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의 단점을 닮았다
4년간의 방송생활
14년간의 기자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나에게
천직이라고 말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오랜 벗처럼 인사를 건네고
거대한 기자 간담회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거침없이 질문하는 기자
나이가 지긋한 어느 단체의
회장을 만나도
반말을 섞어가며 노련하게 말을 건네는 나
어떤 사람들을 만나도
어려워하지 않는 나를 사람들은
참 부러워했다
그러나 이내 나를 오래 알고
집안 사정까지 알정도로 가까워지고 나면
나의 지리멸렬한 소심함과
낯을 가림에도 그것을 숨기려고 애쓰는 과장
데스노트 열 권쯤은 가졌음직할
극강의 소심함에 놀라곤 한다
그렇다
심지어 나는 아주 친한 20년 지기 친구들도
일대일로 만나지 못한다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삼인 이상 모객 시 만나자”
심지어 여자들은 힘들다는 셋이 놀기를
나는 가장 잘한다
혈액형 나누기가 어쩌고 저쩌고라지만
모두 모여있을 때
AB형이 갑자기 나가 버리면
B형은 다른 약속을 잡고
A형은 “쟤 나 때문에 저러지?”하며 노심초사하고
O형은 A형을 달랜다는 그런 얘기에
A형이 딱 나다
연애 6년에 경혼 생활 14년
20년간 알아온
남편과는 싸우고 말 안 한 시간이 최장 4시간
누구와도 어색하게 감정을 상한채 시간이 흐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큰 아이는 나의 이 장점을 닮아 몹시 밝다
어릴 때는 아빠를
닮아 말이 없고 조용한 성격이라고 생각했지만
동네 친구를 만들어 주려는 나의
주도면밀한 노력에
내 아이는
점차 밝아 밝아 밝아져 형광등 같은 성격이 됐다
동네 놀이터에서 놀다가도
아는 할머니가 지나가면 손으로 나팔을 만들어
할머니를 불러 세운다
“할머니 다리 괜찮으세요”
어찌 아는 분이냐고 물으면
친구네 할머니인데 얼마 전 수술을 하셨다며
오지라퍼의 면모를 보인다
뿐이랴
여자 아이들에겐 한없이 상냥하고
남자 친구들에겐 운동 잘하고 키 큰 인기 친구다
그런데 이아이는 나의 단점도 빼다 박았다
알수없는 곳에서 소심하기 이를데 없는
내 아이는
남의 잘못을 반드시 기억하고 끄집어낸다
집에오면 혼자 속상해 하고
파르르 화내고 사과하기도 잘한다
어린이집에서 오랫동안 내 아이를 본 선생님은
상담시간에 뼈를 때리는 말씀을 하셨다
“아이들이 정말로 지한이를 좋아하는데
키도 크고 운동도 잘하고 성격도 좋은 지한이가
왜 이렇게 친구들에게 노심초사하는지 모르겠어요
한번은 피구를 했는데 피구를 하다
친구를 공으로 때렸는데
세게 때린것도 아니고 친구가 화낸것도 아닌데
따라다니면서 사과를 하더라구요
그 친구도 저도 그만하라도 말했는데도
한시간 내내
미안하다면서 친구를 따라다녔어요”
착하다고 말하기엔 집요한 소심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아이의 소심함과 연연함은
수많은 대목에서 드러난다
누구와 싸우든 사과하지 않고
아니 어떻게든 화해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 성격은 소심하다고 하기도 이상하고
이제는 관계불안? 같은 거창한 걱정까지 하게
만든다
코로나19로 무기한 방학에 돌입한
내 아이는
매일 하루를 채우던 수영을 못하게 되면서
몸부림을 쳤다
그도 그럴것이 선수반에서
하루 세시간 혹독한 수영을 하고
선수반 형 동생 누나들과
동료애를 녹이며 신나던 하루를
통째로 날렸기 때문이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 세명과 매일 4시
모이기 시작한 것은 그쯤이었다
엄마들도 잘 아는 동네에서도 순한
그 친구들과 모이기 시작한 내 아이는
이냐 며칠만에 동네 친구 수명을 섭외해
꽤큰 모임으로 규모를 키웠다
경도 발목잡기 술래잡기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엄마가 안 보이면 친구 핸드폰으로 게임하기
에 푹빠진 내 아이는 동생을 무삼 델고 다니며
나름 즐거운 방학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내 아이가 무척 화가나서 들어왔다
4시부터 6시까지 나름 정해진 시간에 놀던 아이가
5시 조금 넘어 들어왔기에
재택 근무를 하고 집에 있던 나는 놀랐다
씩씩거리며 정황을 말하는 아이옆에서
더욱 흥분한 둘째 아이는 추임새를 넣어가며
신이나(?) 보였다
“내가 맨날 참았어요
a는 정말 내 동생한테 막 말을 해요
그리고 늘 자기 맘대로 해서 애들도 싫어해요
나는 몇번 그러지 말라고 말했는데
오늘은 내 동생한테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내서 내가 같이 소리를 지르면서
니동생도 아닌데 왜 내동생한테 그러냐고
너 그럴거면 이제 여기 나오지마
나는 너랑 안놀거야 하고 화냈어요
그래서 a가 난 들어갈래 하길래
그래 사라져 버려 하고 말했어요”
못됐게도 난 여기까진 좋았다
친구에게 화를 낸걸 혼내야하나 싶었지만
동생을 위해 어벤져스가 된 큰 아이를 칭찬하고
싶었다
그것은 워킹맘으로 늘 동생을 큰아이에게
맡기는 불안함이 내재된 고마움이었을수도
어쨌든 거기까지 즇았다
친구에게 화를 냈지만 동생을 위해 화를 낸 것
그리고 통쾌하게
말한 것 모두 나는 좋았다
그런데 이어진 말이 가관이었다
“그런데 a가 가고 났더니 미안한거에요
그래서 전화를 했는데 a가 전화를 끊고
전화기를 꺼버렸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너무 답답해서
a네 엄마한테 전화했어요
그리고는 이모 제가 a가 제 동생한테 화를 내서
좀 심한 말을 한것 같아요 너무 미안해서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안 받아서
제가 미안하다고 좀 전해주세요
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a가 전화왔더라구요
그래서 화해했어요”
아뿔싸
화가난 친구에게 계속 계속 전화를 한 내 아이
남편과 싸우면 받을때까지 전화를 하던 내 모습이다
“아우 화낸데서 끝냈어야지
너는 졌어
화내고 끝내야지 전화했으니까 너는 졌다고”
화가나서 진심이
나와버렸다
좋은 부모는 잘잘못을 가리고
친구에게 사과했으니 잘했어 라고 하려나
솔직하고 못되먹고 경박한 나는
내 아이가
나와 똑닮은 소심함과 연연함으로
일을 망쳐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요 나는 화해하는게 좋아요
마음도 편하구요”
“그건 진짜 화해한게 아니야
니가 마음편하려고 친구의 마음상태를 생각하지 않고 니 마음대로 사과하고
니가 편한시간에 화해한 거잔아
그건 사과가 아냐 이기적인거지”
아이에게 말하고 있었는데 분명 그것은 나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
내 마음편하려고 지금까지 화해를 강요했구나
집요한 사과가
타인을 괴롭혔겠구나
강요된 화해는 이기적이었겠구나
아이가 이해했을까
그러나 나는 분명히 이해됐다
나의 잘못된 사과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