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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즈 uze Apr 25. 2022

반백수 5년 차... MBTI가 헷갈린다

취준에 코로나까지 겪으며 바뀌어가고 있는 나의 성격과 인간관계

오랜만에 인스타그램을 열어 뒤적뒤적거리다 친한(친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올린 피드를 보았다. 몇 개월 전 퇴사를 하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분야에 진출해 나름 활기차게 사는 친구라 팔로어가 백 명도 안 되는 누추한 인스타그래머지만 성심껏 하트를 찍고 사라지려는데 한 구절이 눈길을 끌었다. 퇴사를 한 사람들을 위한 '찐 조언'이라며 그는 말했다. "퇴사했을 때 날 도와주는 사람은 아주 가까웠던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사람"이라고.


보자마자 든 생각은 '민망하다'는 것. 그래, 그가 어렵사리 퇴사를 하고 또 낯선 업계로 가 홀로서기를 할 때 난 무엇을 도와주었나. 이 코로나 시국에도 가끔 만나 밥도 먹고 커피도 마셨으나 이렇게 하기로 했다, 저기로 간다 근황만 전해 들었지 정작 행보를 정하고 자리 잡는 과정에서 조언이나 도움을 준 기억이 없다. 그냥 진짜 밥만 먹고 커피 마시면서 시시껄렁한 이야기만 하며 웃었다.


물론 절친한 사이가 아니라 안면 정도 있는 지인이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는 건 심리학이나 사회학에서 이미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가설이다. 약한 연계(Weak Tie)의 지인들이 내 활동 범위를 넘어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에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알고 지내는 사람들까지 겹치기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정보는 그다지 없다는 것. 수십 년 만난 베프보다 6개월 전 잠깐 스쳐서 인친을 맺은 사람이 커리어 상으로는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의 코멘트를 곱씹으며 뒤늦게 최근 만났던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문득 씁쓸해졌다. '근데, 내가 이제 그런 일을 해줄 수는 있는 거야? ' 하는 질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그런 일' 자체를 한지 좀 오래된 것 같다. 누군가를 추천하고, 또 추천받으면서 크로스체크를 주고받는, 그런 업계 인싸로서의 역할. 언제부터일까? 이런저런 이유를 꼽고 있자니 현타가 오면서 뒤통수부터 뜨끈해지지만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비슷한 질문이 새삼스레 떠오른다면 반면교사가 될까 싶어 써본다. 나랑 딱 정반대로 하면 업계의 마당발, 네트워커, 인플루엔서, 코어, 플랫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첫 번째로는 내가 더 이상 조직에 속하지 않은, n잡러가 되었다는 점에 있는 것 같다. 일방적으로 선택을 받는 입장의 n잡러가 되자 누군가는 어떻냐던가, 사람 좀 추천해달라는 요청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 자리에 나를 불렀기 때문이기도 했고, 일할 사람을 고르는 조직 내 사람들은 내부에서 프리랜서들의 인물평을 공유하는 게 더 하다. 아니면 비슷한 선택을 해야 하는 다른 조직 사람들의 의견을 듣거나. 물론 들어오는 일을 골라서 할 수 있는 소수 전문가들이야 입장이 다르겠지만, 경쟁이 치열하고 새로운 얼굴을 좋아하는 한국사회 특성상 대체재는 늘 넘쳐나게 존재한다. 그러니 어렵사리 일을 잡은 n잡러는 추천은커녕 하고 싶은 말도 참으며 조용히 할 일을 할 뿐.


두 번째 이유는 전환기라고 느껴질 때면 그간 몸담았던 업계를 송두리째 떠나는 나쁜 버릇 때문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식의 사고방식이랄까. 알고 지내던 사람들까지 손절하는 건 아니지만 안 보면 멀어지는 게 순리인지라 파생 인간관계도 덩달아 멀어진다. 설상가상인 건 남 부탁은 잘 들어줘도 정작 내 아쉬운 소리는 못한다는 것. 과감하게 뛰쳐나가는 모습에 다들 뭐 대단한 향후 계획이라도 있는 줄 알지만 구체적인 건 언제나 쥐뿔도 없었다.(적고 나니 슬프다ㅠ) 그냥 센 척하며 서서히 망해가는 거다. 멀든 가깝든 사람 한 명 한 명 챙겨가며 네트워킹해야 하는데 그게 참 나에게는 힘들다. 


어느덧 '일머리'에 대한 이야기를 즐기지 않게 된 게 세 번째로 꼽아보는 이유다. 한창 일에 재미를 붙이고 살던 시절에는 일잘러라면 당연히 이래야 한다는 식의 조건들을 꼽아보곤 했다. 저 사람에 비하면 내가 백배 낫지 표 안 나게(근데 표가 났을 거다) 근자감 탑재하고, 쿵짝 맞는 사람들과 그 인간하고는 일하기 피곤하다며 뒷담화도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밥벌이 경력이 길어지다 보니 어느덧 일을 잘한다는 기준이나 황금률이 과연 있는 걸까? 아니, 일 잘하는 게 뭔지도 이제 모르겠다. 심지어 일을 잘하는 게 대체 뭐 중요한가 의문이 든다. 


업계 동향을 캐치하는 능력, 아이템 기획력, 글쓰기, 빅데이터 관리와 분석법, 인간관계 등등 수없이 많은 걸 잘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그간 지켜보니 사실은 다른 게 더 중요한 거 아닌가 살짝 비뚤어졌다. 예를 들면 일은 안 하더라도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나 주요 지분을 차지하는 재주라던가 묵묵히 일만 하는 동료를 가스라이팅하는 비법 같은 거.  너무 시니컬하다 하겠지만 다른 특수한 요인들이 조직 내에서 큰 변수로 작용하는 상황 속에 몇 번씩 뒤통수를 맞으면서 이미 꽤 애저녁에 일 자체의 능력으로 다른 사람들을 저울질하는 버릇은 집어치웠다. 


네 번째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코로나다. 슬슬 일상회복은 되고 있지만 최초 발발 시점인 2019년 11월부터 치자면 코로나로 인한 비상상황은 이미 햇수로 4년째에 접어들었다. '일로 만난 사이'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인사를 나눈 뒤 한 번도 온전히 전체 얼굴을 보지 못하고 헤어진 이들도 많다. 다시 어디선가에서 스쳐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이런 시국이어선지 대면으로 만나는 이들은 정해져 있었다. 누군가 확진되더라도 서로 원망하지는 않는 사이. 조심스럽게 마스크를 한켠에 놓고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어차피 우리 모두 한 배 탄 몸"이라며 웃을 수 있는, 이미 역병이 돌기 전에 가까운 동네에 살았던 사이. 단 둘, 아니면 셋, 넷, 많아야 다섯. 그들만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만났다. 


하지만 남들 다 겪어냈던 전염병 탓은 하지 않으련다. 사실, 앞에 이야기했던 이유들은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 매일 출근하던 직장이 사라지고 벌이가 줄어들면서 난 그냥 슬금슬금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런 시국' 때문이 아니라 알고 보면 내가 '이런 사람'이래서였다. 


먼저 자신감을 잃었다. 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간관계에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인싸에 마당발은 아니지만 이해타산 없이 속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들이 꽤 있다는 거, 그것도 학교, 전 직장, 현 직장 등 몇 층의 레이어마다 나름대로의 서클이 존재한다는 것도 자랑이었다. 심지어 그 사람들이 내게 단독이나 소수정예로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하는 경우도 가끔 있었고, 하나 같이 '내 마음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 ''속시원하다'며 입을 모아 더욱 근자감이 드높아졌다. 그러던 내가 개인 사정이 겹치면서 슬슬 말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내 꼬라지가 이런데 뭔 조언씩이나 하나 싶었다. 내 한 몸 간수하기도 급급해, 인색해진 마음도 있었다. 퇴사하지 않고 오래 다니거나 좋은 곳으로 옮기거나 주식으로 돈을 벌거나, 하여간 나와는 달리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울화가 치밀기도 했다. 


안 좋은 감정들로 부글부글 속을 끓이며 침묵을 지키다 보니 또 다른 국면의 깨달음(?)이 왔다. 아하, 예전에 내가 작두 탄 것 마냥 떠들어대고, 무 자르듯 똑부러지게 주장하던 것도 사실 그때의 위치, 상황 덕이지 않았을까. 모든 세상일이 상대적, 입체적인 것인데 어쩌면 난 한 곳에서 한 시선으로 섣불리 사람과 일을 재단하며 경솔한 말들을 남발하진 않았을까.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상처 입히진 않았을까. 지금 생각하면 뭔가 등골이 서늘해져서 어느덧 말수가 줄어들게 되었다. 


이제 누구를 만나도 단정적인 말은 하지 않는다. 다른 재주를 타고나지 못해 일만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그냥 다들 행복했으면 좋겠다. 남들 하는 만큼만 일하고 쉴 때는 쉬면서 퇴사 콘텐츠 따위는 안 썼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마주 앉은 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만 있다. 다만 그러다 보니 자리를 알아봐 준다거나 사업 아이템을 연결해주는 드라마틱한 역할 같은 건 좀 힘들다. 하긴, 예전에도 그렇게 잘하던 역할은 아니었다.  

 

혼자 일하고, 일감을 찾고, 코로나를 겪어내면서 몇 년을 보내니 나의 인간관계는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이들과 깍듯한 존댓말 속에 주로 카톡과 메일로 소통하는 '갑'님들, 두 층위로 대충 정리되고 있는 것 같다. 가끔은 별 것도 아닌 사건 하나로 화르륵 달아오르고, 떠들썩해지던 오피스 프렌드십이 그립기도 하다. 돌아보면 참 많은 일을 겪었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내게서 멀어져 있다는 게 때로는 믿기지 않는다. 어려운 시기에 크고 작은 도움을 받았던 이들조차 자연스럽게 멀리하고 가벼운 연락조차 하지 않는 나 자신이 소시오패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인간관계도 인연이라 그때그때 맞는 타이밍과 계기가 있다고 합리화해보지만 여전히 입맛이 쓰다. 설령 다시 만난다 해도 예전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들여야 할 에너지가 나한테 남아있을지 자신이 없다.


몇 안 되지만 억지로 인연을 끊어낸 사람들조차 이제는 나한테 잘못해서가 아니라 내가 모자라서, 내가 떠난 게 아니라 나를 떠난 것임을 깨닫는다. 정확히 흑과 백으로 나뉘는 일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늘 만났다가 떠나보내고, 떠나간 사람들을 지운 채 다른 사람들을 또 만나기 위해 살아가야 하는 걸까. 내 또래의 사람들은 말한다. 나이 먹어서 사람 사귀기가 쉽지 않지. 이미 있는 사람들을 지키기도 힘들어. 그 말이 맞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그냥, 좁아져 버린 인간관계를 놓고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 것이 최소한의 다행이랄까. 남아있는 사람들이라도 지켜야 하는데, 오십 이후 살아갈 날이 꽤 많다면 그것 역시 어려울까 봐 지금부터 걱정이 된다.

 



사람들과 나와의 관계를 골똘히 생각하다 보니 어느덧 나는 내 MBTI의 첫 글자를 당연히 I로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심지어 예전에 늘 E가 나왔는데도 다 까먹고 무조건 I일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때마침 정식 MBTI 검사를 받을 기회가 있었는데 놀랍게도 E가 나와서 새삼스럽게 놀랐다. 강사님이 내 성향을 설명해주는데 한 대목이 귀에 확 꽂혔다. "남들이 자주 쿨하다, 뭐 이런 말들을 해요." 살짝 웃음이 나왔다. 그렇지, 내가 그런 말을 들을 때가 있었지. 그러나 그립지는 않다. 양보다는 질을 중시하는 I가 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아직은 E가 나와서 다행인 마음은 또 뭘까. 여전히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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