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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로나 Nov 24. 2022

이상하게 상쾌한 아침

나는 왜 달렸는가

"근데 자기 맨발로 나가지 않았어?"


부재중 전화가 와서 콜백 했더니 남편이 묻는다. 그랬지. 그나마 엘리베이터 문 열리기 직전에 슬리퍼 신은 걸 알아채고 운동화에 맨발을 집어넣었지만.


이번 주 내내 아침이 위태롭긴 했다. 요즘 들어 아침잠이 많아진 첫째가 등교 준비에 빠릿빠릿하지 않아서였다. 중간중간 시계를 봤냐는 내 물음에도 봤다고만 건성으로 대답하고 그다음이 없었다. 참다가 오늘 아침에 소릴 지르고 말았다. 사실 안경을 벗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더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아이가 잘 보이지 않으니 그냥 아이 쪽을 향해 소릴 질렀다.


이유가 어쨌든 내가 백 번 천 번 잘못했다. 아이는 굳은 표정으로 잽싸게 준비하고 현관을 나섰다. 중간에 머리띠 하러 다시 오고, 실내화 가방 가지러 다시 오고 했지만;;;


아이 얼굴도 보지 않고 엘리베이터 닫히는 소리만 들었다. 갑자기 가슴이 뛰었다. 내가 지금 뭔 짓을 한 거지? 점퍼를 손에 들고 밖으로 나갔다. 엘리베이터는 또 11층에서 내려올 생각을 안 한다. 겨우 탔더니 7층에서 한번, 4층에서 한번. 난리도 아니다. 


문이 열리자마자 뛰었다. 앞에 가는 아이들 무리를 요리조리 비켜가며 얼른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렸다. 교문 통과를 했으려나?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핸드폰이 없다. 빨리 뛰어가면 되겠지 싶었다.


호각 소리와 동시에 파란불이 켜졌다. 바로 뛰어서 언덕을 올랐다. 운동장이 보이고, 저기 아이가 보인다. 옆 계단으로 먼저 올라가면 걸어오는 아이보다 빠를 것 같았다. 


숨을 내쉬면서 마스크를 내렸다. 아이를 보고 활짝 웃었다. 안경엔 김이 잔뜩 서렸고 눈에서 축축한 느낌이 났다.


"엄마 여기 왜 왔어?"

"채민아 미안해 엄마 좀 용서해 줄 수 있어?"


아이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나를 안아줬다. 구구절절 중얼거리는 나에게 그저 알았다고만 해줬다. 그리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1학년 2반 교실에 오늘은 데려다줘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학교 안에 들어오니 기분이 이상했다. 중앙 현관으로 들어와서 복도 끝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면 바로 나온다고 알려주는 아이의 말을 듣자니 1학년이 아니라 몇 년 다닌 사람 같았다.


교실에 들어가서 자기 자리에 가방을 걸고 엄마를 보며 씩 웃어준다. 


집에 와서 아이가 아침에 꺼내 놓은 손수건이 보인다. 어제 학교에서 코피가 났었다더니 수건에 핏자국이 있다. 요즘 하교하고 친구들 집에도 다니고 주 2회 댄스학원도 다니느라 부쩍 피곤했을 거다. 그래서 예전보다 아침잠도 많아졌을 텐데 말이다. 


내일은 내가 더 미리 아침 준비도 해놓고, 오늘은 아이가 더 일찍 숙면할 수 있게 도와줘야겠다. 


그나저나 아침부터 뛰어서인지 한바탕 울어서인지 몸과 마음이 이상하게 상쾌하단 말이지?


© Kranich17,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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