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금방 그쳤다. 바람이 점점 강해지는 걸 보니 곧 세찬 비바람이 오후를 흔들어놓을 듯하다.
나가서 호밀빵도 사고, 책도 반납해야 되는데, 노트북 켜는 동안 창밖을 보다가 사진 한 컷 찍고 또 멍하니 앉아있다.
첫째는 집에 오자마자 가방을 던져두고 친구네 간다고 나갔다. 그 사이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첫째는 핸드폰이 없다). 원래 놀기로 한 친구네 말고 다른 집으로 가고 있다고 말이다. 벌써 나갔는데 다시 그곳으로 와주면 안 되냐니까, 이미 움직여서 그랬는지 계속 어떡하냐고만 되묻는다. 우선 알았다고, 알려줘서 고맙다고 끊고 바로 신발을 신었다.
마침 1층에서 만난 첫째. 엄마를 보자마자 운다. 친구네 벨을 계속 눌렀는데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며 어깨를 들썩이며 엄마 품에 파고든다. 친구들의 사정을 몰랐던 아이는 짧은 시간 동안 어떤 기분이었을까. 울음을 꾹 참고 걸어오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 그런 거 갖고 우냐고, 별일 아니라며 넘겨짚지 않는 것이리라.
시원하게 울고 나서 영화 <그린치>를 보며 해맑게 웃는 아이 덕에 나도 멍한 기분 좀 추스르라는 신호를 캐치할 수 있었다. 움직여보자. 비 오는 월요일이면 더 생각나는 Carpenters의 'Rainy Days And Mondays'부터 틀어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