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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손과 때리는 손이 다르지 않으니

나는 다만 기도드린다, 아멘.

by 소윤

네가 내게 가해한 모든 짓을 다 적어내기 위해서는

세계를 통째로 빌려 와야 할 테다.


송희지, 「음력설」, 『잉걸 설탕』, 문학과지성사, 2025.


*


이유 없는 폭력에는 항상, 어떤 신의 이름이 필요하다.


꿈을 꿨다. 그 애가 나오는 꿈의 내용은 대개 비슷비슷하다. 중학생 때 그랬던 것처럼 그 애가 나를 개 패듯 패고 있고 나는 제발 그만하라며 소리 지른다. 꿈에서 깨기 직전의 직전까지 그 애는 나를 때린다. 그 애가 나오는 꿈을 꾸고 나면 자고 일어났는데도 진이 빠져 하루 종일 기운이 없다.


그 애와 나는 같은 교회를 다녔다. 그 애의 모든 가족이 교회를 다녔다. 그 애는 신실했다. 기도할 때면 눈물을 흘렸고 두 손 모아 깍지 낀 손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을 주었다. 나를 때리는 손에도 힘이 잔뜩 들어갔을 것이다. 마치 기도할 때처럼.


그 애랑은 초등학교, 중학교도 같이 다녔다. 그 애는 교회에 아무도 없을 때만 나를 때렸다. 배도 때리고, 머리도 때리고, 뺨도 쳤다. 학교에서는 나를 아는 척하지도 않았는데, 그건 그 애가 일진이었기 때문이다. 급이 한참 높은 일진이 존재감 없는 찐따를─그것도 남자가 여자를─이유 없이 집중적으로 팬다는 건 어쩐지 그 세계 안에서 가오 떨어지는 일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 애는 평일에는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학교 유리창 깨고, 일요일에 교회 나와서는 기도하고, 그 손으로 나를 죽어라 팼다.


그래서 나는 일요일마다 모친에게 교회 가기 싫다고 빌었다. 걔가 나를, 막, 때려. 더듬더듬 이야기하면, 그럼 너도 똑같이 때리지 왜 처맞고 와? 모친이 대꾸했다. 그래서 나는 교회에 안 가려고도 해봤다. 일요일마다 헌금 내라고 준 돈으로 피씨방 가서 시간을 죽였다. 집으로 돌아오면, 모친이 나를 때렸다. 엄마가 창문 밖으로 내다보고 있었어. 너 교회랑 반대편 길로 가더라? 그때부터 나는 모친과 반대편 길로만 갔다.


하나님을 믿은 적은 없었다. 교회에서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었다. 그래도 중학생 때는 기도를 열심히 했다. 진짜로 하나님을 믿게 된다면 이 이유 없는 시련조차 당신에게 다가가기 위한 일종의 시험처럼 여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언젠가 보상받지 않을까. 아니, 보상받지 않더라도, 내가 맞는 걸 납득할 만한 이유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수요일 저녁 예배에 나가 찬송가 열심히 부르고, 가정 예배도 드리고, 십계명 외우기 대회 나가서 1등도 했는데. 하루는 교회 중등부 선생님께 진지하게 물었다. 선생님, 저 아무리 해도… 안 믿어져요. 예수님이.


믿음이 부족하구나.


선생님은 그렇게 말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 온갖 시련과 박해를 당했으며 욥은 하나님이 내린 시험에도 끝까지 그를 배반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고 아브라함은 제 아들까지 제물로 바쳤다고. 진실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 충만하심으로 구원받으려면 그런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내가 믿음이 없어서 그런 일을 당하는 거라면


너무 비참했다.


모두가 기도하는 시간에 나 혼자만 눈을 뜨고 있었다. 그 애가 두 손을 꽉 모아 움켜쥐고 기도를 드리고 있다. 그 애의 기도 제목은 뭘까. 나는 언제부턴가 내 기도 제목보다 그 애의 기도 제목이 더 신경 쓰였다. 가족의 행복과 평화를 빌까? 그 애의 엄마는 다정했다. 용모도 아름다우셨고, 찬송가 부를 때 목소리도 고우셨다. 내게도 언제나 다정하셨다. 그 애의 누나도 좋은 사람이었다. 낯을 조금 가리긴 했지만 내게 잘 대해주었다. 그 애의 가족은… 빌어먹게도 전부 좋은 사람들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그 애의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교복 입고 장례식에 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 애는 졸지에 불쌍한 애가 되었고, ‘불쌍한 애’라는 말은 그 애가 내게 저지른 폭력에 약간의 면죄부를 주기에 충분했다. 걔는… 불쌍한 애니까. 애들끼리는 싸우면서 크는 거니까. 사실 그거 걔가 너 좋아해서 그런 거다?


사람의 괴로운 기억이란 신이 스푼으로 떠먹은 푸딩처럼 오목하게 파여 있다. 내 기억은 신이 푹푹 퍼먹은 푸딩이다. 아니면 그 애에게 머리를 너무 많이 맞아 뇌가 우묵하게 들어가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든, 기억이 드문드문 난다는 건 다행인 일이다. 신은 자신의 종인 인간을 완전히 미치지는 않게끔 설계했다. 아멘.


이 글이 파편처럼 부서졌다고 느낀다면 그것도 다행이다. 당신이 내 기억을 제대로 읽고 있다는 뜻일 테니.


그 애의 괴롭힘은 그날 이후로 끝났다. 그 애는 나와 사는 동네가 같았다. 아무리 피해보려고 해도 하교 시간이 겹칠 때가 종종 있었다. 녹음이 잔인하게 푸르렀다. 공원만 지나가면 된다. 이 공원만. 나는 최대한 등을 꼿꼿이 세우고 뒤에서 따라오는 그 애를 의식하지 않으려 몸에 온 힘을 다 주고 있었다. 온몸으로 기도하듯이. 아멘.


─야.


그 애가 나를 부르면,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 앞만 보면서 걷고.


─이 씨발년이.


그때 나는 무슨 용기였는지 우뚝 멈춰서 뒤를 돌아보았다. 처음으로 그 애의 얼굴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의외로 그 애는 악당처럼 비릿하게 웃거나 화내고 있지 않았다. 그냥… 무표정했다. 살아 있는 것이 아닌 정물을 바라보듯이. 그때 나는 사람을 처음으로 죽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멘.


─너 왜 자꾸 나를 때리는데. 이유도 없이.


그 애가 대답했다.


─니가 우는 거 보고 싶어서.


이렇게 때리고 처맞는데도 안 우는 게 신기해서. 정말? 정말? 그런 어처구니없는 이유야? 그러고 보니 나는 그 애가 나를 개 패듯 팰 때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물론 아팠다. 너무 아팠지만 처음 한 번 울지 않으니까 계속 울지 않게 되었다. 대신 그만해, 그만해. 수도 없이 외쳤다. 내가 여기서 울어서 네가 그만둔다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노아의 대홍수처럼 범람하듯 울 수도 있었다. 그래? 그럼 내가 우는 거 보여줄게. 내가 울어줄게. 나는 주저앉아 엉엉 소리를 냈다. 정말, 울었다. 그런데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때.


악!


그 애가 발로 내 뒤통수를 걷어찼다. 나는 악 소리를 내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네가 원하는 게 뭐야? 대체 원하는 게 뭐야? 하나님. 이 새끼가 원하는 게 뭐예요? 대체 뭐냐구요. 하나님, 하나님, 이 씨발새끼야.


─야! 거기 뭐 하는 거야!


그때 우연히, 정말 우연히도, 성경 말씀에 나오는 숱한 우연들처럼, 지나가던 집사님 몇몇이 내게로 달려왔다. 너 이 자식 뭐 하는 거야! 그 애는 당황했을까? 비밀을 들킨 아이처럼, 장난감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슬펐을까.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그 애는 멀리 도망치고 있었다. 괜찮니? 괜찮아? 누구야?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야? 어떤 놈이야? 누군지 말하면 아줌마가 혼내줄게. 그때 내가 그 애의 이름을 또박또박 말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내가 그 애의 이름을 또박또박 말했으면


나는 지금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을까?


나는 그 애의 이름을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중학생 때 잠깐 다녔던 수요일 철야 예배에서는 특송 시간이 끝나면 통성기도를 했다. 통성기도는 직접 목소리를 내서 하는 기도. 한동안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영 어색해서 다른 사람들의 기도를 들었다. 모친은 내가 성령을 받아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달라고 눈물로 눈물로 기도드렸다. 그 애도 무언가 열심히 기도드리고 있었다. 그 애는 회개한 적이 있을까? 단 한 번이라도 그 애의 기도 제목에 내 이름이 들어간 적이 있었을까? 기도 시간에는 모두가 눈을 감았고 오직 나만이 눈 뜨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하나님


하고


입에서 무언가가 툭 튀어나왔다.


아 이것이 성령인가 나는 흥분해서 더듬더듬 기도를 이어 나갔다. 음… 이 자리에 오게 해주신 것에 감사드리고 그런데 그 애는 막힘없이 줄줄줄 기도하는데 나는 아직 성령을 덜 받았구나 말을 더듬지 말아야지 우리 엄마와 아빠 동생이 늘 행복하고 건강하게 해주시고 동생 천식도 낫게 해주시고 제가 저지른 죄가 있으면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저도 성령님께 은혜받아 진짜로 예수님 영접하고 엄마한테 예쁨받을 수 있게 해주세요 하나님 그리고 그 애가 저를… 저를…


하나님


하나님


제발


……


씨발


이 씨발새끼야.


서른넷의 나는 담배를 피우며 친구에게 묻는다. 그 애는 나를 왜 죽어라 팼을까? 친구가 무심하게 대꾸한다. 이유를 찾으려다가는 정신병 걸려. 그런데 다른 여자애도 있었다고. 그렇다고 다른 여자애를 패는 게 정당한 건 아니잖아. 사람은 신을 이유 없이 믿는다. 믿으니까 믿는다. 나는 이유 없이 맞았다. 때리니까 맞았다. 그냥 그게 다였다.


그렇지만 내게도 믿음이 생겼다. 교회를 다니지 않겠다고 선언한 날, 엄마는 내 뺨을 때렸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아, 하나님이 주신 시험과 시련, 불행에서 스스로 오늘 몫의 평화로 버티는 것이 바로 내 종교구나. 그때부터 나는 믿는 사람이 되었다. 내 믿음은 신을 믿는 것처럼 이유 없는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었다. 내가 직접 찾아낸, 내가 직접 구해낸 믿음이었다.


사람의 괴로운 기억이란 신이 떠먹은 푸딩의 스푼 자국처럼 오목하게 파여 있다. 신에게는 인간의 삶이 장난 같겠지. 손톱으로 꾹 눌러 벌레를 죽이듯. 그러나 사람은 오목한 기억을 걷다가 종종 싱크홀에 빠진다. 이 글을 읽을 때 무언가 뚝뚝 끊기는 느낌이, 푹푹 빠지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당신은 내 기억을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일 테니.


그 애가 죽기를 바라는가?


글쎄.


나는 다만 기도드린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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