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다원화를 위해 시민 개인의 주체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오늘부터 약 두 달 동안 <50+ 모니터링단 교육>을 전담하여 진행하게 되었다. 뭐, 아마도 내가 나이가 많아서 이 업무를 맡게 된 것 같은데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 기관이 하는 사업 중에 가장 눈에 들어왔던 사업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잘된 일이다.
사업개요는 대강 이러하다. 인천시 고령친화도시 조성을 목표로 시니어들이 직접 도시문제를 발굴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 수립의 기초자료로 활용하려는 모양이다. 널리 알려진 바텀업(bottom-up) 거버넌스 형태 중에 리빙랩(Living-Lab) 방식을 도입한 프로그램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틈틈이 다른 기관 인턴으로 탈주 각을 세우고 있었는데, 막상 발대식을 마친 후 차장님께 공동계정과 공유문서들이 담긴 USB를 받으니 내게 주어진 일에 대한 책임이 생겨버렸다.
개인적인 동기로도 부모세대와 어울리며 그들을 이해해보고 싶었고, 사업 하나를 내가 오롯이 운영해 보는 기회가 인턴에게 흔히 있을 법한 기회는 아닌듯 싶어 이 기관에서 12월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막상 차장님과 다른 인턴들 없이 나 홀로 이 사업 담당자로써 교육을 진행하게 된다는 게 참 여러 마음이 들어 복잡하다. 특히, 50대부터 80대까지의 시니어 약 서른 분들 사이에 유일한 20대로 소개되는 것은 상당히 낯설었다. 하필 오늘은 캐주얼한 복장을 입은 탓인지 이미 '학생'이라고 불렸다. 앞으로 내가 이들의 시선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내가 어른들을 어려워하듯 이들도 나를 어려워할 테니 말이다.
소그룹 안에서 각자의 성격대로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을 상대한다. MZ는 이렇다, 틀딱은 이렇다 하는 특정 세대에 대한 일반화된 선입견으로 그들은 묶이지 않는다. 나이를 지우고 그 자체로 바라보면 그들도 나 그리고 이걸 읽는 그대와도 별 다르지 않다.
근대 이후 인류의 삶은 직업의 분화와 폭발적인 기술 발전에 맞물려 다원화되었고 근대의 전통적 생애주기 모델을 흔들었다. 기대수명의 연장과 맞물린 모더니즘의 해체는 생애주기별 발달과업에 대한 재고를 요구한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발달과업은 과거처럼 일률적일 수 없다. 연령에 따라 부여된 사회적 요구는 필연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그 근본 원인 중 하나는 전제주의와 집단주의에 기반한 사회구조이기 때문이다.
서구 사회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을 강조하며 기존의 구조를 해체했고, 이는 다양한 삶을 존중하는 철학적 토대를 마련했다. 그러나 우리의 공교육은 인문학적 사유가 부재하고, 아직도 서려있는 집단주의의 영향은 개인이 다양성을 상상하거나 그것을 존중하기 어렵게 만든다. 우리는 아직도 근대적 틀 안에서 개인을 객체화시키는 전통에 머물러 있다.
결국, 한국 사회는 개인의 생애주기를 재해석하고 기존의 발달과업을 해체해야 한다.
고정된 역할이나 과업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개인을 시스템의 일부가 아닌 주체로서 존중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이상론이 아니라, 내가 지금부터 만들어갈 현실이다. 나는 1 섹터에서든, 3 섹터에서든 개인의 삶이 구조보다 우선시되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개인을 위한 사회가 아닌, 사회를 위한 개인이 아닌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이런 거창한 포부를 내놓고도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질문이 있다.
내가 행정가로서 공공 시스템 안에서 정책을 설계해 나갈 것인지, 아니면 현장에서 활동가로서 연대의 힘을 발휘할 것인지 지금까지 흐려온 고민의 결말을 맺을 때가 다가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