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5
집이 없는 상태로의 6년간의 기록.
내가 집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내가 히피가 된 이야기.
히피에세이를 씁니다.
Another chapter to our story.
챈커(CHAENKER)입니다.
제목이 섬뜩하다고? 물론 그럴 수 있지. 나는 오늘 무서운 이야기를 해볼까 하거든.
때는 2015년. 그해 나는 인도에 살고 있었다. 뭄바이라는 큰 도시에서 3시간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이었지.
누구든 인도를 떠올리면, 비포장도로와 길가의 소를 떠 올릴 거야. 돈도 없고 가난한 나는 나무 한 그루 자랄 수 없는 무더위 속의 비포장거리를 걸어 다녔어. 그러다 소똥이 가득 담긴 빨간 트럭이 지나갔지. 그리고 누런 먼지가 소똥 냄새와 함께 온 세상에 퍼지는 거야. 나는 먼지 구덩이 속에서 눈을 감고 코를 막고 5초를 세지.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리고 한쪽 눈을 살짝 뜨고 좌우를 살펴, 먼지는 모두 가라앉았을까 냄새는 다 사라졌을까 하고.
그렇게 나는 6개월 가까운 시간을 인도에서 보내고 있었어. 그러던 어느 날은 40도가 넘는 무더위에 못 참겠다 싶더라고, 나는 점심 먹을 돈을 모두 릭샤 (인도의 오토바이에 리어카를 매달아 만든 택시)아저씨에게 밀어줬지. 기껏 해봤자 오 백원쯤 됐겠지만. 여하튼 툴툴거리며 잘 달리던 릭샤는 얼마 달리지 못해 교통체증 가운데 갇혀버렸어. 그리고 난 생각했지. ‘저쪽 앞에 우리 소님이 주무시나 보네‘ 인도는 소를 향해 클락션도 울리지 못하는 나라야. 그저 그분들이 깨셔서 자리를 비켜줄 때까지 기다리는 거지. 긴 자동차 행렬 속에서 그분들의 낮잠이 끝나길 기다리는 동안 나는 매연 속에 죽을 지경이었어. 그때, 자동차 사이로 아이를 안은 아이 엄마가 구걸하는 장면이 눈에 보이는 거야. 어머 속상해라. 나는 지갑을 열었고, 저녁밥을 먹을 돈 일부를 꺼냈지. 하지만 꺼냄과 동시에 릭샤 아저씨는 나를 막아섰어. 아이를 잘 보라고. 아이는 곤히 잘 자고 있는데 왜? 릭샤 아저씨는 다른 쪽을 손가락질했어, 거기에도 아이를 안고 구걸하는 아주머니가 있었거든. 그래, 그게 왜! 아이를 앉고 구걸하는 게 뭐가 문제냐고!
‘베이비…베이비 슬리핑…’
아기 잘 자고 있네. 근데 그거 뭐! 어쩌라는 거야 대체! 반복되는 대화에 짜증을 내자 릭샤 아저씨는 또 다른 쪽을 손가락질해.
그곳엔 곤히 자고 있는 아이를 안은 또 다른 아주머니가 구걸하고 있었지.
그때부턴 마음이 싸하더라고, 뭔가 좀 이상하잖아.
나는 사방을 둘러봤어. 온 동네 아기들이 낮잠시간인지, 엄마들은 대낮에 자는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나와서 구걸을 하니까, 그 상황이 정상 같아 보이겠어?
왜 그런 걸까. 왜 모든 아이들이 잠을 자고, 아이의 엄마들은 잠자는 아기를 데리고 이 매연 속을 다니는 걸까.
궁금한 것들이 일억 천만 개 정도 되었지만, 릭샤 아저씨와는 소통이 어려웠기에 목적지에 도착한 뒤, 나는 친구들을 만나러 갔어.
‘HAPPY HOLI’
친구들과 나는 ‘해피 홀리‘ 라는 작은 맥주 집에서 만났지. 그리고 여느 때처럼 담배를 뻑뻑 피우며 맥주를 마시고 우린 웃고 즐겼어.
그러다 다시 도로 위에서의 아기들과 엄마들이 생각났지.
“챈! 너 요리하는 거 봤구나? 하하 ”
친구들은 모두 웃었고, 나는 알 수 없는 이야기에 웃을 수가 없었어.
“우리는 요리 한다고 표현해. 걔네 약 먹고 자는 거야”
그리고 나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펄펄 뛰었지.
“여기에서는 매일 있는 일이야, 그들에게 절대 돈을 줘서는 안 돼”
자세히 말 좀 해봐! 그게 무슨 말이냐고, 아이를 재워 구걸하는 게 하나의 유행이라는 거야?
“아이 엄마들은 아이를 약을 먹여 재워. 아이가 깨어있으면 ‘경제활동’을 하는 데 방해가 되거든”
뭐라고? 그렇게 아이가 약을 먹고 온종일 자도 괜찮은 거야?
“그럴 리가. 괜찮지 않지. 저러다 아이는 죽어. 약물 중독인 셈이지.”
말도 안 돼. 아이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거야? 제 배로 낳고 그게 가능해?
“그 애 엄마. 그 여자 아니야. 애가 죽으면 버려. 그리고 또 훔쳐 오는 거지. 아이는 많으니까. 그래서 쿠킹(cooking)이야. 돈을 위해 아이를 요리한다고. 그들은 배가 고프거든.”
…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 이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친구들이 싸이코로 보이기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깨달았지. 이 친구들 잘못이 아니야. 이런 상황이 아무렇지 않아질 만큼, 여기선 흔한 일이라는 뜻이니까. 그만큼 상황이 어려워지면, 만신창이 상태, 아무것도 모르는 뭣 같은 상황이 매일같이 일어나면, 사람에겐 도덕이고 나발이고가 없어져. 본능에만 충실해지는 거야. 그건 인간이 아냐. 식인종… 그래 그들은 같은 사람을 먹고 무의미한 제 목숨을 꾸역꾸역 연장하는 식인종이야. 난 그들이 사람고기를 먹고 사는 식인종이라는 확신이 들었어. 그들의 풀린 눈이, 사람고기를 먹어서 잘못된 거라고 생각했지. 그리고 그곳을 벗어났어. 내가 이 이야기를 내 친구들처럼 웃으며 하게 될까 봐 두려웠거든.
한국에 돌아왔어. 생각이 많아졌지. 이후 4년의 시간이 흘렀고, 10대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되었던 나는 슬금슬금, 스물보단 서른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 가고 있어. 그러면서 꿈도 생겼지 뭐야. 나는 소수를 위해 살고 싶더라고. 내 관념하나는 확실하잖아.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내 중심 하나 믿고 여기까지 까불어 왔다고! 나는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싸워주는 기관에 취직했어. 그리고 한국의 수많은 식인종들을 만나고 있지. 그 식인종들과 싸우기도 하고 사람은 사람을 먹는 게 아니라고 타이르기도 해. 그러다 보면 법이 뭣 같게 느껴질 때가 많아. 법이야말로 소수들을 배척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다수의 이익을 위한 질서라는 생각이 들어. 즉, 식인종을 만들기 딱 좋은 룰이지. 오늘 우리 아빠는 그러더라고,
“야 배채은, 신호등이 왜 있는 줄 아냐? 질서를 지키라고야. 빨간불이면 안 가면 되고, 초록불이면 가면 돼. 그 질서 안에서 살아가면 되는 거지, 그게 아니잖아? 질서는 무너진다. 세상에 정의? 개뿔.”
“네 네 어련하시겠어요. 저는 반인륜적인 식인종으로 살 바엔 반사회적인 히피 살게요. 피스!” 나는 전화를 뚝 끊어버렸어.
여하튼 정말 뭐 하나 쉬운 게 없는 거 같아. 꼭 먼지 구덩이 같다니까! 먼지는 꽃가루처럼 피어오르고 내 속눈썹에 얹혀 흘러 코끝을 지나가버려. 나는 아차 싶었어. 그리고 재빠르게 숫자를 세기 시작했지.
하나. 나는 숨을 참아. 눈을 감지. 그리고 한마디를 내뱉어. “씨발!“
둘. 하지만 상상을 하는 거야. 드넓은 잔디밭을 달리는 나를 말이지.
셋. 얼굴로 느껴지는 이 따가움이 그저 순간의 지나가는 무언가일 뿐이라고.
넷. 머지않아 이 바람은 멎을 거라고. 그리고 곧이어 끝이 날거라고 다독이지.
다섯. 눈을 뜨면 계속 되는 거야. 이전보다 먼지는 가라앉았겠지. 더 이상 두려운 건 없어. 나는 입속에 씹히는 모래를 퉤 하고 뱉고 계속 갈 길을 갈 거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