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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
인문학은 무엇을 할 것인가?

포스트 휴먼을 위한 디지털 융합인문학으로의 혁신  

AI 시대, 인문학은 무엇을 할 것인가?



그 무엇보다 

인문학은 사람에 대한 연구이고 

인간 존재와 그 삶의 방법에 대한 사유이므로 

모든 시대에 걸쳐 사람들의 삶의 지침이자 나침판 역할을 해야 한다. 

호머의 일리어드와 오딧세이, 셰익스피어의 극 작품들, 다빈치의 회화 작품들, 베토벤의 음악들이

시대를 초월하여 강조되면서 보고 읽혀지고 듣게되는 이유이다. 

그러면, 인공지능 시대 인문학은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까지 전통 인문학이 수행해온 인간 존재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인간적 삶에 대한 사색과 탐구는 인류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오고 있는 화두다. 더불어 고대에서 중세와 근현대를 거쳐 21세기 초 현재까지 어느 시대에도 그것에 대해 명쾌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화와 문명이 발전하고 진보할수록 인간의 존재와 삶에 대한 연구는 21세기 초, '증강 휴먼(augmented human)' 기술이 등장하면서 더 복잡해지고 더 심화되고 있다. 디지털 기술로 무장한 '증강 휴먼'으로 인간의 존재론적 개념 증명이 새롭게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증강휴먼' 기술은 다양한 디지털 디바이스들을 신체에 탈부착하여 인간의 5감 능력을 확장시키는 디지털 혁신 기술이다.  여기서 '증강'은 가장 간단하게는 스마트 폰에서 부터 스마트 워치와 같은 웨어러벌 디바이스들  그리고 뉴럴링크의 인공신경망을 통한 지식이전 기술에 이르기 까지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기능과 역량을 향상시켜 주는 컴퓨터 과학, 신경과학, 뇌과학 기술이다. 증강휴먼 기술은 생각하는 능력으로 자칭 '만물의 영장'이 된 호모 사피엔스의 그 다음  유형인 '포스트 휴먼'(트랜스 휴먼이라고도 한다)의 핵심 기술이자 능력을 말한다.
 

포스트 휴먼의 등장

기술 발전의 관점에서 포스트 휴먼의 등장은 2008년과 2009년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의 갤럭시폰이 시장에 나오고 일상생활에서 스마트폰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로 볼 수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 관련 사물인터넷과 빅데이터, 클라우드 그리고  인공지능 기술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기술적 진보뿐 아니라 그 기술을 활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문명사적 대변화를 예고하였다. 동시에 도구의 사용으로 만들어지는 문화적 변화 역시 이미 일어나고 있고, 그것에 따른 인류의 정신사적 변화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전통 인문학의 파괴적 혁신이 필요한 이유이다. 


우리에게 지금 당장 요구되는 것은 인간 존재의 의미와 삶의 가치를 이끌어 왔던 전통 인문학이 첨단 디지털 기술 앞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음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인문학 전공 교수들과의 대화 자리에서 "21세기에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인문학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시대가 바뀌더라도 인간 본성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 인문학은 바뀔 수 없다."라는 말을 들을 때 지난 1990년 대 인문학의 위기를 외쳤던 대학의 인문학과 교수들은 아직도 변하지 않고 있음을, 아니 변화를 거부하고 있음을 느끼고는 입을 다물어 버리게 된다. 인문학의 위기를 인식하였지만 그 위기를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후반 이미 과학기술계에서는 육체적으로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디지털 기술로 무장한 신인류의 등장을 예고해왔음에도 말이다.
 

특이점: 그 이전과 이후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의 진화 속도를 앞서게 되는 시점을 ‘특이점(Singularity)’으로 명명하고, 그 시기를 2045년으로 예측(『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2005))했다가 2016년 알파고의 출현 이후 그 시기는 계속 앞당겨져 최근에는 2029년으로 예측되고 있다.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 초판(2005)/아마존

              

 그대로 진행된다면 이제  9년이 남아 있다. 문명사적 변혁을 가져온 기술 발전이 인류의 정신사에 영향을 끼치는 네 번째 사건으로 보인다. 그 첫 번째는 불을 다루는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불의 이용은 인류 문화의 진화적인 면에서 대 전환점이었다. 불을 처음 사용한 시기는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가 살았던 142만 년 전으로 거슬러간다(위키백과).
 
 두 번째는 이른바 ‘축의 시대’라고 불리는 기원전 900년에서 기원전 200년 사이, 동양철학에서는 노자와 공자가 활동하였고, 서양철학에서는 소포클레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활동하였던 시기이다.
 
 카렌 암스트롱은 『축의 시대(원제는 The Great Transformation: The World in the Time of Buddha, Socrates, Confucius and Jeremiah)』(2010)라는 책에서 자연만 바라보던 인류가 그 시선을 인간으로 돌려 자아를 발견하고 내면의 신을 탐구하기 시작한 인류 정신문명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시기로 부르고 있다. 이 시대에 인도에서는 《우파니샤드》, 자이나교, 고타마 싯다르타가 등장했으며, 이스라엘에서는 성경의 엘리야, 예레미야, 이사야가 나타났다.
 
 그리스-인도-중국에 이르는 이들 정신사 상의 동서 벨트는 실질적인 상호교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던 인류의 사유 혁명이었다. 암스트롱은 이들의 출현은 불을 다루는 기술을 발견한 것 다음으로 인류에게 획기적인 사건으로 보고 있다.
 
 이 시기에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고, 인간의 윤리적 각성과 이성적 성찰이 활발히 이루어졌던 시대로, 인류 정신사에서 또 하나의 거대 전환점이 된 시대였던 것이다.
 
 세 번째로 인류정신의 혁명은 중세 말 근대 초기의 르네상스 운동이다. 신중심 사회에서 인간 중심 사회로의 변화로 당시로서는 혁신적 사고의 변화가 일어났고,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계몽사상으로 이어져 인간과 인간의 삶, 인간 내면 그리고 환경으로써 자연에 대한 과학적인 탐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네 번째 혁명은 컴퓨터와 인터넷을 시작으로 된 디지털 기술이 인공지능으로 그 정점에 도달하면서 인간의 존재론적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고찰하고 그 정체성을 새롭게 탐구해야 할 지금 이 시기로 본다. 바로 인공지능으로 시작된 디지털 지능 혁명의 시작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일상생활 속에서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기업들은 이미 향후 직원 채용에 있어 “로봇이냐 사람이냐(Robots or Humans: the choice for companies)”(Axios, Dec 8, 2018)를 두고 선택의 고민을 하는 시점이 온 것 같다.
 
 이 네 번째 디지털 지능 혁명은 제4차 산업혁명이 가져오는 기술 혁신에 따른 인간 삶에 있어 이전과는 너무도 다른 새로운 가치 시스템 창출의 시기로 보인다. 이른바 주거공간이 ‘스마트 홈(smart home)’으로, 이동수단이 ‘스마트 카(smart car)’로, 의료 행위가 ‘스마트 헬스케어(smart healthcare)’로, 도시의 삶이 ‘스마트 시티(smart city)’로 통합되어 ‘스마트 라이프(smart life)’의 시대로서 노동이 줄어들고 여가활동이 증대되는 시대이다.
 
 노동시간이 줄어들고 여가시간의 증대는 인간의 존재론적 삶의 의미를 재 고찰해야 하고, 삶의 방식을 재점검해야 하며, 인공지능 로봇과의 상호협력 및 공존의 문제에 까지 직면하게 될 것으로 예상됨으로써 인간 정체성 자체의 혼란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자칭 만물의 영장으로 불렀던 우리 인간은 지능과 지식에서 인간의 능력을 앞서는 인공지능의 개발로 자칫 잘못하면 기술의 노예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인문학이 표면으로 나서야 할 시점이다. 디지털 기술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인류의 삶의 기준과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철학을 포함한 문학과 역사 예술계의 인문학자들이 할 일이다.  이제 인간은 지식을 넘어 지혜와 지성 그리고 영성적 능력으로 거듭나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21세기 인류는 모라벡의 역설처럼  ‘특이점’을 지나 인공지능을 관리 및 통제하고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능력을 스스로 계발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지적 능력을 생각해본다면 자연계를 지배해오고 있는 적자생존의 원칙에 따라 인류에게는 더더욱 그 능력이 필요하다. 기술이 인류의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그 역할과 기능을 제한해야 하고, 인류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능력을 확장시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인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제 인류는 지능 지수를 높이기보다 지성과 영성 지수를 높여야 할 것이다. 근대 말 철학자 니체는 ‘위버멘쉬’라는 ‘초인’을 언급하면서 현재 나의 운명을 수용하고 지금의  '나'를 넘어선 그 무언가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니체의 초인 사상은 21세기 우리 인류가 새롭게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할 생활 철학이며, 그것을 토대로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체계적인 인문학을 재구성해야 한다.
 
 2007년 1월, 스티브 잡스는 처음으로 ‘아이폰’을 발표하면서 애플의 기술이 인문학과 접목되었음을 강조하였다. 이로부터 국내에서는 인문학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기업이나 관공서 가릴 것 없이 인문학적 정신과 태도를 갖춘 창의적 능력과 창조적 역량을 인력채용의 기준으로 설정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런 요구를 초중등 교육이나 대학교육에서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고, 심지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는 채용 후 많은 비용을 들여 재교육을 통해 다시 양성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또, 방법과 내용이 문제다. 인문학 교육과 학습을 위한 체계적 시스템 없이 그냥 고전과 문학작품을 읽히고, 역사 유적지 탐방이나 음악·미술 등 예술 활동만으로 인문학적 정신과 태도가 갖추어진다고 보는 것은 정말 유치한 생각이다.
 
책 읽기와 음악 듣기, 그림 이해하기 등 인문적 활동은 과학기술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연결되어야 하고 마지막에는 미디어 활용을 통한 다양한 표현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생각과 사유를 통한 창의력 함양으로 다시 창조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인문학적 정신과 태도 함양에는 시간이 필요하며, 동시에 그 내용을 구성하고 방법을 찾는 데 교육전문가뿐 아니라 철학자와 심리학자 그리고 지식의 각 분야 내용전문가가 참여해야 한다. 학습자의 필요와 요구에 따른 내용전문가의 분석으로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우선순위를 매기고, 세부과정을 구성하여야 한다. 브레인스토밍이 필요하고, 비판적 사고와 디자인 싱킹 등  다양한 사유 방식에 대한 학습이 병행되어야 할 이유이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초·중등 교육과정과 대학과정이 선형적으로 연결되면서 동시에 병렬적으로 구성되어야 하는 점이다. 학습자들의 성장과정에 따라 강화 학습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학습내용을 단계적으로 편성하고, 다양한 학문 영역을 연결하고 융합시킬 수 있는 교수 학습방법을 세부적으로 강구해야 한다. 또, 기업과 관공서에서는 인적자원 개발을 위해 각 분야에 상호 
연계된 융합 인문학 아키텍처를 설계하여 운용함으로써 그것이 사업과 정책의 지속성 확보는 물론 창의인재 육성의 토대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포스트 휴먼을 위한 창의융합 인문학 시스템 구축

결국, 인문학 교육은 학습자들에게 체계적인 프로그램과, 학습내용 그리고 적절한 학습방법을 제공해주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초. 중등 학생들에게는 정책적 차원에서 인문정신과 태도 함양 프로그램이 단계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대학 이후 성인 학습자에게는 자신의 관심과 하는 일에 따라 평생학습 관점에서 삶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고, 자신의 삶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내공을 키워갈 수 있도록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이 주어져야 한다. 거기에서 포스트 휴먼의 회복 탄력성 있는 인문정신과 태도가 제대로 함양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대학 뿐 아니라 시민단체 그리고 인문학 전공자들을 중심으로 접근성이 용이한 지역 인문학 클럽 조직을 장려하자. 그 클럽들이 기존의 난해한 철학을 쉽게 풀어주고, 인류의 발전과정인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시키고, 고전에서 현대에 이르기 까지 인류 문화의 지적 자산인 문학 작품들을 읽고 이해시킬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줄 것이다. 


또, 음악과 미술, 회화 등 창조적 예술활동을 배우고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도 손 닺는 범위에서 다양하게 조직하자. 예술적 감수성과 공감능력은 인공지능 기술이 쉽게 구현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다. 그 능력은 자비스와 같은 AI 비서, 자율주행 자동차, 스마트 홈 등 인공지능을 포함한 스마트 테크 활용이 생활화되는 포스트 휴먼에게 해당 기술을 능동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과 차별화 되는 인간의 창의력과 창조력은 그렇게 강화시켜 나가야 한다.


이때 꼭 기억해야할 한 가지는 전통 인문학에서 해왔던 철학과 역사, 문학, 예술, 과학기술의 주제들을 단독으로 분리시키지 않아야 한다. 인문학 주제들을 횡적으로 종적으로 자연과학과 디지털기술로 연결시키고, 지구환경과 연계하여 글로벌 생태계 차원에서 접근하도록 해야 한다. 마치 음악 공연장의 오케스트라 처럼 현악기, 금관악기, 목관악기, 타악기 등 다양한 악기들이 내는 소리가 횡적인 리듬과 멜로디를 만들어내고, 동시에 개별 악기들 소리의 종적인 높낮이로 화음을 형성하고 전체적인 화성의 집을 지으면서 한편의 웅장한 교향곡을 만들어 내는 것 처럼 말이다.    


연결은 통합의 기회를 주고, 물리적 통합은 내부에서 다시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융합되면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게 한다. 초연결을 통한 초융합과 또 다른 창조의 과정이다. 그것이 디지털 융합인문학이 지향하는 바이다. 그 과정에서 개인, 가정, 사회, 국가 그리고 지구가 안고 있는 문제가 발견되고 그 해결 방법도 자연스럽게 나오게 될 것이다. 


이제 사물인터넷으로 만물이 연결되는 21세기 디지털 세상에서는 지구 환경의 '존재의 사슬(chain of being)'을 제대로 인식하고, 지난 세월 인간이 주장해온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계속 남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을 올바르게 인식한다면, 인문학 학습은 디지털 기술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스마트 라이프'로 발전할 것이고, 일과 삶의 균형이 잡힌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의 라이프 스타일 또한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제4차 산업혁명의 디지털 기술이 불러온 인공지능 시대의 인문학은 기존의 인문학과 본질은 같을지라도 그 방법과 내용은 달라야 한다. 각 시대마다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고 생활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그 내용과 방법적인 변화는 불가피한 것이다.
 
그 무엇보다 인문학은 사람에 대한 연구이고 인간 존재와 그 삶의 방법에 대한 사유이므로 모든 시대에 걸쳐 사람들의 삶의 지침이자 나침판 역할을 해야 한다. 호머의 일리어드와 오딧세이, 셰익스피어의 극 작품들이 시대를 초월하여 강조되고 읽혀지는 이유이다.  2020년 현재,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과정에서 디지털 기술로 무장한 신인간인  '포스트 휴먼'에 대한 연구와 교육에 숨어 있는 인문학자들이 나서야 할 시점이다. 


중요한 것은 모라벡의 역설 처럼 인공지능이 못하는 것을 발굴하여 사람이 창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것이 인공지능과 차별화 되는 인간 고유의 창조적 능력을 확보하는 길이고, 미래 인공지능의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방책이 될 것이다.  증강휴먼 기술로 무장한 포스트 휴먼의 디지털 융합인문학 시스템 구축, 그것이 20세기 후반의 인문학 위기를 21세기에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기본 틀이 될 것이다.


포스트 휴먼이여!

디지털 융합인문학으로 디지털 기술에 인문정신과 태도를 연결하고 통합시켜,

 '만물의 영장'으로서 인간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21세기에도 그대로 지키면서 살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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