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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키티 Apr 07. 2020

풍선을 다시 불어,

2019년 11월 18일



첫눈이 내렸다.
첫눈이 왔다.

첫눈 내리는 날, 그곳에서 만나자.
지키지 못할 약속이겠지만, 어느 가을 무작정 그런 약속을 했다. 이왕이면 주말이었으면. 그러면 우리가 그곳에서 만날 확률은 높아질 테니.

작년 이맘때에도 첫눈이 왔다. 올해는 1주일 빨리 내린다. 지난해에는 첫눈이라 하기엔 너무 과한. 그리고 포슬포슬 쌓인 집 앞 언덕을 휘휘 쓸었더랬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창밖으로 휘날리는 눈을 보고, 다음 정류장에 내렸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조금씩 자라나면 이따금씩 불안도 함께 커졌다. 마치 풍선 불듯이.
점점 부풀어 오르는 풍선을 보면, 이만큼의 내 마음도 보이지 않겠냐며. 한계치를 넘어서면 터져버리는 줄도 모르고. 후후 숨도 고르지 않고 불었다.


여기 좀 봐줘.
나는 이만큼 크게 불 수 있단다.
펑하고 터져버린 풍선 파편들은, 저 멀리 날아가버렸고. 다시 붙일 수도, 불 수도 없게 된 고무 조각들을 보며 앞으로 다시는 불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어른이 되면 겁쟁이가 된다. 한 번 겪은 아픔을 다시 겪지 않는 방법은 다시 풍선을 입에 물지 않으면 됐으니까. 발 앞에 흰 선을 그어놓고, 여기만 넘지 않으면 된다 하고 끊임없이 반복 학습을 했다.

너는 내 손을 잡고 그 선을 넘어섰다.
그리고선 고개를 드니 너는 이미 사라졌고 손에는 예쁜 풍선이 쥐어져 있었다.

한숨, 한숨 불어넣을게. 이쯤 되면 딱 예쁘다 싶을 때 하늘로 띄워 보낼게. 나는 여기에서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다고.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불안했던 시간들이 지나고, 서서히 행복해지고 있다. 감히 행복이라 말할 수 있다. 첫눈을 보고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니까.

깊이 숨을 들이마신다. 천천히 그리고 가늘게 내뱉는다. 다시 입에 문 풍선을 조금씩 불어 본다. 서서히 부풀어 오르길, 그리고 적당히 커진 풍선을 쥐고 네 앞에서 흔들 날이 오길.


하루가 길다. 어쩌면 짧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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