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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속의 레터 Oct 18. 2021

04. 젊은 백수의 춤바람 (ft.스트릿 우먼 파이터)

28세, 이제는 좋아하는 일을 하렵니다


요즘 즐겨보는 엠넷 댄스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의 배틀 장면을 보면 아래와 같은 대사가 자주 출몰한다. 


"너꺼해! (상대방 페이스에) 말리지마!" 


요즘 인생을 살면서 위 대사의 중요성을 절절히 깨닫고 있다. 


(고작 28년 살았습니다. 죄송)


특히 취미로 현대무용을 배우면서부터. 






프리랜서, 백수가 될 수록 삶의 중심을 잃기 쉽다. 내 인생은 덜그덕 거리고 있었고, 단단한 중심을 잡고 싶었다. 


"몸이 단단해지면 마음도 단단해지지 않을까?" 현대무용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열심히 무용 학원을 다니던 어느날, 실수로 안무를 틀렸다. 정말 잘하고 싶었는데... 그날은 마침 예쁜 무용복도 새로 산 터라, 뭔가를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흠...그때부터였다. 춤이 망하기 시작한게. ^^




"어, 이 다음 동작 이거 맞나? 또 틀리는 거 아냐?" 걱정하느라 현재의 동작에 집중하지 못하게 됐다. 머릿속엔 미래의 일어나지 않은 실수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있지?" 춤추다 말고 계속 남들을 흘끔흘끔 쳐다봤다. 잘추는 사람들을 보자 질투도 나고 승부욕도 생겼다. "뭔가 보여줘야 한다" 는 생각에 오버를 하기 시작했다. 



수업이 끝난 후, 찍은 영상을 돌려봤고... 결과는 처참했다. 



마치 숙제를 뒤늦게 하는 아이처럼 아둥바둥 애쓰고 있는 내가 보였다. 즐겁자고 시작한 무용이었는데, 즐거워보이지도, 행복해보이지도 않았다. 



남들을 힐끗힐끗보며 잔뜩 오버하고 있는 내 모습이, 



창피했다. 






다음날.


오늘은 틀려도 좋으니 내 몸에만 집중해보자 결심했다. 



이 순간의 동작에만 집중해서 디테일을 살리기로 결정했다. "다음 안무를 틀리건 말건. 알빠여?" 자세를 갖기로 맘 먹었다. 



신기했다. 분명 다음 동작을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레 몸이 움직였다. 자신감이 붙었고,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가사 뒤에 숨어있던 드럼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어? 이 음악에 원래 드럼 소리가 있었나? 재밌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뿐만 아니라 동작이 잘 안되는 이유를 알게 됐다. 그건 <엉뚱한 곳>에 힘을 주고 있어서 였다. 



가령, 턴을 돌 때 휘청 거리지 않으려면 복부에 힘을 줘야 하는데, 엉뚱하게 종아리에만 힘이 잔뜩 들어갔다거나, 엉덩이에 힘을 주고 점프해야 할 타이밍에,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과거엔 힘을 주어야 할 때와 주지 않을 때를 구분하지 못했었다. 


쓸데 없는 곳에 힘을 잔뜩 주느라, 정작 필요한 곳에 에너지를 주지 못해 지치곤 했다. 


이상하게 자꾸만 인생이 꼬인다고 느낄때가 많았다. 마치 그날의 춤처럼.


엉뚱한 곳에 힘을 주니, 에너지 분배가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못했고,  몸은 비틀거리기 일쑤. 


진도가 느려도 좋으니 딱 한번만 내 몸에 집중해보자! 맘 먹었다. 





"아하? 이 동작에서 몸이 휘청거리지 않으려면 오른쪽 허벅지에 힘을 주면 되네?" 


"오! 턴을 할 땐, 다리가 아니라 복부에 힘을 줘야 하는구나!" 


남들을 의식할 땐 전혀 신경쓰지 못했던 내 몸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뭐랄까... 쫌 오글거리긴 하지만... 비로소 내 몸의 주인이 된 기분..?


그날, 처음으로 턴을 돌면서 비틀거리지 않았다. 






촬영된 결과물을 보니, 어제와 확연히 다른 '매력적인 댄서'가 서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일관성 있게 춤을 추는 한 여자가 보였다. 누가 뭐래도 즐거워보였고, 몰입해 있는 게 느껴졌다. 과장하지도, 오버하지도 않았지만 동작 하나하나가 섬세하게 보였다. 



"이거구나." 



비로소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서 댄서들이 외치던 말. "너꺼해! 남한테 말리지마!" 가 무슨 말이었는지 알게 됐다. 



그날, 난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춤"을 췄다. 






우리는 살면서 타인의 페이스에 참 많이도 휘말린다. 


"저 사람보다 잘해야 할 것 같고." "남들은 나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것 같고." "나만 뒤쳐지는 것 같고." 


그렇게 의식하다보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거기서부터 악순환이 시작된다. 



'억지로 뭔가를 하려고' 애쓰게 되고, 오버를 하게 된다. 나 자신의 페이스를 잃게 되고, 자꾸만 실수를 하게 된다. 그러면 마음은 더욱 조급해지고, 더 잦은 실수를 하게 된다. 



긴장해서 자꾸만 안무를 저는 댄서처럼, 가사를 까먹은 랩퍼처럼, 내 인생의 춤도, 랩도, 자꾸만 절게 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내꺼를 하는 것". 



남이 왁킹을 한다고 해서 힙합을 버리고 왁킹을 할 필욘 없다. 아이키가 인기가 많다고 해서 아이키를 따라할 필요도 없다. 남이 환호를 받았다고, 조급해져서 홧김에 오버할 필요도 없다. 



일관성 있게 내 춤에 집중하면 된다. 그러면 된다. 누가 뭐래도 나의 속도로 춤을 즐기면 된다. 



그러면 힘의 '강약조절'도 자연히 이루어진다. 



"아! 내가 지금 엄한 곳에 힘을 주고 있구나." 냉철한 인지의 순간이 찾아온다. 힘을 주어야 할 곳과, 힘을 빼야 할 곳을 직시하게 된다. 




그렇게 비로소 내 춤을 추게 되면, 매력적인 한 인간이 탄생한다. 




... 이렇게 멋들어지게 말하고 있지만, 언젠간 다시 길을 잃게 될 것이다. 나는 불완전한 인간이니까. 


또 다시 길을 잃고 휘청거리며 오버하는 춤을 추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아니, 반드시 올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틀려도 괜찮여. 알빠여?" 자세로 다시 집중하면 된다. 


내 춤은 언제나 내 안에 있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다시 내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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