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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귿 Jun 08. 2021

늦봄

우리 가족은 한 지역에서 오래 살았다. 나의 평생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 군대를 전역하고 사회에서 자리를 잡기까지 사는 곳만 달라졌을 뿐 늘 같은 지역에서 살았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오래된 하천이 하나 있는데, 근방에서는 제법 큰 곳이다. 우리 가족이 막 이 동네로 이사 올 때만 하더라도 ‘똥강’, ‘물이 더럽다’ 등 좋지 않은 별명을 가진 곳이었지만 수질정화, 산책로 조성 등 정비 사업을 통해 다양한 생물들이 살만큼 수질이 좋아졌고 산책하거나 운동하기에도 좋은 곳이 되었다. 봄에는 예쁜 벚꽃과 함께 추억을 남기기 좋은 곳이다.

나 역시 종종 하천의 산책로를 거닐었다. 때로는 땀을 빼며 운동도 하고, 밤바람을 쐬며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걷기도 했다. 때론 부모님과 함께 밤마실을 나와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말소리와 주인을 따라 걸어 다니는 반려견의 총총거림에 집중하기도 했다. 맑아진 하천은 인근 카페와 아파트에서 새어 나오는 조명을 비추어 반짝거리고 그 사이로 물결을 일으키며 물고기가 튀어 오르기도 했다. 특히 긴 겨울이 지나고 봄과 여름의 그 어느 중간쯤 샛노랗게 피우는 꽃들과 활기가 넘치는 하천의 분위기는 그냥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기운을 주었다.

   

가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그곳도 최근에는 발걸음이 줄었다. 직장이 하천과 떨어진 곳이기도 했고 마치고 집에 오면 지친 탓에 드러누워 부족한 잠을 채우기 바빴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게으름에 더욱 멀어지기만 했는데, 최근 이직을 하면서 아주 약간 상황이 바뀌었다.


최근 이직한 곳은 근처는 아니지만 출퇴근을 위해 늘 하천 위로 지어진 다리를 지나가야만 했다. 버스 창 너머로 보이는 하천은 출근길과 퇴근길의 분위기가 굉장히 달랐는데, 출근길에는 아침부터 운동을 하거나 산책로를 천천히 걸으며 출근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보이는 반면 퇴근길에는 여유롭게 산책하는 연인이나 밤바람을 쐬러 나온 가족들도 보였다.

하루는 직장이 평소보다 조금 일찍 마쳐 퇴근을 빨리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버스를 이용해서 퇴근을 하는데 여름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날씨가 더웠다. 당시 나는 일교차가 큰 날씨 탓에 반팔 티셔츠 위에 가벼운 운동복을 걸치고 있었고, 버스 실내는 제법 많은 사람들과 햇볕이 내리쬐어 후덥지근했다. 늘 휴대폰에 코를 박고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고개를 들지 않지만 더위에 걸치고 있던 운동복을 벗기 위해 자연스레 고개를 들었다. 때마침 버스는 다리 위를 지나고 있었고 하천의 전경이 한눈에 보였다. 뛰고 있는 사람들, 느긋하게 거닐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며 꽃은 샛노랗게 피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햇빛은 하천에 반사되어 밝은 빛을 뿌렸다. 멍하게 바라보다가 창에 반사된 내 얼굴이 마치 나를 보는 듯했다. 창에 비친 그는 나를 꿰뚫어 보듯 그동안 잊고 있던 것을 떠올리게 했다.


작년에 있었던 일이다. 2년 정도 투병생활을 하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어릴 때부터 맞벌이를 하시던 부모님을 대신해 우리 형제를 돌봐주셨고, 급작스럽게 쓰러지시기 전까지도 퇴근해서 집에 오면 정정한 모습으로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런 할머니가 어느 날 쓰러지면서 거동도 못하시고 말도 못 하시게 되면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병원신세를 지고 있는 할머니를 자주 찾아뵙기도 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면회가 제한되면서부터 거의 병원엘 가지 못했다. 코로나 이후 몇 달 지나지 않아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할머니의 마지막을 지킨 것은 나였다.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죽음이란 것이 준비한다고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다. 상을 치르는 중에도 상이 끝난 후에도, 언제라도 집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반갑게 할머니가 계실 것 같지만 다시는 그럴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다른 문제였다.

당시 내가 느낀 죽음은 생의 마지막에 대한 무서움이 아니라 다시는 재회하지 못한다는 상실감이었다. 당장은 체감하지 못하는, 사소한 것 같지만 일상인,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식사, 눈을 감고 뜨면 하루의 시작인 아침이 되는 것 등 당연하게 누리는 모든 것들이 없어졌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체감하게 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서야 할머니와 함께한 매일이 소중한 것을 깨달았듯이 하천을 보면서 떠올린 것도 하천을 버스를 타고 가는 이 순간이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일상의 상실감이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 지금이 영원하지 않음은 당연한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생기를 띄며 꽃도 피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 활기가 넘치는 늦봄의 하천도 여름과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온다.


지금 이 순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도, 친구들과 떠들며 즐거운 한 때도, 매일같이 먼 길을 출근하는 일상의 바쁨까지.


어느덧 봄의 끝자락에서 여름이 되려는 순간, 내 인생도 느지막이 늦은 봄에 접어들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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