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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진초이 Nov 30. 2022

나의 커리어는 안녕한가요?

12년 차 UX 디자이너가 돌아본 성공적인 "업"의 의미

"Let’s have a career conversation."

얼마 전 매니저가 1:1 미팅에 앞서 나의 커리어에 대해 얘기해보자며 현재 내 생각을 간단하게 글로 써보기를 권했다. 잘하고 있나 부족한가 하는 퍼포먼스 평가라기보다는 지금 내 커리어의 큰 방향성과 앞으로 더 발전시키고 싶은 분야 등에 대한 숙고 등에 대한 주제을 던져주었다.


이 막연한 질문을 마주한 나는 일단 UX 디자이너의 마인드셋을 장착해본다. 커리어를 굉장히 장기간의 프로젝트라고 여겼을 때, 어떤 목표와 고려사항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는가? 내 커리어의 "success criteria”를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변을 구체화시키니 다음으로 정리가 되었다.


내가 속한 팀과 회사의 성공에 나는 얼마나 기여를 했는가?

일에서의 경험을 통해 내 개인적으로 얼마나 성장하고 배웠는가?

내 주변의 동료들의 성공에 나는 얼마나 도움을 주었는가?



내가 속한 팀과 회사의 성공에 나는 얼마나 기여를 했는가?

How much did I contribute to the success of my team and the business?


디자이너로 일한 지 첫 몇 년은 팀원들이 나에게 주는 칭찬, 인정만 좇았고 그게 내 성공의 척도인 것 같았다. 그때 나의 일은 주어진 단기 태스크들의 도장깨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수준이었다. 비즈니스와 프로덕트 전반의 전략과 방향성에 대한 관심도 전무했다. 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내 일의 임팩트를 극대화할 수 있는 능력치가 생성된 다는 걸 십 년 전 내가 알리가 없었지.


이 회사에서 태스크 도장깨기를 하다 급기야는 하는 일 없이 몇 달간 급여를 받은 적도 있다. (회사가 디자인 인력 니즈가 없던 큰 회사로 인수되었는데 난 혹시 필요해질지 모를 잉여인력으로 대기 중인 상태였다.) 참 팔자 좋게 들리겠지만 당시 나의 자기 효능감은 바닥이었고 늘 뭔가가 잘못된 기분이었다. 심지어 돈을 벌고 있었지만 커리어를 커리어라 부를 수 없었던 암흑기였던 거다.


“기여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은 건 디지털 프로덕트를 만드는데 얼마나 다양한 직군들이 협업해야 하는지에 눈을 뜨면서부터다. 나 혼자만 잘나서는 죽도 밥도 안 되는 이 바닥에서 의미 있는 커리어를 추구한다는 건, 내가 회사의 구성원으로 얼마나 어떻게 비즈니스의 가치 창출에 보탬이 되었나 파악하는데서 시작한다. 돈 받으니 밥값 하자라는 논리만 가지고는 내 업의 깊이와 의미를 찾을 수 없을 거라 믿는다.



일에서의 경험을 통해 내 개인적으로 얼마나 성장하고 배웠는가?

How much did I learn and gain new insights from my experiences?


“기여”하는 업이 성공적인 업이라면, 내 팀의 실적이 좋지 못하고 내가 다니던 회사가 망했다고 내 커리어도 망한 것인가? 그게 아닌 이유는 이 두 번째 포인트에서 찾을 수 있다. 내가 속한 집단이 잘 나가지 못하더라도 그 안에서 내실 차게 임팩트 있는 경험을 쌓고, 좌절도 실패도 배움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이 또한 의미 있고 성공적인 업이라고 본다. 돌이켜 보니, 반드시 “성공”의 느낌이 따라오지 않더라도 “성장”의 느낌을 가질 때 나의 커리어는 가장 가슴 뛰었던 것 같다.


다섯 명 규모의 스타트업에서 유일한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한 나에게는 참 뼈아픈 부분이다. 사수도 매니저도 같이 디자인 얘기를 나눌 동료도 없었던 환경에서 내가 무엇을 배웠나 싶다. 나에게 취업비자를 (그리고 앞서 언급한 “불로소득”도) 선사해준 고마운 회사였지만, UI 좀 깨작거리고 회사 로고 좀 리디자인하고 그 외에는 사실 내 커리어에 임팩트를 줄만한 자극이 되는 프로젝트 경험이 하나도 없었던 곳이었다.


사실 UX로  밥벌이를 하는 것만큼이나 꾸준한 배움과 성장이 필요한 업이 있나 싶다. 회사에 따라 다루는 도메인이 다르고 프로젝트 성격에 따라 가장 적절한 리서치 방법이나 디자인 프로세스가 다를 수 있다. 또한 같이 일하는 사람이 달라지면 협업의 모양새도 달라진다. 내가 아는 스킬셋, 툴, 프로세스 등을 반복적으로 적용하면서 일을 성공적으로 해나가는 것이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자기 업에 진심인 사람이라면 아마 지루함이나 매너리즘이 느껴지는 시점이 반드시 올 거다.



내 주변의 동료들의 성공에 나는 얼마나 도움을 주었는가?

How much did I help others succeed?


첫 번째 포인트에서 언급했듯이 나의 성공적인 업을 꾸리는 데 팀과 회사에 대한 나의 기여가 중요하고, 이 팀과 회사의 성공은 “내”가 아닌 “우리”가 함께 잘해야 이루어지는 것을 깨달으니 나는 자연스럽게 이런 결론에 다다를 수 있었다. 내 동료가 그들의 몫을 십분 발휘할 수 있게 내가 조력자가 되면 결국 “우리”라는 집합이 더 좋은 아웃컴을 낼 수 있을 거라는. (이걸 깨닫는데 나는 수년이 걸렸다.)


조력자가 된다는 말은 1 더하기 1을 해서 둘 이상의 시너지가 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둘만도 못한 결과를 내는 것을 피함은 물론이고. 아주 작은 예로는 팀원과 대화할 때 최대한 또렸하고 간결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있다. 커뮤니케이션이 불분명하면 그만큼 내가 그들의 시간과 productivity를 축내는 격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효율성을 다 떠나서도 사실 우리 모두는 인간이지 않은가. 좋은 의도로 서로에게 친절하고, 거기에 조금 더 보태 그들의 일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준다면 분명 팀 전체 아웃컴 퀄리티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을 거다.


이 마지막 포인트는 주니어 레벨 디자이너일수록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다. 나에게 주어진 만큼만 (다시 말해, 욕먹지 않을 만큼만 몸 사리며) 일하지 않고 시야를 넓혀 내 주변을 이롭게 한다면 어느 팀에서 꼭 필요한 인재로 꼽힐 수 있을 거다. 이는 첫 번째 포인트인 나의 “기여”로 이어지고, 이렇게 나의 영역과 영향력을 확장해가면서 얻는 경험은 내가 열린 마음으로 곱씹어 보는 만큼 고스란히 나의 배움과 성장으로 연결되는 거라고 믿는다.



이렇게 커리어에 대한 내 생각을 구체화시키니 자연스럽게 생산적인 고민으로 이어진다. 나에게 주어진 역할 바운더리 밖에서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혹은 바운더리 안의 일이라도 “어떻게” 달리 더 잘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을 잊지 않고 해 나간다면 그 누구와도 다른 나만의 “업”의 모습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거고 은퇴 즈음 적어도 후회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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