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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nker Jan 09. 2020

무모(無母)무모(無毛)무모(無謀)

CHATPER.4

집이 없는 상태로의 6년간의 기록.
내가 집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내가 히피가 된 이야기.
히피에세이를 씁니다.
Another chapter to our story.
챈커(CHAENKER)입니다.



짬지. 어릴 적 엄마가 나의 ‘그곳’을 표현하는 단어였다. 나는 그것이 부끄럽고 민망하고 노골적이라고 생각했다. 옆집 아줌마는 ‘그곳’을 공주라고 표현했다. 그것 또한 부끄러웠지만 무척 소중하고 예쁜 곳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하튼 짬지든 공주든 남이 보는 것과, 남과 다른 것은 상상도 못할 일. 하지만 나는 그해 여름 무모(無毛)한 채로 무모(無謀)하게 살았다. 그것은 무모 (無母)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이제 말하려고 한다.


1. 무모 (無母)

우리엄마 경숙은 동네에서 가장 고리타분한 여자였다. 우선 또래 친구들 중에 내 교복 치마가 가장 길었다. 엄마는 치마가 짧으면 헛 바람이 든다며 단 한번을 줄여주지 않았다. 그래서 내 별명은 ‘찐따’였다.

두 번째는 고데기도 사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친구들은 앞머리 말기에 바빴지 만, 난 매일 뻗힌 머리로 학교에 등교했다. 친구들은 머리는 감고 다니냐며 놀 려댔지만, 반 곱슬머리 때문에 정말이지 어쩔 수 없었다.

세 번째, 집안에서마저 노브라에 짧은 바지를 입고 다니는 꼴을 보지 못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안도록 하던 사람이 었기에 집 안에서도 옷을 갖추어 입고 살아야 했다.

그 외에도 여성으로서의 변화는 책 한권을 주는 것이 전부. 그저 궁금해서 처음 야동을 접한 날은 매를 맞았고, 목욕탕에서는 털이 없는 대학생언니를 보며 혀 를 찼다. 그렇게 경숙에게는 털이 없는 여자란 몸을 파는 여자와 다름없었다. 여하튼 경숙은 나의 노출, 내가 세상에 노출되는 것과 속살이 노출되는 것에 대 해 굉장히 예민하고 엄격한 여자였다. 그것들이 지긋지긋했던 나는 스무 살이 되던 해, 그곳으로부터 뛰쳐나왔다. 그 리고 몇 해가 지난 뒤 나는 이탈리아 아래 아주 작은 섬. 바다가 보이는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살게 되었다. 엄마, 경숙 없이.


2. 무모(無毛)

그 집은 월세였다. 심지어 바다가 보이고 잔디가 깔린 집이라 비쌌다. 월세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쿠킹클래스를 일주일에 2번은 오픈하거나, 100개 이상의 팔 찌를 만들어 팔아야했다.

나는 일주일에 세 번은 팔찌를 팔기 위해 나갔다.

이름조차 없는 동네 작은 해변이 내 주 판매처였는데, 바틱 문양의 패브릭 위에 팔찌를 진열하고, 그 앞에서 민트색 우쿨렐레를 연습을 하고 있노라면, 오다가 던 사람들이 나의 안부를 묻고 아시안 꼬마의 재주를 신기하게 바라보던 관광객 은 팔찌를 많이 팔아주었다. 나는 그곳의 그 시간을 참 좋아했다. 놀면서 돈을 버는 것 같아 인생이 꽤나 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좋았던 건 망고 요거트를 먹으며 해변을 보는 것이었다, 서른 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햇빛을 즐기고 있었고, 그들의 자유를 보고 있으면, 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는 것 같았다.

언제나 여름이었던 곳,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나는 점점 그곳에 물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세상에 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고, 그들 과 자유를 함께하기 위해 브라질에서 온 지젤라와 함께 제모를 받았다. 그리고 그것을 ‘브라질리언 왁싱’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브라질에서 온 그녀를 통해 알게 되었다.


3.무모(無謀)

나는 더위를 참지 못해 팬티만 입은 채 잤다. 이불의 바스락 거리는 촉감이 그 토록 좋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진작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잤을 텐데… 여하튼 잠에서 깨면 팬티 위에 티셔츠 하나만 걸친 채 걸쭉한 초콜릿 죽을 만들어 냈 다. 뉴텔라 10스푼과 핫 초코 파우더 5스푼, 밀카초콜릿을 반 정도 부셔 넣고, 따뜻한 우유를 3분의 1만 채워 넣기. 그리고 휘휘 저어 내면 끝! 대담하게 푹 하고 한 스푼을 떠먹는다면 눈앞에서 에로스의 큐피트를 맞을 수 있다. 초콜릿 죽은 내 삶의 의지였고, 하루를 시작하는 용기였다. 나는 그 의지와 용기로 분주하게 빨래를 널거나, 요리를 한다. 그림을 그리거나, 프랭키밸리의 can’t take my eyes off you를 틀고는 맥주를 마시며 춤을 추기도 한다. 그러다 그 마저도 지루해진다면, 티셔츠와 팬티마저 벗어던진 채 정원에 눕는다. 사타구니를 간지럽히는 풀과, 등으로 느껴지는 따스함, 가슴과 배를 덮어주는 햇볕, 발가 락 사이로 바람이 흘러 들어오고 머리카락이 귓가를 살랑거린다. 자꾸 웃음이 났다. 가끔씩은 잔디와 게임을 하는 것과 같이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그들을 뽑으려 애썼다. 그러다 그대로 낮잠을 자거나 call me by your name을 소리 내서 읽었다, 아니면 패디스미스의 책을 읽으며 오이와 라임을 넣은 진토닉 마셨다, 그것들은 잔디에 나를 깊숙이 녹여버리곤 했다. 나의 은밀하지만 은밀하지 않은 무모함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고는 더 자주 잔디에 누웠다. 물줄기는 시원했고, 햇볕은 뜨거웠다. 무모(無謀)함은 내게 자유 그 자체였다.


4.DOLCE VITA

어디선가 'DOLCE VITA'가 들렸다. 그것은 옆집 아줌마가 나를 보고 하는 소리 이다. 그녀는 홀랑 벗은 나를 보고 'DOLCE VITA'라고 했다.

DOLCE VITA는 달콤한 인생을 뜻한다. 그녀는 내 인생을 부러워했고, 우리는 가끔씩 정원에서 만나 나체로 독서와 위스키에 빠져 햇볕을 만끽했다. 나는 삶이 만족스러웠다. 미움은 한 점도 없는 그런 나날이었기 때문이다. 나체가 ‘야하다’라고 느껴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아름다운 나무나 풀과 같은 자연이라 느껴졌다. 나무가 된 것처럼 매일 매일 광합성을 했다. 몸은 까맣게 그을렸지만, 친구들은 내게서 빛이 난다고 했다. 햇빛을 잘 머금은 나뭇잎과 같았던 걸까. 나는 내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더 이상 화장을 하지 않았다. 꾸미지 않는 자연의 그 색이 그리고 나의 모습이 눈부시게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어느 누구도 나의 겉모습을 지적하지 않았다. 이미 그것은 나의 삶이였기에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겠지. 그리고 한다한들 ‘뭐 그럴 수 있지’라며 가볍게 넘기곤 했다.


그 해 여름. 무모(無母),무모(無毛),무모(無謀)가 내게 준 건, 가벼운 자유 따위가 아니었다. 나에 대한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기준, 자연 그리고 계절의 촉감, 술과 잔디와 책과 음악을 맛있게 함께 하는 법. 그 모든 것. 그 해 여름은 모든 전부를 내게 주었다.

오늘은 정말이지 목이 마르다. 오이를 가득 넣은 진토닉 한잔이 간절해 지는 그런 갈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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