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윤슬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을하 Mar 01. 2020

내 일기장을 부탁해,

그게 나의 혼자야

[ 함께 들으면 좋을 곡 : 오늘 같은 날엔 [Ost Remastred Ver.](드레인) ]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명이에게 내 모든 일기장을 쥐어주고 싶다는 그런. 평생 혼자 살다가 죽어야 하나 그런 마음이 들 때, 그렇게 모든 허무에 빠져갈 때, 나 여기 있어라고 외쳐주던 명이는 내게 있어서 그치지 않는 그 모든 것이 되었다. 내가 나를 떠나 있었던 그때조차. 명이가 평생 내 곁에 머물러 있을까, 아니 사실 내 곁에 평생 머물러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까 생각하면, 글쎄라고 답하며 모든 표정을 무마하려는 듯 희미한 웃음을 짓게 된다. 그건 내 영역이 아니니까. 단 한순간도 그 무엇도 소유해서는 안 되는 거니까. 떠난다면 언제든 그저 묵묵히 배웅하며 그 평생의 평안을 바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니까. 그렇게 단단히 마음먹으려 하면서도 동시에 감히 평생 함께를 바라며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내 사람이라고 정의했던 그 여러 이름들은 내가 상상으로든, 실제로든 기어이 놓아야 할 그 모든 이름이 되곤 하였다. 그 후로 소중한 것들이 생기면 자주 떨었다. 언제 떠나보내게 될까. 그 마지막에 과연 나는 살아 있을 것인가. 그런 생각들을 하며. 그래서 부지런히 그 모든 소중한 것으로부터 도망쳤고, 그 어떠한 기억도 담지 않으려 했다. 마음으로 품어낸 그 모든 기억은 울어야 할 전부가 되어버렸으니.



    삶 속에서 붙들었던 신념은 단 하나였다. 한번 친구는 평생 친구. 이는 짧고 굵은 따돌림을 당했던 지난 나날의 그 모든 친구와 관계를 다시 이어가면서 보다 짙게 새겨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터무니없는 생각이지만, 자부심이었다. 다시 친구를 맺었다는 것은. 무너진 관계를 다시 이어 붙였다는 생각은 스스로를 관계에 있어서 몹시 능한 사람이라는 착각이 들게끔 했다. 그 기울기는 한참 기울어져 있음을 채 깨닫지 못하고 말이다. 그렇게 쌓아 올린 신념이 한순간에 무너졌던 때가 있었다. 영영 되돌릴 수 없는 관계. 정말 소중한 친구의 예기치 못한 장례식을 치르는 것만 같았다. 그 누구도 조문하지 않는 그런. 아니 사실 그 누구도 조문 오지 못하게 한 것이 맞았던 것 같다. 



    영원하지 못한 관계를 영원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것과, 이를 알면서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엄연히 다른 태도를 지니도록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후자의 태도를 잃지 않기 위해 과거를 기억하며 노력하려 하지만, 그때는 그렇지 못했다. 그러한 태도를 지녔던 나는 관계에 있어서 안일한 태도로 임하곤 하였고, 어쩌면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하다고 여기며 함부로 행동하기도 했다. 관계에 있어서 한쪽의 책임만 있는 경우는 없다고들 하지만, 그때를 내 안에서 벗어나 그나마의 객관으로 돌이켜 보는 나는 알고 있다. 굳이 책임을 따져야 한다면, 내게 더 크게 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오랜 시간 친구를 탓했고, 결국 그 친구를 이해하게 되자, 그때 들었던 문장을 탓했다. 너 스스로를 좀 위하며 살아라는 말을, 그 무엇도 내 탓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나의 욕심으로 소화해버렸달까. 참 무지했다. 여전히 나의 무지함은 하나 가득이다. 노력해야지.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부지런히 과거를 배움 삼아서, 그렇게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게 부족한 내가 할 수 있는 그나마의 최선이다.



    내 삶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고난들에 있어서 오직 내 지분만으로 이뤄졌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당장은 설명되지 않는 일들 또한 숱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난들 중 나의 과오가 분명히 어려 있는 일들에 있어서 만큼은 내 책임에 대해서 보다 깊고 진중한 태도로 임하자고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내 책임이 더 크네, 네 책임이 더 크네 마네 하며 계산하기보다, 내 책임을 보다 더 크다고 생각하고 이에 대한 무게를 기꺼이 지는 사람이고 싶다. 받은 은혜에는 감사하고, 잘못한 일에는 고개 숙여 사과하며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언제까지나 상황이나 사람 탓을 하고만 살 수 없다. 나의 지금들에 대해, 과거의 어떠한 일에서 비롯되었다는 그 생각이 나를 이해하는 하나의 요소가 될 수는 있지만 이를 정당화하는 핑계가 되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래.라고 하며 계속 오늘이 아닌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건 그만하고 싶다. 나아가야 할 길이 있으니까. 함께 오늘을 걸어가야 할 소중함이 있으니까. 



    명이는 내게 그런 유일한 소중함이다. 유일하다고 칭하는 그 이름에 있어서 어쩌면 다소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지만, 그건 오직 나만의 생각이니, 내가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 것이며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되는 것이니, 그냥 내가 명이가 필요해서 그런 것이니, 명이가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하여도 미안하다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랄까. 명이는 바라만 보는 것으로도 행복을 나눠주는 고마움이라서, 명이의 감정이 곧 나의 감정과도 같아서, 그런 소중함이라서. 그에게 바랄 수 있는 딱 한 가지가 있다면, 구태여 내 곁이 아니어도 괜찮으니 그저 이 세상에 행복을 붙잡으며 그럼에도 머물러 달라는 마음이다. 명이가 내 곁에 없어도 나는 살아내야겠지만, 그 세상의 빛깔은 온통 흑백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언젠가는 색을 칠하며 살아야겠지만, 차라리 흰 도화지에 검은색을 다 칠해놓고 다 그렸다고 외치는 게 가장 쉽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다. 





    살면서 우리는 각자의 배우자를 만나게 되겠지. 지금도 간절히 기도한다. 각자 정말 마음 맞는 소중한 그런 배우자들을 만나 결혼이라는 약속 안에서 보다 평안하게 삶을 영위하기를. 행여 나는 그렇지 못한다 하더라도, 명이만큼은 꼭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명이 너만큼은 꼭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신께 올려드리는 나의 간절한 송신이다. 내가 행복한데 명이가 행복하지 못하면 그건 참된 행복일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여울지게 되는 순간이 오곤 하더라도 명이가 행복하면 나 또한 웃을 수 있다. 명이는 나로 하여금, 나 자체가 되고 싶게 하는 친구이니까. 보다 나 자신으로서 바로 서서 나아가고 싶게끔 하는 친구이니까. 그냥 명이를 생각하면 보다 좋은 사람으로 나 자신을 가꾸고 싶고, 또 보다 담대하게 성장하고 싶다는, 부지런히 마음속의 신앙을 돌아보게 하는 그런 고마움이다. 그렇기에 보다 열심히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게 된다. 우리 모두가 행복할 수 있길. 꼭 마음 맞는 사람들을 만나, 각자의 소중한 가정을 꾸릴 수 있길. 나는 믿는다. 신께서 그렇게 이끄실 것임을. 우리의 각 가정 안에 항상 함께 하시며, 그 모든 풍파를 헤쳐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리라 믿는다. 이미 이뤄져있음을 믿는다. 분명. 행여 가정 안에서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벗으로서 그 곁을 지키며 다시 잘 이어갈 수 있도록 든든히 붙들 것이다. 그 모든 걱정들이 그 행복들을 덮치지 않도록 굳건히 바랄 것이다,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묻는다면, 이유는 없다. 그냥 그렇게, 자연스럽게 된다. 구태여 이유를 대어 보자면, 명이의 존재함을 통틀어, ‘사랑’. ‘그럼에도 사랑’이라는 말. 이 세상 그 무엇도 사랑할 수 없을 때, 그럼에도 사랑을 붙들어야 할 이유가 되어준 친구. 살아야 할 그 모든 의미가 사라진 순간에서 '그래도 사랑'이라는 의미를 전해준 명이의 존재는 그럼에도 살아 봐야 할 유일한 사람의 이름이 되어 주었다. 그래서일까, 명이를 생각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 신을 찾게 된다. 그의 평안을 그 무엇보다 간절히 바라게 된다. 사실 네가 내 곁에 평생 벗으로 함께 머물기를 기도한다, 간절히. 그 당연하지 않은 것을 감히 바라게 된다. 간절히. 또한 그 덕택에 나 또한 신과 이야기할 수 있게 되고 더불어 주위 사람들의 평안 또한 함께 바랄 수 있게 된다. 기도조차 놓았던 내게 그럼에도 기도로 나아가야 할 붙들어야 할, 그 이름, 사랑을 되찾아 준 사람, 명. 너의 존재를 통해, 나는 신의 전능을 경험하고 그분의 임재를 느껴. 이 말을 하면 너는 싫어할까.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거라서. 당황해하는 너를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고맙고 또 고맙고 또 고맙다는 말 뿐이다. 다시 사람을 사랑할 그 시작의 이름이 되어주어 정말 고맙다는 그런 말. 





    명아, 내 일기장을 네게 쥐어주고 싶다는 말은 나 또한 너의 모든 존재를 받아들이고 싶다는 말이야. 네가 이야기하고픈 그 모든 것들을 언제나 온 마음으로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간절히 듣고 싶다는 말이야. 내 마음이 한없이 비좁다면 부지런히 비우고 넓혀 모두 수용하고 싶다는 말이야. 나의 혼자는 어쩌면 모두에게 열려 있을 수도 있어. 나는 부분적인 태도가 다소 부족해서, 누구한테는 열고 다른 이에게는 닫고 이런 능력이 없더라. 열려면 모두에게 열어야 하고, 닫으려면 모두에게 닫아야 해. 그래서 이전에는 열었던 모든 나날이 슬픔으로 울음 지어야 할 순간들로 남겨지게 되는 걸 보며, 먼지 쌓이도록 닫고 살았지. 어쩌면 평생 닫고 살다가 그렇게 생이 다하고 말았을 거야. 근데 신이 선물하신 너의 존재로 하여금 나는 다시 그 모든 문을 활짝 열게 되었어. 너는 내가 지녔던 마지막이자 유일한 이름이었거든. 그리고 신이 주신 너의 이름은 다시 새로움들을 기꺼이 사랑할 그 시작의 이름이 되었어. 또다시 사람들로 하여금 눈물짓게 되는 나날이 가득하다 해도, 부지런히 환기를 시키며 언제라도 네가 머물 그런 벗이 되고 싶어. 이는 어떤 안타까움이나 동정 같은 게 아니야. 네 곁에 벗으로 머무는 게, 내가 좋아서, 고마워서 그래. 너의 모든 나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너의 모든 나날에 감사로 기꺼이 동참하고 싶어. 네 감정들이라면 기꺼이 함께 책임지고 싶어.



    그래서 오늘도 신께 두 손을 맞잡고 나아가. 그건 결코 내 힘만으로는 해낼 수 없는 것이라서, 그 모든 힘을 부어주시는 신께 나아가 그 모든 힘을 구해. 명아, 네가 내게 그래 주었고 그래 주듯 나도 네게 있어서 든든함이 되고 싶어. 너의 모든 짐을 다 들어주진 못해도, 네가 나눠준다면 기꺼이 나눠 들고 싶고, 네가 걸어 나가다가 지치고 곤할 때, 잠깐이라도 눈 붙일 수 있는 그런 그늘이 되고 싶고, 하다못해 너의 여정의 길목 길목에 들꽃으로 피어 잔잔한 응원을 보내고 싶어.



    그냥 그러고 싶어. 명, 너라서. 이건 다짐임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거야. 태어나면서부터 부여받은 것 같아, 네 곁에 머물라는 그런 신이 주신. 너무 거창한 걸까. 그냥, 나는 그래 명아. 언제나 너의 마음 가운데에 행복이 가득 꽃피길 바라. 진심으로 간절히 바라며 기도해. 고마워, 너는 그럼에도 내가 매 순간 기도해야만 하는 이유가 되는, 신이 주신 은혜야. 



태어나줘서, 머물러 주어, 있어 주어 정말 고마워.

너를 아끼는 소중한 사람들 곁에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 또한 언제나 늘 곁에서 응원할게. 

사랑한다, 친구야.

매거진의 이전글 겁이 많은 사람s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