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러니까, 친동생을 말하는 건 아니다. 아는 동생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 동생과도 오랜 시간 연락하지 않다가 듣게된 부고 소식이었다. 처음에는 연락만으로 조의를 표할까 싶었다. 일하면서도 몇 번씩 마음이 바뀌었는데, 과거 그와 함께 했던 기억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제법 긴 시간 동안 함께 일했다. 그는 어렸고 나도 고작 이십 대 중반 정도의 나이였다. 하는 일이 달라 자주 마주하지는 못했지만 오가는 길에 안부를 물곤 했고, 가끔 밥을 함께 먹기도 했다. 그러던 한 날은 그가 고민이 있는 기색이라 그의 고민을 털어내 보려 함께 밥을 먹자고 했다. 시간을 맞춰 점심을 먹으며 그의 고민을 듣고 제대로 경험해보지도 않은 사회생활에 대한 작은 조언도 했다. 그러고서 내가 떠나기 전까지 마주치면 인사했고, 내가 떠난 뒤로는 생일 날 정도에만 안부를 물을 뿐이었다.
함께 했던 동료 세명과 함께 동생의 장례식장을 찾았다. 그는 살이 빠졌고 매우 수척해 보였다. 함께 간 동료들을 보자마자 눈물을 터뜨리며 맞절을 했다. 그와 함께 했던 시절부터 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죽음은 언제나 갑작스러운 법이다. 언제 어디서 마주할 수 없는 죽음이지만 그에게도 매우 생소했던 것 같다. 아버지의 부재는 어떠할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느낀 그 감정과 비슷할까. 다른 객들이 계속 찾아와 우리는 자리에 앉아 밥을 먹었다. 잠시 뒤 동생이 와서 짧게나마 대화를 나누었고, 그는 같이 온 동료에게 "언제쯤 잊혀지나요?"하고 물었다. 그 동료는 아버지를 사고로 여의였다. 아버지가 떠오르는지 눈시울이 살짝 붉어기던 그는 "잊으려고 한다고 잊어질 수 없지. 살아 계신다고 생각해. 어디 먼 곳 여행이라도 간 것처럼."라고 대답했고 후배는 "지금이라도 집에 가면 아버지가 있을 것 같아요..."히며 받았다.
그 말을 들으며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당시를 떠올렸다. 나 역시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고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왔을 때 여전한 얼굴로 할머니가 반겨주실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3일 간 비운 집이 더 휑하게만 느껴졌다. 휑한 집은 여전히 그대로지만 할머니는 이곳에 없다.
죽음은 부재 아닐까. 어딘가에 있을 것 같으나 없고, 영영 볼 수 없는 부재. 후배도, 동료도 나도 죽음이라는 부재가 생겼고, 그 대상이 다 다를 뿐이다. 각자의 슬픔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으나 언제 생각해도 눈시울이 붉어질 만큼 그 부재의 길이는 매우 길 것이다. 그렇게 길고 길게 부재가 이어지다 보면 언젠가 무덤덤해지지는 않더라도 웃으면서 고인을 생각할 수 있지는 않을까.
오랜만에 본 동생이라 친근하게 위로의 말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다만 동료들과 함께 그를 찾아 과거를 곱씹고 회상하면서 잠시나마 그에게 그날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그렇게 함께 했던 날 이후로 늘 재미가 없고 힘들었다고 말하는 그에게 동료들은 단순하게 위로를 건네지 않고 그가 밥을 잘 챙겨 먹을 수 있게, 웃을 수 있게 했다. 부재에서 오는 슬픔에 잠기지 않도록, 몸이 상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는 그들의 모습이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 더 위로가 되는 듯했다.
밥을 먹고 잠시간 앉아서 동생과 대화를 나누고 우리는 장례식장을 나섰다. 오늘이 아니라면 또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흐지만... 우리의 발걸음이 동생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아주 사소한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