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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3가지 도구적 관점: 인식과 사유 그리고 창조

인문학의 3가지 도구적 관점: 인식과 사유 그리고 창조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삶의 뿌리로서 인문학은 이 같은 철학적 질문을 던져주면서 그 난해함으로 일반인들에게는 자기성찰의 시간을 주기 보다는 오히려 인문학 자체에 부담을 갖도록 만들어왔다.
 
 사유과정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인간에 대한 본질적 의미를 질문하다보니 그 답을 찾으려는 노력은 커녕 자연스럽게 인문학 자체에 대한 흥미가 없어지고 현실생활과는 동떨어진 돈 안되는 학문이라는 딱지가 붙게 되었다. 또, 복잡한 현실생활과 자본주의라는 경제시스템 하에서의 생활문화 자체가 개인의 인문학적 성찰을 경시하도록 만들어버린 부분도 있다.
 
 여기에서 우리 모두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학자의 인문학과 현실 속 생활인문학의 구분이 필요하다. 학자에게 인문학은 학문으로서 하나의 연구 분야이지만, 일반인에게 인문학은 일상생활 속에 비가시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삶의 태도이자 정신적 도구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인문학자는 본질적인 인간의 존재론적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은 마땅히 해야할 것이지만, 일반인들에게 그것은 생활 속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 있어 흥미를 떨어트리는 주제이다. 
 
 인문학자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인류학과 언어학, 문학과 철학 및 사회학, 심리학과 의학, 그리고 예술의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인간에 대한 본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구해야 한다. 사실 그 정도의 깊이와 넓이가 있어야 인간에 대한 본원적인 질문에 대해 제대로 된 답이 나오게 될 것이다. 


반면 일반인은 인문학자들이 찾아낸 결과물을 삶의 지침이자 정신적 도구로 활용하면서 잘 살아가면 된다. 한마디로 인문학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해왔다. 마치 일반인 모두가 연구자와 철학자가 되어야하는 것처럼 '나는 누구인가?'에서 부터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이르기 까지 생각하기 어렵고 현실감각을 초월한 질문들을 해온 것이다.

문제는 인문학에 대한 접근방법이다.
 왜 인문학이 필요하고 인문학이 우리의 삶에 어떤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지, 추상적이 아닌 현실적인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특히 기술적으로 인공지능과 차별화된 인간의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발견해야하고, 뇌과학과 신경과학의 발전으로 인공지능과의 협업 및 공존의 문제가 논의되고 있는 지금, 인문학은 21세기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물론 인문학이 정답이 있는 학문이 아니기에 구체적인 해답을 제시할 수는 없다. 그것은 개인의 정신적 역량과 수행능력에서 나오게 되는 결과론적 문제다. 일반인들에게 인식과 사유의 인문학적 정신을 체화시킬 수 있도록 인문학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니 이런 교육은 성인이 되기 전 공교육 과정에서 이미 이루어 졌어야 했다. 사유의 방법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역할을 하고 왜 중요한지를 인식시켜 주었어야 했다. 
 
 물론 그전에 인문학자들은 개인의 기본적 '역량'과 실질적 '수행능력'의 관점에서 인문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삶의 기초역량을 함양시켜주고, 현실 수행능력을 높여줄 수 있는 정신적 도구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교수학습 프로그램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 
 
 인문학은 인식과 사유 그리고 창조라는 3가지 도구적 관점에서 인간의 정신적 역량과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 첫번 째로, 인문학은 인식적 도구로써 자연현상과 사물, 사람에 대한 이해의 기본 툴이다. 이를 위해 개인은 성인이 되기 전에 모든 사물과 현상에 대한 접근방법을 다양하게 배워야 한다. 교육에서 인문학 학습 초기 단계에 다양한 분야의 기초지식이 필요한 이유이고, 책 읽기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두번 째로 인문학은 상상과 깊은 사유의 재료이자 도구이다. 소위 비평적 사고, 분석적사고, 논리적 사고, 5감을 통한 공감각적 사유능력을 키워주는 데 인문학은 중요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특히 백지 상태의 뇌에 지식의 첫 지도가 그려지는 영유아 시절에 5감을 자극하고 감각적 노출을 최대화시키기 위해 많은 것을 보여주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하면서 이 모든 것을 온 몸과 온 마음으로 느끼게 해야 한다. 무의식적 영유아 인문학 교육의 중요성을 말한다.
 
 세번 째로 창조적 도구로서의 인문학이다. 과학기술적 발견이나 문학과 예술적 창작은 인문학적 정신으로서 풍부한 상상력과 구성력 그리고 날카로운 시각 없이는 불가능함을 우리 모두는 인정하고 있다. 초중고 시절 다양한 주제의 지식에 노출시켜 개인적 의견과 해석이 나올 수 있도록 읽고 듣고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의 장을 제공해야 한다.
 
 이때 부모가 미리서부터 자녀의 방향을 정해놓고 한쪽으로 몰고 간다면 균형을 잃은 독단적이고 편협한 인간형이 만들어지게 된다. 현재 대학입시를 중심으로 한 우리 교육의 병폐이자 개인의 창의력을 무시하다 못해 말살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개인은 다양한 분야에 대한 체험을 기반으로 자기의 적성을 발견하고 고교 졸업 후 바로 전문 직업인으로 나가던지, 또는 대학에 진학하여 그 폭을 좁히면서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청소년의 미래직업은 이렇게 만들어져야 한다.
 
 이렇게 공교육과정에다 인식과 사유 그리고 창조라는 3가지 인문학적 도구를 접목시킨다면, 지금까지의 인문학은 다양한 학문분야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 간학문적 성격으로서의 융합인문학으로 자연스럽게 발전할 것이다.
 
 융합인문학은 제 1단계 인식의 과정으로 서로 다른 것들의 관계를 이해하게 하고, 제 2단계 사유의 과정으로 넘어가 초연결과 초융합의 상상력과 사고활동을 활성화 시키게 하며, 마지막으로 지금까지는 없던 새로운 발견과 창조단계에 이르도록 한다.
 
 이런 과정에서 학습자는 통섭능력과 통찰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인식은 사유의 출발점으로서 여기에다 생각하는 방법이 연결되어져야 지적발견이 이루어지고 마지막 창조의 단계에 이르게 될 수 있다. 한마디로 융합인문학의 학습과정은 통찰의 지혜가 만들어지는 내면적 정신작용과 정신역량의 발전과정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정신의 내적역량으로 쌓이게 되며, 직장이나 사회생활에서 현실 수행능력으로 표출되어지게 된다.
 
 결국 제대로 된 인문학적 정신역량과 수행능력은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인내심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수학에서처럼 공식 하나를 배우고 바로 문제를 풀어 해답을 낼 수 있는 실시간 처리도구가 아니다. 앞에서 말한대로 영유아 시절에 5감을 통한 공감각적 인식능력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또 초중고에서는 문학과 역사 철학, 정치·경제·사회·문화 그리고 예술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를 배우면서 개별적으로 그리고 종합적인 관점으로 그 내용들을 바라볼 수 있는 사유의 시각을 배워야 한다.
 
 그 과정에서 논리적·분석적·비평적 사유를 할 수 있게 되고, 올바른 판단과 선택의 결과물이 바로 연결되어 나오게 된다. 인식과 사유의 과정을 제대로 수행하게 되면 마지막 창조는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연결되어진다. 특히 21세기 인공지능 시대 창조는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인간고유의 콘텐츠를 만들어 낼 것을 요구 한다.
 
 인공지능기술을 포함한 정보통신 기술에 대한 지식과 활용능력이 필수라는 말이다. 디지털이 인문학에 융합되어 ‘디지털융합인문학(Digitally Converged Humanities)’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이유이다. 이때 개인의 관심에 따라 과학기술의 발견과 발명 그리고 문학이나 예술작품의 창조는 당연한 귀결이 되는 것이다. 인문학이 인문학자의 전문 연구영역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보편적 삶의 정신적 도구가 될 수 있도록 교육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마지막으로, 인문학 프로그램은 세대별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하여야 한다. 영유아의 경우에는 감각적으로 5감을 최대로 활성화 시킬 수 있도록 입력자료를 다양화 시켜주어야 한다. 인공지능 개발자들 사이에 입력 데이터 관점에서 ‘쓰레기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Trash in, Trash out)’는 표현이 그냥 있는 것은 아니다. 학습자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10대 청소년들에게는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앞에서 말한 인식-사유-창조 3단계 과정을 기반으로 각 교과에서 인문학적 정신과 태도를 체계적으로 함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때 전문 가이드가 필요하다. 교사는 학습자의 조력자(퍼실리테이터)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20대 이후 대학에서는 다시 앞의 세 가지 정신적 도구를 포괄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선택한 전공분야에 적용 및 응용해보는 실험을 해야 한다. 사실 이 단계에 인문학적 태도와 수행능력의 토대가 만들어 진다고 보면 된다. 
 
 30·40대의 경우에는 인문학의 활용단계로 자신이 하고 있는 실제 일에 인문학적 정신과 태도를 적용시키면서 창조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필요시 재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인문학적 역량을 제고시키면서 개인의 수행능력을 최대화 시켜야 한다. 이 시기에 중요한 것 한 가지는 일과 삶의 균형을 취할 수 있는 ‘워라밸’의 라이프스타일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50대 이후는 노후생활 단계로 단조로운 노후의 삶을 활동적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책읽기, 음악듣기, 그림보기, 영화/드라마 보기, 그리고 여행하기와 같은 활동들을 생활화시켜야 한다. 일상에서 자기만의 라이프스타일 형성을 말한다. 특히 이 시기에는 주변 가족들의 상실의 고통을 이겨내어야 하고,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미리 준비하는 것도 삶의 중요한 부분임을 알아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기술혁신의 시대 그리고 생활 혁명의 시대, 

인간 본연의 가치를 간직하면서 인간 고유의 영역을 확보할 수 있도록 ‘디지털융합인문학’ 프로그램을 제대로 한번 만들어보자. 그것이 인공지능과 차별화되는 미래 인간 삶의 모습을 재발견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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