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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키티 Sep 03. 2020

잔향에 대한 잔상

그리고 여전히 남아있는

내 친구들과 나의 공통점 중엔 서로 연락을 잘 안한다는 점이 있다. 연락하다가 갑자기 답이 없어도 서운해 하지 않고 ‘뭔가 바쁜 일이 있나보군’하고 넘긴다. 길을 찾다가, 맛집 추천 등 뜬금없이 연락 올 때도, 비가 와서 혹은 어떤 음악을 듣다가, 시집을 보다 시를 툭 찍어 보낸다. 일상적인 대화로 모든 시간을 공유하는 것보다 찰나의 순간에 생각나는 사람인가 나는. 문득 오는 연락들이 반가운 요즘.     


나는 사람을 음악으로, 노래로 기억하는 습관이 있다. 특히 김동률의 음악과 음악 사이에는 늘 사람이 껴있는데, 어제 밤엔 ‘잔향’을 듣다가 두 얼굴을 떠올렸다.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는 지난 세종 콘서트에서 이 곡을 듣고 한동안 플레이리스트에 올려두었다. 음원으로만 들어도 벅찬데, 오롯이 소리로 꽉 찬 공간에서 들었으니 얼마나 벅찼겠어. 잔향은 남아있는 향기라는 뜻도 갖고 있지만, 실내 음향 효과를 내는데 중요한 형상을 뜻하기도 하다.     

“김동률 곡 중에 어떤 노래를 제일 좋아해?”

“사실 그때그때 다른데, 이 계절엔 ‘잔향’을 많이 들어”     

김동률은 ‘잔향’에서 사전적 의미를 모두 사용한다. 사라진 빈자리에서 들리는 소리 없는 그대의 노래, 향기 없는 그대의 숨결. 여전히 곁에 남아있는 듯 하지만 실체는 사라져버린. 잔향.


이 노래는 계절이 바뀔 때, 계절과 계절 사이에 들으면 그렇게 취한다. 밤공기의 온도가 내려가고 있구나, 가을 냄새를 맡음과 동시에 곧 새로운 계절이 다가올 것이라는 설렘, 2020년 어떤 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무기력함이 밀려왔다.     


밤에 문득 듣고 싶어 플레이리스트를 올라가다 지난 봄에 들었던 음악들을 보았다. 요즘은 잘 듣지 않는 음악들. 한 곡 한 곡 사연 있는 노래들. 당연히 생각나는 것들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 피하고 있던 것들이었다.      


‘다시는 좋아하는 것들을 함부로 공유하지 말아야지’      


너와 나 사이에 마침표를 겨우 찍고 내린 결심이었다. 하나에 빠지면 질릴 때까지 해야 되는 성격조차 닮아있어서, 노래 하나에 빠지면 다음 노래가 좋아질 때까지 들었다. 테이프로 들었음 벌써 몇 개는 늘어났을 거다.  

    

좋아하는 공간을 침범하고, 나만 알고 있던 산책 코스를 함께 걷고, 그곳에선 이 음악을 들어야 한다며 시시콜콜 떠들었던 지난 봄. 참 예뻤고 따듯했다. 차를 타고 집에 오던 길, 며칠 전에 공유했던 ‘잔향’이 나왔다. “요즘 이 노래 자주 듣게 돼. 가사가 참 좋아”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지만, 고개를 돌려 창밖을 봤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해주려 노력하던 사람이었다. 진하게. 차를 타고 5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에 살고 있었지만, 너는 항상 시간이 오래 걸리는 길을 택했다. “야경 좀 봐”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서울의 야경. 좋았으면 됐어. 재밌게 보냈음 됐지 뭐. 하며 애써 외면하려 했나보다. 이젠 어느 정도의 상처에도 괜찮은 척 해야되는 어른이니까.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면서 2.5단계로 올라가며, 집콕 생활이 시작됐다. 왜 이렇게 지난 3월과 달리 사람이 보고싶고 외로움을 많이 타나 싶었는데, 이번엔 네가 없다. 그 이유하나가 참 많은 것들을 여기까지 끌고 왔다.           

그 언젠가 해묵은 상처 다 아물어도

검게 그을린 내 맘에

그대의 눈물로 새싹이 푸르게 돋아나 

그대의 숨결로 나무를 이루면

그때라도 내 사랑 받아주오 

날 안아주오 

단 하루라도 살아가게 해주오      

-김동률 ‘잔향’          



어느덧 9월, 브런치에 좀 자주 글을 쓰고 싶었는데 이런저런 일들로 바빴다. 이직 준비 중이어서 사실 이력서를 쓰려고 앉았는데, 알지알지. 재미없는 글 써야할 때, 다른 거 쓰고 싶은거. 9월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가득하지만,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해야지 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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