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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키티 Apr 18. 2020

4월의 잔상들

잊지 않고 있습니다


4월 15일은 21대 총선이 치러진 날이다. 투표권을 얻고 난 이후 단 한 번도 선거를 빼먹지 않고 했다. 나라가 내게 준 권리. 네모칸 위에 찍힌 빨간 자국. 사회가 더 나은 세상이 되기 위한 시작이다.     


배우 정우성은 총선을 앞두고 “당신의 일상 모든 것은 정치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스스로 삶을 존중하고 가치를 높이고 싶다면 투표하세요. 누구도 당신의 삶을 알아서 존중해주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10년의 선거에서 내가 뽑은 이가 당선된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앞선 세 번의 대통령 선거는 매번 새벽같이 일어나 6시 첫 투표자가 됐다. 24시간 하는 순댓국집에 가서 국밥과 소주 한 잔을 하고 와 잠에 들었다. 여섯 살 아래인 동생이 첫 선거를 하는 날에도 그랬다.     


절망과 환희의 순간들. 하지만 점차 사회는 나은 방향으로, 그리고 밝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며 투표는 민주주의의 위대한 권리라는 것을 인정하게 됐다.     


이번 투표는 독립 후 종로구에서 처음 하는 선거였다. 문재인 정권 3년 차를 맞아 매우 중요한 선거였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자, 국민들이 현 정부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종로구는 이낙연 전 총리와 황교안 전 총리가 맞붙게 되며 선거 등록 당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은 지역이다. 매일 여론조사 전화가 걸려왔고, 가는 곳곳마다 선거운동이 한창이었다. 선거공보를 보며 이들이 종로구에서 펼칠 공약들을 찬찬히 살펴봤다. 여론조사는 20%의 격차를 뒀지만 출구조사에서는 10% 내의 격차로 접전이었다. 사전투표 결과에 따라 상황이 뒤집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코로나 19로 인해 사전투표를 했다. 삼청동 동사무소에는 선거하기 위한 이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1m의 간격을 지켰고 공무원이 손소독제를 일일이 손에 짜주며 열을 체크했다. 비닐장갑을 끼고 신분증을 챙겼다.     


코로나 19로 인해 전 세계에서 선거가 미뤄진 국가는 47개국이다. 하지만 우리는 선거를 강행했다. 그리고 28년 만에 최고 투표율인 66.2%를 기록했다. 외신들의 이목이 한국에 집중됐다. 영국 BBC는 “한국은 전쟁 중이었던 1952년에도 대선을 실시했다. 투표에 시간과 노력이 들지만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위한 짧은 지연을 행복하게 받아들였다”라고 평가했다.     


선거는 무사히 치러졌고, 여당인 민주당이 지역구, 비례대표 의원 수 180석을 차지했다. 새벽까지 투표 결과를 보며 마음 졸였다. 사전투표가 개표되며 역전되는 의원들의 이름 옆에 ‘당선’이 뜰 때까지, 다시는 국회에 발을 디디면 안 될 이들의 ‘낙선’을 기다리며.         


12시가 지났다. 그렇게 다시 우리는 4월 16일을 맞았다.     


2014년 4월 16일. 우리는 그날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내 주변인들은 그날 아침부터 밤까지 어디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아니 잊지 않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는 집단 트라우마처럼 남았다. 그날만 되면 우리는 손가락 하나를 더 접고, 여전히 아파한다.     


올해는 코로나 19로 추모 행사는 생략하고, 화랑유원지에서 기억식만 열렸다. 하루 종일 무기력하게 누워있던 나는 저녁 무렵 광화문으로 향했다. 퇴근 후 세월호 광장으로 모여든 이들은 침묵으로 주변을 서성였다. 벽 가득 적혀있는 304명의 이름을 바라본다. 이제는 익숙해진 이름들을 발견한다.     

노란 프리지어를 한 다발 사온 한 남자는 한편에 꽃을 내려놓고 벽 앞에 선다. 손을 모아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는 이내 머리를 감싸고 어깨를 들썩인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 또 울고 말았다. 우리는 언제쯤 이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몇 년을 고민하다 왼쪽 손목에 타투를 하기로 결심했다. 첫 타투이자, 아마도 마지막 타투. (사실 이건 아직 모르겠다) 우연히 팔로우가 된 타투이스트에게 연락하고, 지금 가겠다고 연락하고 을지로로 향했다. 도안을 이야기하고 함께 디자인을 조율하고 타투 시작. 처음이라 아플까 걱정했는데, 살짝 따끔한 정도여서 참을 만했다. 테두리를 그리고 노란색을 입혔다.     

세월호 타투 #사미타투

잊지 않는다는 것.     


인간의 기억은 어디까지 그리고 얼마나 기억해낼 수 있을까. 잊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더 나은 곳으로 한걸음 나아갈 수 있다. 생의 한가운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내가 이들을 잊지 않으며 해나갈 수 있는 일들을 떠올린다.     


어느 날의 4월이 되면 잊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노라고, 우리가 기억했기 때문에 더 따스한 곳으로 옮겨왔다고 부둥켜안고 기뻐할 날이 오길.     


멈춰있지 않기로 한다. 슬픔 속에 잠식해있지 않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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