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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속의 레터 Nov 03. 2021

06. 28살에 배우라는 꿈.. 너무 늦었나요?

경희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나왔다. 배우라는 꿈을 품고. 하지만 나는 겁쟁이였다. 



사실은 배우가 너무 하고 싶었는데, 아무에게도 떳떳이 말하지 못했다. "야 배우는 힘들어" "너 안예쁘잖아" 같은 소리를 들을까봐. 그래서 가족들에게도 틈만나면 "그냥 한번 해보는거야. 예술 기획 회사 들어가지 뭐." 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대답했을 때, 안심하는 가족들의 얼굴을 보면 마음은 더 착잡했다. "역시, 배우는 안하는 게 좋겠어." 중얼거렸다. 



하지만 내 삶은 언행 불일치의 연속이었다. 말로는 "예술 기획 할거라서 그래" 라고 대답하면서도 매일 공연을 하고 다녔고, 각종 공연을 보며 대학로를 돌아다녔다. 졸업 공연 '한 여름밤의 꿈'에서는 무려 주연 '허미아' 역할도 했다. 



하지만 스스로를 계속 의심했다. "난 안될거야." "굶어죽으면 어떡하지?" "평생 무명배우로 살다가 돈 없는 독거노인이 되면 어떡하지?" 같은 망상으로 스스로를 괴롭혔다. 



스스로에게 가장 실망스러웠던 점은, 내가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두려워만 하다 포기했다는 점이었다. 그때 내 나이 25.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린 나이였는데... 나이가 너무 많아서 배우를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진작 시작할걸.. 대학생 때, 아직 여유가 있을 때 시작할 걸.. 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멈출 수가 없다. 



내 나이는 현재 28살이다. 이제 곧 29이 된다. 30이 다가옴을 느끼자 처음으로 느껴지는 조급함. 더이상 나, 어리지만은 않구나. 계속 이렇게 무모한 도전을 해도 되는걸까? 내 안의 두려움이 또 속삭이기 시작했다. 



배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가장 먼저 부모님께 죄책감이 든다. 그리고 내 꿈의 무게가 너무나 두렵게 느껴진다. 어떤 배우는 막노동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더라... 10년의 무명을 알바로 버텼다더라.. 같은 말을 들으면 공포심까지도 느꼈다. 내가 그동안 인생을 참 편하고 쉽게 살았구나.. 하는 깨달음도 함께 왔다.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익숙해져 있는 것을 버려야 한다. 그 말의 무게를 처음으로 느끼게 됐다. 오랫동안 끙끙 앓았고, 결국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좀 계획을 세우고 회사를 나왔어야 했는데... 도저히 견디기가 힘들어서 무계획으로 회사를 뛰쳐나왔다. 매일 지속되는 야근과 성과 압박에, 생각할 시간 조차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결정이었던 것 같다. 모든 어른들이 그걸 다 버티며 살아가는건데.. 나는 왜 이리 유아기적 행동을 했을까? 심지어 계속 프리랜서 - 인턴 생활만 하다가 처음으로 얻은 정규직 직장이었는데... 겨우 5개월 다닌 회사였기에,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 



처음으로 느껴지는 숨막히는 공포감. 우선, 월세는 어떻게 해결하지? 라는 생각에 손이 벌벌 떨렸다. 우선, 엄마가 생일 선물로 주신 구찌백을 팔았다. 눈물이 났다. 구찌백이라서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엄마가 주신 선물을 팔아야 한다는 점이 가슴 아팠다. 



총 50곳이 넘는 곳에 아르바이트를 넣었지만 모두 떨어지고 딱 1곳만 연락이왔다. 코로나로 인해 경제가 어렵다는 것을 처음으로 절실하게 체감했다. 주구장창 온라인 마케팅 일을 해왔고, 잡을 쉽게 잡아왔던 만큼 "코로나라서 경제가 어렵다고? 잘 모르겠는데?" 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 너무 재수 없었다. 한대 때려주고 싶다. '학벌이 좋은데 왜 28살에 알바를 구하냐,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비로소 세상이 정글같다는 걸 느꼈다. 온실 속 화초로 편하게 자란 내가 부끄러워졌다. 



겨우 구한 아르바이트는 2달 동안 데이터 라벨링을 하는 아르바이트였다. 고작 2달.. 앞으로의 생계는 어떻게 해야하지? 또 막막해졌다. 나 경희대학교 나왔는데.. 공부도 잘했고 마음만 먹으면 좋은 회사도 갈 수 있고 폼나게 살 수 있었는데.. 나 왜이렇게 됐지? 라는 생각이 들며 스스로가 끝없이 한심해졌다. 그렇게 동굴로 들어가고 있던 찰나, 



침대에 누워 자기계발 인플루언서인, 일헥타르님의 인스타그램을 보게 됐는데 이런 문구가 쓰여있었다.



성공은 형편없는 교사다. 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실패에서 나온다. 



솔직히, 처음 봤을땐 '엥?'싶었다. 그래도 한번 뿐인 삶, 성공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실패는 인생이 망한다는 징조 아닌가... 하지만 묘하게 위로가 됐다. 



괜히 감성에 젖어서 덧글을 남겼다. "안녕하세요, 저는 28살에 배우가 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알바도 다 떨어지고 한 면접에서는 '이 나이 먹고 아직도 알바하냐' 라는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실패하는 게 두려워 도전조차 못했던 배우라는 오랜 꿈에 도전하려고 합니다. 큰 위로가 됐습니다." 라고. 



그랬더니, 생각지도 못했던 짧고 굵은 답변이 왔다. "큰 사람 되려고 하시나봐요. 응원합니다." 이 짧은 한마디에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나에게 필요한 건 알바도, 돈도 아니고, 단 한 사람의 응원이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거기에 힘을 입어, 동생에게 솔직한 심경을 고백했다. 배우가 되기로 했다고. 회사를 때려쳤다고. 하지만 너무 두렵고 괴롭다고. 그래도 한번뿐인 인생, 이번에는 이걸 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동생은 묵묵히 듣더니 한마디를 해줬다. "걱정은 언니가 다 할테니까, 나는 걱정 안할게. 대신 나는, 확신만 할게. 언니는 배우가 될거야." 라고. 그리고 세상에나, 인스타그램에 나 몰래 팬 계정까지 만들었다. 





이게 뭐라고, 괜시리 눈물이 났다. 가족이란 건 참 든든한거구나. 용기내서 말하길 잘했어.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응원해주는데, 뭣하러 고민하고 두려워했을까.. 싶었다. 



또한, 어떤 유튜브에서 봤는데 '선언하기'를 하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래서 나 또한 인스타그램 지인들을 상대로 '배우 출사표'를 던졌다. 솔직한 생각과, 사진 하나를 업로드. 그랬더니 연락 끊긴지 오래된 친구들부터 시작해서 스치듯 지나갔던 모임에서 만난 사람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덧글을 달아주었다. 기적 같았다. 




세상에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나 혼자 사회의 시선을 다 이겨내고 물살을 거슬러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 주변엔 이렇게 소중한 사람들이 많았다. 



또한, 배우를 결심하고 퇴사를 하면서 알게된 좋은 점이 한가지 더 있다. '돈'에 절실해졌다는 것. 그전까지는 세상에 돈 버는 방법이 이렇게 다양한 줄 몰랐다. 아니, 유튜브에서 보더라도 실천할 생각조차 안하고 '어자피 난 안돼~' 하며 넘겼었다. 그런데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악착같이 하게 됐다. 



우선, <당근마켓>이라는 어플을 처음 알게 됐다. 방을 뒤집어보니, 오래도록 안쓰는 물건들이 많았고 이걸 하나 둘 마켓에 올리기 시작했다. 유튜브에 '당근마켓 잘 파는 법' 등을 검색해보며, 판매율을 높이는 문구등을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처음 6000원을 벌었을 땐, '겨우 6천원?'이 아니라 '우와 6천원이나 벌었어!" 하며 기뻐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스스로 약간 변화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게다가, '과외'에도 눈을 돌리게 됐다. 논술로 경희대학교 영어과를 입학해서 연극영화학부로 전과한 전적이 있고, 대학생 때도 논술 과외를 했으니.. 어쩌면 지금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모락모락 생겨났다. 하지만 과외를 쉰지도 오래됐고, 과외 사이트에 보니 쟁쟁한 사람들이 가득했다. 서울대, 고려대... 또 두려움이 스멀스멀 기어올라 도망쳐버렸다. 



... 하지만 통장 잔고를 보니 더 이상은 도망칠 수 없었다. 인터넷을 키고, 논술 동향이나 문제를 다운받아 풀어보고, 유튜브에서 과외 잘 구하는 법을 검색했다. 오늘 저녁에는 과외를 하나 넣어보기로 결심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나는 많이 변해가고 있다. 


1.절실하게 끝까지 하지 않으면 얻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 애매하게 포기한 배우와 애매하게 시작한 직장생활, 둘 중 어느것에도 만족할 수 없었던 것 처럼. 


2. 세상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 회사를 나와 겪은 사회는 혹독하고, 나이나 학벌도 많이 따지는 곳이었다는 걸. 


3. 하지만 배수의 진을 치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기회는 찾아온다는 걸 


4. 의외로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나타난다는 걸. 


5. 나 한 몸 건사하기도 이렇게 힘이 든데, 엄마 아빠는 도대체 어떤 책임감의 무게를 지고 살아오신 걸까, 진심으로 깨닫게 됐다는 것. 


6. 힘든 상황일 수록, 주변에는 오히려 더 밝고 씩씩한 척 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지 않고 나를 믿어줄 수 있다는 것. 힘듬은 오직, 나 혼자 견뎌내야 하는 무게라는 것. 



앞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절대 주변 사람들에게 투덜대거나 돈을 빌린다거나 해서 걱정을 끼치지 않기로 결심했다. "당장 오늘도 돈이 없어서 컵라면고 햇반으로 떼워야 하는 상황이긴 하지만, 오히려 잘됐어. 절실함을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겠는 걸. 배우로서 눈빛이 한층 더 깊어질지도 몰라. 더 많은 상황의 사람들을 이해하게 된거야. 나중에 배고픈 예술가 연기할 때 써먹으면 되겠다." 라고 생각하게 됐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나는 이제서야 비로소 세상에 태어난 느낌이 든다. 세상이 시키는대로, 부모님의 보호 속에서, 놀고 마시며 살아오다가 말이다. 



세상은 혹독하지만, 기회도 무궁무진한 곳이라는 막연한 희망이 든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포기만 하지 않으면 도와주는 사람이 생길거라 믿는다. 나보다 훨씬 더 힘든 사람들도 많다. 그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활동들을 계속해야지. 혼자는 약하지만 함께라면 두렵지 않다는 말을 비로소 체감한다. 



나는 항상 부모님과 사이가 안좋았는데, 처음으로 부모님 얼굴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바쁘더라도 핑계대지말고, 조만간 집에 들러야 겠다. 들러서, 부모님 얼굴에 새겨진 주름살의 무게를 찬찬히 들여다봐야겠다.



 수많은 지인들의 죽음, 가족의 죽음, 군대에서의 고통, 각종 모욕을 당하면서도 20년 넘게 회사 생활을 버텨낸 우리 아빠를 따뜻하게 안아드리고 싶다. 두번의 출산의 고통과 40대가 넘어서 직장을 구해, 자기보다 젊은 사장 밑에서 10년째 일하는 엄마도 안아드리고 싶다. 정말이지 두 분을 리스펙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직도 나는 철이 없고 이기적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배우라는 결심을 통해 주변 사람들에 대한 리스펙과 사랑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세상의 모든 직장인들은 참으로 대단한 것 같다. 모든 부모님들도. 나는 과연 미래에 그런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절대 그럴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부모가 될 수 없을 거라고. 하지만 지금은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힘들고 두려운 날들도 많겠지만 사랑의 힘이라면 이겨낼 수도 있을 것 같다. 



더 강해지고 싶다. 고작 28살에 퇴사하고 배우하는 게 무섭다고 질질짜는 여자가 아니라, 강한 어른이 되고 싶다. 그러려면 결국 답은 사랑인 것 같다. 



나를 응원해주고 팬 계정까지 만들어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에게 자랑스러운 언니가 되기 위해, 나를 위해 모든 걸 내어주신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딸이 되기 위해. 나를 응원해주고, 소중한 시간을 내어 덧글을 달아준 지인들을 위해. 내 고민을 들어주고 만나는 소중한 친구들을 위해.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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