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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속의 레터 Oct 04. 2021

03.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한 자의 말로

28세, 이제는 좋아하는 일을 하렵니다.

퇴사를 했다. 그리고 백수가 되었다. 돈이 떨어져간다.. 큰일이다. 



당장 이직할 곳을 알아봐도 시원치 않을 마당인데 갑자기 왜  연극 타령이냐고? 



그야 당연하다. 화살을 제대로 쏘려면, 과거에 뭘 배웠는지, 짚고 넘어가야 하기 때문.



이 이야기는, 홀로 고독한 끝장토론을 벌인뒤... 인생 재설정에 성공한 (인생이 성공한 건 아니다) 28세 백수의 이야기를 담았다. 







경희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했다.



여러 무대에 섰고, 졸업공연에선 주인공도 했었더랬지. 그때 나에게 친구들이 물었다.



“왜 연극을 해?”



대답은 한결 같았다. “몰라, 그냥 좋아서”



이제야 그 대답을 알 것 같다. 그건 ‘살기 위해서’ 였다.



유치원 시절부터 1년 내내 왕따를 당했던 나, 이유는 “착한척을 해서” 였다.



그 친구는 아이들마다 돌아다니며 “쟤랑 놀지마” 라고 했고, 아이들은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 한마디에 나를 멀리했다. 당시 7살이었는데도 많은 장면들이 생생히 기억나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억울했나보다. 



그때부터였을까, 밝았던 나는 까칠해졌고 예민해졌다.



돌이켜보면 그냥 인복이 없었던 것 같다. 사촌언니의 지독한 괴롭힘. 어른들에게 돌아온 말은 “동생이니까 참아라.”



초등학교 내내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2학년 때 선생님에게 들은 한마디


“니 성격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







중고등학교는 더욱 지옥이었다. 친구는 있었지만, 학원 뺑뺑이와 야자에 시달린 시간.



책을 읽다가 야자시간에 걸려서 책으로 맞은 적도 있었다. 책 읽어봤자 대학가는데 도움 안된다나 뭐라나.


남들은 학창시절 기억이 좋다는데, 왜 나에게만 유독 세상은 가혹한 걸까? 생각하곤 했다.



나에게 학교란 ‘마음의 감옥’ 일 뿐이었다. 






인공 호흡이 필요했다. 그래서 연기를 했다. 거기엔 3가지 특장점이 있었다.



1. 캐릭터의 입을 빌려, 하고픈 말을 할 수 있다.


대본 속 캐릭터들은 각자의 아픔이 있지만, 반드시 이겨내고 행복해진다. 그게 좋았다. 



슬픔을 쏟아내도, 연기를 할때만큼은  모두가 집중해서 이야길 들어주었다. 그게 좋았다.



어른이 울면 나약하다 보여지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맘껏 울 수 있는 직업. 그게 배우라서 좋았다.



2.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다.


핀조명이 켜지고 무대에 또각또각 올라가면, 모두가 나를 바라봐준다. 그게 좋았다.


“여러분 저 여기 있어요.” “제발 저 좀 봐주세요” 외치지 않아도 나를 봐주니까.


세상에 내 자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무대에서 망큼은 자리가 있었다.



3. 동료가 있었다.


같이 호흡하는 동료. 함께 연기하는 동료.


대사를 주고 받고 눈길을 주고 받는. 그래서 외롭지 않았다.





연기는 존재였다. 


세상에 내가 존재함을 알릴 수 있는 유일한 도구. 돌이켜보면, 연기가 나를 살렸다.



(갑작스럽지만, 분위기 전환을 하기 위해 귀여운 이모티콘 씀)




지금은 어떠냐고?



연기는 그만뒀지만, 가야할 길은 조금씩 보인다. 어쩌면 세상에 내 자리가 있을지도 몰라 - 하는 작은 희망의 새싹이 보인달까,



연기로 생명을 구했듯, 나 또한 사람들의 마음을 심페소생하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




게다가 - 내 안의 깊은 슬픔 덕택에 얻은 것들도 있다.


바로, 글쓰기와 세상에 대한 관심.






쓰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기 때문에 매일 글을 쓰다보니, 잘쓴다는 평을 받으며 회사에 스카웃 됐더랬지.



표정이 어두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질 못하고,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봉사활동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모두 내 친구 슬픔이 덕분이다.


(슬픔은 나의 친구!)




사랑의 시작은 ‘인정’이였던가. 나는 슬픔을 인정한다.



남들이 청승떤다 해도 뭐 어때, 세상에 슬픈 사람도 있는 거지 뭐.



슬픈 사람들만 할 수 있는 멋진 일들이 지구 어딘가에 있겠지 뭐.





앞으로는 나 같은 사람들을 도우며 여생을 살아가야지.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소통하고, 사랑해야지.


세상 모든 사람들이 편안했으면 좋겠다.


여유가 가득하고, 모두가 따스한 심장을 가진 세상.


슬픈 어른들이 “나약하다”고 손가락질 당하지 않는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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