별로 타 본 일이 없는데 아무래도 힘든 일도 해결되고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택시 안에서 보는 야경도 그림 같더라고요. 택시로 도로를 달리다 보니 어느새 쑹산츠유궁 앞에 도착.
200년 전인 1753년에 지은 곳으로 도교에서 바다를 관장하는 마조(媽祖, Mazu) 여신을 모신 이곳은 원래 이 일대가 어시장이라 생긴 사원이라 하대요. 사당에 들어가니, 참가자들이 중국 문화권 사람들이 많아서 그럴까요? 체크인하며 인사를 나눈 참가자들이 기도를 드리거나 사당을 구경하고 있었어요. 저도 잠시 안을 구경하며 짙은 향냄새를 맡다 일행과 함께 오늘의 최종 목표인 ‘라오허제 야시장’으로 향했습니다.
이전에도 느꼈지만, 대만의 야시장은 여기저기 흥미로운 파티가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중국 문화권답게 컬러도 화려한 데다 쇠고기 스테이크에 떡, 버섯구이 등 별의별 구이와 볶음이 죄다 있었는데요. 예전부터 있던 건지는 몰라도, 이제 한국 호떡까지 좌판에 있더라고요. 중간쯤 있는 ‘호지아오빙’(胡椒餅)은 심지어 4년 연속 미슐랭 ‘빕 구르망’에 선정되기도 했다고…
이곳을 헤치고 간 우리의 목적지는 ‘路边 烤肉 The Wild BBQ’였습니다. 타이베이 사람들에게 유명한 집인가 본데, 외국인과 타이완 현지인들의 리뷰는 꽤 있더라고요. 이미 트렌디 타이베이 측에서 가게를 통으로 대여해 놓아 메뉴를 보거나 할 필요도 없었어요.
이미 저는 초 흥분 상태. 이미 들어갈 때부터 코를 벌름벌름하게 한 향긋한 숯불 내음 나는 꼬치 향부터 좋더라고요. 처음 만나 뻘쭘하지만, 음악을 매개로 모인 사람들과 술을 마신다니… 영어는 잘하지 못해도 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는 자체만 생각해도 이미 즐거움 함량 초과였어요. 제 테이블은 이미 차에서 인사하며 친해진 캐런과 말레이시아의 공연 기획자 마크(Mak). 페스티벌 기획자 MC와 부산에서 온 공연 코디네이터 권 경애 님, 필리핀의 페스티벌 코디네이터 니콜(Nicole)과 홍대 상상마당에서 공연 기획을 하는 정주란 님 구성으로 술자리를 시작했습니다.
잠시 셀프 디스이자 고백을 하자면. 아마 이번 트렌디 타이베이 초청 인원 중 제가 영어를 제일 못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존과도 메신저로 이야기하며 번역기 등 다양한 도움을 받아 이미 친분이 생긴 상태에서 실제로 만난 만큼 제 영어를 이해하려 노력할 만큼 친분이 쌓인 케이스. 제 수준은 여행지 가서 길 물어보고 음식 시키고, 그냥 안부나 묻고, 음악적인 내용으로 이야기를 조금 나눌 수 있는 정도거든요. 그나마 잦은 여행과 출장으로 조금 늘었던 2019년 이후, 코로나 사태를 지나며 그나마 알던 것도 까먹어 제 영어는 영 똥이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술자리가 조금 무르익자, 존이 나한테 다가오더니 슬쩍 병 하나를 찔러주며 웃습니다.
응… 참이슬?? 메뉴판을 슬쩍 보니 소주가 따로 없던데… 이게 웬 거냐고 존에게 물으니, 아시아권 K-Pop 열풍덕에 이제 ‘소맥’은 대부분 알고 있다 하더라고요. ‘Francis 너 한국에서 왔잖아? 네가 소맥 만들어주면 좋아할 거야’라 말하며 씩 웃습니다. 아무래도 영어로 소통하는 만큼, 처음 본 사람이 영어를 잘 못 하면 대화에 소외될 수밖에 없잖아요? 그나마 좀 친해지면 그래도 내 말을 들어주려고 노력할 거잖아요. 번역기 타이핑하는 시간도 참아주고… 아마 ‘소맥이라도 만들어주며 사람들과 친해지고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봐’라는 존의 배려가 아니었을까요? 짜식… 그렇게 소맥 제조에 시동을 걸 즈음 소프트 블루 헌팅캡을 뒤집어쓴 첨 보는 귀여운 대만 청년이 내 앞에 앉아 인사합니다.
Francis 반가워. 나 Boris야. 미안해.
지난 글에서 비행기 예약명 사고가 났다고 했죠? 제 비행기를 예약해 준친구가 내 앞에 앉은 존의 동료 보리스(Boris)였어요. 제 앞에 앉은 보리스가 미안하다며 자기 잔에 소맥을 만드는데… 엥? 소맥 비율이 1:1이라 얼른 말했어요. ‘보리스, 소주가 좀 많은데? 이거 내가 마시고 다시 만들어줄게’ 그러자 그가 절 말립니다.
아냐. 나 강한 사람이야! 너한테 미안한 것도 있고…*
(*과 ** 는 각주에 설명이 있어요 ㅎ)
내가 듣기로 타이완 MZ들이 술을 그다지 잘 마시지 못한다고 하던데, 뭐 이런 거 한두 잔이야…일단 신경 끄고 사람들과 어울려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존이 다시 내게 와 ‘헤이 Francis. 네가 Make a toast 한번 해봐.’라며 내게 건배를 권했어요.
영어도 못 하는데 머리는 새하얘지고… 그냥 ‘Cheers’ 하자니 재미없고 영어 못 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힐 것 같고… 고민하다 지나가는 사람 등판 티셔츠에 적힌 문구를 보고 자신있게 외쳤어요.
No Beer, No Life!**
다들 취해선지 몰라도 그 건배사가 의외로 확 먹혔고, 그 이후는 사람들과 깔깔거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답니다. 존의 작전 성공! 처음 보는 참가자들도 조금씩 내게 말을 걸어주기 시작해 ‘앞으로 즐거운 5일이 되겠구나’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어요. 그제야 ‘路边 烤肉 The Wild BBQ’의 음식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먹고 싶었지만 모두가 원하는 인스타 샷을 위해 양보하다 보니 이미 식어버린 꼬치…. 그래도 나올 때부터 어마어마했던 숯불 향이 아직도 남아있어 맛있게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런데 라오허 야시장은 밤 11시에 끝이더라고요. 이제 시작하는 기분이었는데…… 대만 야시장 문화가 활발해 보여도 은근 모범적이에요.
‘路边 烤肉 The Wild BBQ’ 부근인 라오허 야시장 후문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다들 각자의 방으로 해산. 물론 전 흥분을 못 이겨 다시 맥주 몇 캔을 더 사와 마시다 잠을 청했어요. 정말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고마워 존과 보리스, 그리고 오늘 새로 만난 친구들. 앞으로 이 말 자주 하게 될 것 같아.
*과한 소맥을 마신 보리스의 최후
다음날 존에게 물었어요. '보리스가 안보이는데, 다른 곳에 일하러 갔어?'
존: 'He went to the hospital. haha...
**No Beer, No Life의 부작용
다음날부터 유독 제게 맥주를 권하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심지어 한분은 맥주 캔을 건네며 이리 말하더군요.
'I found your life at a convenience st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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