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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키티 Apr 13. 2020

작은 상처의 위력




지난밤 꾼 꿈으로 인해 아침까지 뜬 눈으로 보냈다. 배고픈 채로 잠들었기 때문일까, 꿈에서라도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였을까.     


이제야 전화를 받은 너에게

“나 배고파....”


그리고 이내 핸드폰에서 들린 목소리에 울음이 터졌다. 이런 경험 한 번쯤 있지 않나. 분명 꿈을 꾸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데, 말을 하고 있는 나. 꿈을 꾸고 있는 나도 듣고, 잠을 자고 있는 나도 듣고. 그러다 내 목소리에 놀라 눈을 뜨고 마는.


“그런데 왜 이제 전화 받아”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몇 번이나 참고 또 참았던 말이었다. 순간 이런 말을 왜 하는거야 꿈 꾸는 나야! 더 이상의 실언을 막기 위해 눈을 떴다. 새벽 4시. 핸드폰을 켜 통화목록을 들여다봤다. 다행이다. 한참을 누워 넷플릭스 두 편을 다 보고 나서야 다시 잠들었다.     


며칠 전 저온화상(사실 저온화상이 아니라 3도 화상 같다)을 입었다. 자고 일어났는데 허벅지에 엄지손가락만 한 상처가 났다. 볼록 튀어나와 있는 상처를 보고 ‘뭐지?’하고 한참을 생각했다. 처음보는 정체. 두드러기인가? 하고 만지니 껍질이 벗겨진다. 화상이다. 온열기구를 켜고 배 위에 올려놓았는데, 잠결에 허벅지 닿은 채로 있었던 것이다. 아—


화상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였는데도 며칠 째 아물지 않는다. 금세 아물 법도 한데 이내 살 껍데기가 벗겨지더니 허연 살점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 작은 상처가 하루 종일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옷이 상처를 스치거나, 무의식 중 스치기라도 하면 악 소리와 함께 통증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린다. 통증은 이내 사라진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과정을 반복했다. 아, 고난의 월요일.


예상치 못한 사고는 일상을 부자연스럽게 만든다. 대책 없는 상황을 맞닥뜨리는 건 어른이 되어도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따뜻한 것에게도 상처를 입을 수 있다니. 마냥 따스하기만 해 가까이 두고 싶었다 너를. 너무 오래 가까이해서 서서히 익어버린 상처. 속을 훤히 드러내니, 나는 마냥 아프다. 한없이 애쓰던 너도 이렇게 아팠니. 나는 원래 잘 참는 사람이라서, 잘 견뎌내는 사람이니까. 방향만 내 곳으로 향해있다면 시간은 중요치 않다 생각했다. 상처 위에 손을 올려본다. 여전히 따듯하다.


잘 아물어야 할 텐데. 흉 지면 또 다른 상처가 기록되겠지. 그리고 서서히 흐릿해질 때마다 다정했던 너를 떠올릴 것이다. 아픈 줄도 모르고 상처가 되어버린 후에야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어버린. 통증만 남겨두고 사라진 사람.


작은 상처 하나로 며칠 째 싱숭생숭하다. 아물 때까지 기다리다간 크게 흉이 질 거 같아 초조해지는 것은 덤이다. 이미 내 것이 되어버렸음을. 검색해봐야지. 종로 화상치료 피부과.......(추천 부탁)


한강의 ‘회복하는 사람’이 떠오르는 밤. 책장을 뒤적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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