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치유하기 위해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싶다.
누구나 마음속에 가시처럼 박힌 게 있습니다. 미움, 증오, 원망, 분노 또는 미안함, 애틋함, 죄책감, 그리움 등 감정마다 사연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용서뿐이라고 합니다. 용서한다는 게 쉽지 않은데요, 내게 도움 되지 않는 감정들을 품고 사는 것도 참 괴롭습니다.
36년 만에 엄마를 만난 지 2년 6개월이 넘었습니다. 2, 3개월에 한 번씩 만나 지나간 세월과 현재를 공유합니다. 엄마와 아버지가 처음 만난 날부터, 내가 태어나고, 우리가 살아낸 여정을 돌아봅니다. 어쨌거나 지금이 좋다, 잘 되었다 합니다. 남은 날을 위해 새로운 이야기를 쌓아갑니다.
우리의 공통분모는 아버지입니다. 엄마를 만나기 전까지는 아버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지우고 싶은 부분이었으니까요. 엄마는 만날 때마다 아버지 이야기를 하시고는, "또 니 아버지 이야기했네. 아이고 지겨워" 하십니다. 똑같은 내용을 여러 번 들을 때가 많지만, 몰랐던 걸 새로 알게 되는 날도 있습니다.
서랍장 같은 걸 잡고 걸음마 뗄 무렵, 부모님이 행복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 기억이 왜 이렇게 생생한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때가 아니었을까요? 든든하고 신났던 느낌.
아버지는 유쾌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주위에 친구가 많았다고 해요. 새침한 엄마에게도 아버지의 그런 면이 통했나 봅니다.
아버지는 가족의 안정보다 본인의 결핍과 욕구를 채우기 위해 살았어요. 경제관념 없는 아버지 때문에 온 식구가 고생했습니다. 생활비는커녕 몇 날 며칠을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돈이 떨어져야 집에 들어왔대요. 아버지가 들어오지 않아 엄마가 외갓집이나 친구 집으로 가면, 혈안이 되어 엄마를 찾으러 다녔고 회유와 협박을 번갈아 하면서 데려다 놓곤 했다지요. 집에 데려다 놓고는 다시 나갔다가 돈 떨어지면 들어오고요. 아버지는 스스로를 통제할 줄 몰랐어요. 아버지를 신뢰할 수 없었던 엄마는 더 이상 결혼생활을 유지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엄마를 찾아가 나를 빼앗고 엄마와 저를 못 만나게 했습니다. 둘째 엄마는 사고로 아기를 하늘나라로 보낸 후, 슬픔을 못 견디고 세상을 등졌습니다. 셋째 엄마는 안 해본 일 없이 온갖 고생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6년 뒤, 위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돌봐줄 사람이 없어 친가, 친척 집, 아는 집 등 여기 맡겨지며 자랐습니다. 매일 빚쟁이들에게 쫓겨 다녔고, 급기야 어린 나만 남겨두고 야반도주했습니다.
공납금 못 내어 매일 교무실에 불려 갔을 때, 선생님들과 몇몇 아이들의 시선에 주눅 들었습니다. 언제쯤 낼 수 있느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잘 모르겠어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하면서, 속으로는 절대로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 다짐했습니다.
한 사람의 이기적인 행동들이 가족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보았습니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악다짐했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야간 학교 다니면서 공부했고, 월급 타면 아껴 쓰고 저축했습니다. 아버지를 통해서 돈이 영혼을 갉아먹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모든 관계가 돈 때문에 어긋나는 것도 보았습니다.
빚지는 게 싫어 차든 집이든 대출 없이 샀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리 친해도 돈거래는 하지 않습니다.
엄마와 이야기 나눌 때마다, 어린 시절의 한 조각씩 꺼내어 퍼즐 맞추는 느낌입니다. 전혀 기억나지 않거나 잘 못 기억하고 있는 것도 있고요. 오해한 부분도 있습니다.
엄마가 어린 나를 두고 도망갔다는 아버지의 말이 마음에 가시로 박혔습니다. 열여덟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를 잠시 만난 적 있었는데요. 엄마의 말과 행동이 나를 여전히 부담스러워하고 거부하고 있다는 생각 들더군요. 그때 연락 끊고 36년 만에 다시 만난 겁니다.
우주의 고아로 홀로 살아야 한다고 서러워했습니다. 부모 복 없으니 내 복 스스로 만들며 살자 했습니다. 내 가정 잘 꾸리고 살고 있으니 다 잊자 했습니다. 엄마도 만났으니 이제 되었다 했습니다. 예전보다 한결 덜하긴 하나,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마음에 남아있는 게 걸립니다. 더 이상은 미워하고 원망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버지와 내가 함께 치유할 방법이 있다면 하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와 얽혀 있는 삶의 실타래를 풀고 싶었습니다. 이쯤 살아보니 알겠습니다. 절대 용서하지 못할 일은 없으며, 용서만이 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걸요.
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을 없애고 나를 치유하기 위해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싶었습니다.
아침마다 108배 명상을 하는데요. 백여덟 번 절하면서 눈을 감고 아버지의 과거로 갑니다. 아버지의 삶을 떠올렸습니다.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에 대한 사랑 결핍, 큰 아버지와의 감정, 열등감, 잘하고 싶지만 잘되지 않아 속상한 마음, 건강마저 좋지 않았던 몸, 세상과 자신에 대한 화를 보았습니다.
"위로받고 싶었지만 아무도 위로해 주지 않아 외로웠던 당신을 공감합니다.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아 화내는 마음을 이해합니다. 몸을 함부로 다루어 자신을 병들게 하고, 자신에게 화난 마음을 가족들에게 푼 걸 자책하셨지요. 다시 잘해보고 싶지만 병이 깊어져 안타까워했던 마음 압니다."
"마음 의지했던 딸이 미워하는 걸 알게 해 자괴감 들게 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날, 조금만 더 같이 있어주었으면 하는 아버지를 두고 집을 나왔습니다. 더 이상 살 의욕을 잃게 해서 죄송합니다. 꿈에 한 번도 오지 않는 아버지를 그리워하지 않아서 미안합니다. 용서 못 한다. 용서할 수 없다며 가슴에 돌덩이 올려두고 스스로 짓누르며 괴로워해서, 제사 지내준다는 유세로 '우리에게 미안하면 무조건, 동생과 가족들 지켜달라' 협박해서 죄송합니다. 이제는 아버지를 이해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을게요." 소리 내어 말했습니다. 목이 메고 눈물이 터졌습니다. 가슴 한복판에 무겁게 눌려있던 돌덩이를 날 숨으로 연신 쏟아냈습니다.
명상할 때마다 되뇝니다. 품고 있던 걸 말로 뱉어내면 허공에 흩어지며 가벼워집니다.
나를 치유할 수 있는 길은 이해와 용서입니다.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이해해 보고, 그에 대한 나의 반응을 돌아보면, 공감 포인트가 보입니다. 아버지의 결핍을 공감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잘되지 않았지만 잘하고 싶고, 가족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보았습니다.
용서만이 치유하는 길이라고 합니다. 안될 줄 알았습니다. 못할 줄 알았습니다. 명상의 힘입니다. 고요하게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가슴 한가운데가 아픈 이유를 알게 됩니다. 자꾸 무언가로 덮어씌우며 외면했던 것들이 둥둥 떠오릅니다.
미움, 원망, 안타까움, 무거운 마음, 복잡한 감정들이 생길 때마다 제거합니다. 대상을 이해하고, 나를 돌아보면, 용서하는 마음이 생기고 스스로 치유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의 숲으로 들어와 고요히 바라보면 햇살이 비칩니다. 스스로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립니다. 죽는 한이 있어도 용서하지 못할 누군가가 있다면 고요히 마음을 들여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마음이 열려서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순간을 마주하기를 바랍니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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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성장 에세이스트 최미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