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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즈 uze Jun 06. 2020

그녀들의 지혜

'엄마'는 친구에게도 힘이 된다

모름지기 제대로 된 인간은 돈을 벌어야 한다(적어도 눈에 보이는 형태로 지속적으로)는 이 사회 정서로 볼 때 백수는 약자이자 소수자이다. 몇 년 전부터 퇴사 트렌드와 함께 '잠깐 쉬었다 가렵니다' '아무 일 안 해도 큰 일 안 나요' 등 너무 애쓰지 말고 좀 쉬어가자는 메시지도 많아졌지만 그래도 눈치 보이는 게 사실. 공연히 어깨가 움츠러들고 사람도 가려서 만나게 된다.       


최근 몇 년 새 간헐적으로 백수, 반백수 시기를 겪기 시작한 상황에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내게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그룹 중 하나가 결혼한 친구들이라는 사실. 일을 병행하는 친구도 있고 결혼 후 쭉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친구도 있지만 다들 이 사회에서 '아줌마'라는, 여러모로 뉘앙스가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는 그룹이다.(사실, 나도 밖에 나가면 이렇게 불린다.) 흔히 '집에서 살림이나 하는데 뭐 알겠어' 비아냥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제 식구만 챙기는데 극성을 떠는 무개념 인간의 대명사로도 불리지만 가까이에서 본 사람들은다 안다. 그녀들이야말로 지혜롭다는 것을.


'취집'이라는 말이 정말로 싫은 게 결혼과 함께 시작되는 관계와 책임의 무게가 근로계약서로 묶이는 회사의 그것과 절대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퇴사를 하면 당장의 소득이 없어지고 회사 사람들과도 소원해지겠지만 적어도 당장 오늘 저녁부터 갈 데가 막연하다던가,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이 울면서 막아서진 않을 것 아닌가.

     

결혼한 지 수십 년. 하루 종일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노동을 하면서, 바깥일을 하다 휴식을 찾아 돌아온 다른 구성원들의 요구를 들어주며 '내 맘 같지 않는 세상'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껴온 세월.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같을 나날들. 그 시간 속에서 여자들은 삶의 본질을 깨달아간다.

     

이번 백수 시기를 시작하면서도 다른 어떤 이들의 조언보다 함께 마트에서 장을 보다 툭 던진 친구의 말이 위로가 되었다. "알고 보면 말이지, 사람들이 내 일에 별로 관심이 없어. 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거지."  또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안달하지 말고 나처럼 살아. 아무 생각 없이." 조금은 센 척, 잘난 척, 최악의 약점만은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써오다가 이렇게 툭,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를 낮추면서 담백하게 던지는 조언이 얼마나 힘이 되던지. 그럴듯한 명함 한 장 없지만 저 멀리서 바라만 봐도 사태 파악이 일목요연하게 끝나는 고수의 내공이 아줌마들에게는 있다.


나이 오십. 이제 돌고 돌아, 나와 그녀들은 같은 출발점에 서 있다. 아니, 사실은 늘 함께 걷고 있었는데 내가 깨닫지 못했을 뿐. 한창 일에 재미를 붙여 살금살금 오른 연봉으로 해외여행 다닐 시절에는 입만 열면 아이와 남편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이 지루하다고도 생각했다. 물론 결혼한 친구들은 나이 먹어가는 줄도 모르고 여러모로 대책 없는 내가 한심했을 것이다. 그렇게 서로 가는 길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이제야 눈에 띄게 싫은 티를 내도 어린이집부터 영어유치원을 거쳐 생기부, 수시 및 정시모집에 이르기까지 한국 교육체제 전반을 줄기차게 서머리 해준 친구들에게 감사한다. 옆에서 주워들은 상식 덕에 생면부지의 낯선 이들에게도 넉살 좋게 접근할 수 있게 됐으니. 남편, 시댁, 친정, 동네 엄마들 등 거미줄처럼 엮여 있으면서 뭐 하나 쉽지 않은 인간관계를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훌륭한 대리 학습이 되었다. 이제 빼도 박도 못하는 나이 오십이 되어서야 삶의 위기에 봉착한 나에 비해 이미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은 인생의 선배들.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영화를 보느냐에 따라서도 서로 길이 다르다고 생각한 때도 있었다. 그러니 심지어 결혼에 있어서야. 그런데 나이 먹어보니 다 거기서 거기다. 사는 게 그렇다, 라는 말이 예전에는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엄연히 있는 차이를 뻔뻔하게 눙치는 윗세대들의 농간이라 생각했는데 나도 절로 이런 말이 나온다. 다 겪어봐야 아는 법인가 보다. 내가 이 경지까지 올 때까지(아직도 멀었지만) 기다려주며 모임에서 내치지 않은 친구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이야기한다. 사회 경력은 차고 넘치지만 조직에서는 더 이상 필요치 않은 존재가 되어버린 나도, 또 주부 경력은 만랩이지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는 뭘 써야 할지 막막한 친구들도, 자꾸만 길어져가는 여생을 위해 다시 뭔가 해야 한다고 느낀다. 이 과정에서 다른 길을 걸어온 서로의 경험을 나눌 수 있어 더 도움이 되고 의지도 된다. 물론 무심한 남편과 좌충우돌 날뛰는 애들을 상대하며 쌓아온 친구들의 내공이 더 크지만, 그래서 더 작정하고 기대볼 생각이다. 못난 애 하나 더 키우는 셈 치고 좀 봐달라면서. 이렇게 '엄마'의 힘은 친구도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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