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화가 한창인 2020년대의 몽골 대도시를 관찰하기 좋은 영화
잠깐,
글을 읽으시기에 앞서 영화와 어울리는 곡을 골라보았습니다. 음악을 재생하고 글을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가족/아동 · 도시/도시화 · 성장영화/청춘 · 종교/심령 · 인권/노동/사회
국가 France/Mongolia/Portugal/Netherlands/Germany/Qatar
제작연도 2023
러닝타임103min
상영포맷 DCP
컬러 Color
2020년대 몽골 대도시의 생활상을 엿보기 좋은 영화. 여행지와 대자연으로써의 몽골만 알고 있다면 꽤나 놀랄 수 있다. 익숙할 줄만 알았던 몽골의 문화는 일본, 중국, 대만 동아시아의 그 어떤 나라들보다 생소하고 이국적이다. 불안히 공명하는 10대를 그린 영화지만 사실 그것보다도 몽골 사회를 관찰하는 것이 더 흥미로웠다.
영화 바람의 도시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삶을 통해 도시 중심부와 슬럼 사이의 간극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영화 속 배경은 빠르게 성장하는 울란바토르의 도시 한복판과 주인공 제(Ze)가 거주하는 외곽의 한적한 지역으로 나뉜다. 이 대조적인 공간은 몽골 사회가 겪고 있는 급격한 변화와 그 속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갈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울란바토르 안에서도 도심지와 외곽 지역 사이의 차이는 극명하다. 영화에서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은 한적한 외곽 달동네로 전통적인 게르 지구가 자리한 곳이다. 이 지역은 울란바토르의 급성장하는 중심지와는 대조적인데 이는 몽골의 도시화 속에서 발생하는 주거 환경의 극단적인 격차를 간접적으로 반영한다. 제는 도시에서 경제적 성공을 동경하지만, 그가 살고 있는 달동네는 여전히 몽골의 전통적인 생활 방식이 남아있는 곳이다. 반면, 도시의 중심부는 경제 발전과 함께 난개발이 이루어지며, 영화는 이러한 두 가지 상반된 환경을 동시에 조명한다.
몽골의 산업은 주로 1차 산업(농업, 목축업, 광업 등)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중국과의 관계, 천연자원, 그리고 목축업 전통 등에서 기인한다. 국가적으로 1차 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도인 울란바토르를 제외하고는 직업 선택의 폭이 매우 제한적이며, 이 때문에 청년들을 다른 국가(대표적으로 한국)로의 취업을 고려하기도 한다.
3-1. 수직적인 학교
몽골의 학교는 수직적이고 보수적이다. 교실 장면이 나올 때마다 교사의 권위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반으로 교사가 들어오면 학생들은 일제히 일어서서 존경의 인사를 건넨다. 교사는 교실 안에서 모욕적인 언사를 남발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면서도 나중에 성공을 하면 선생님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그 시절’ 교사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영화가 무르익으며 반 학생들이 권위적인 교사에게 단체로 대항하는 장면에서 (아주 아주 부끄럽지만) 홀로 후련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3-2. 일상에 깃든 전통과 자연에의 숭상
영화는 현대의 몽골사회가 전통과 자연에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샤머니즘적인 전통과 자연에 대한 신앙은 영화의 중요한 요소로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예를 들어 남매가 매일 잠들기 전에 몽골 전통 악기인 무르자르(Morzhar)를 연주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장면이나, 마랄라가 아버지와 통화하며 벽을 채울 정도로 큰 캔버스에 실을 땋는 수공예를 하는 장면은 너무나 일상적이지만 문화권 밖의 사람들에게 매우 이국적인 풍경이다.
자연과의 영적인 교감이 드러나는 전통들도 역시 일상 곳곳에 스며있다. 갓 짠 우유와 가장 좋은 차를 허공에 뿌리며 신들에게 가족의 안녕을 비는 의식은 몽골의 깊은 신앙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조상들이나 영적인 존재들이 실재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치루는 의식을 보면 조상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주정뱅이 아들을 걱정하던 노인이 세상을 떠나고도 무당의 몸을 빌어 아들에게 “이 아이가 건강하게 백 번의 계절을 살게 해 주세요.”라며 사랑을 전한다. 아버지를 잃은 이웃에게 영매로서, 그리고 이웃으로서 안녕을 비는 주인공의 따스함과 애틋함이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3-3. 코리안드림
영화 속 여러 대사에서 ‘코리안드림’을 느낄 수 있다. 한국은 단순한 타국이 아니라 몽골인들에게 경제적 안정과 발전의 상징이다. 특히, 마랄라의 아버지가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는 설정과 마랄라가 어머니에게 벗어나기 위해 한국으로 떠나게 되는 것을 보았을 때 단순히 '외국에서의 기회'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는 것 그 이상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3-4. 그 외 이국적인 장면들
제와 마랄라가 서로의 미래를 상상하며 벽에 서로의 미래를 그리는 장면이 있었다. 제는 마랄라가 시골에 살고 싶다고 했던 이야기를 떠올리고 게르에서 양을 돌보는 그녀의 모습을 그려주는데 제가 묘사한 그림에서 마랄라는 게르 위에 치즈를 말리고 있었다. 우리나라라면 마당에 고추나 말릴 텐데… 예상치 못한 이국적인 묘사여서 기억에 남는다.
이 영화가 특별했던 점은 바로 몽골이라는 문화적 배경이다. 몽골이라는 독특한 배경 덕분에 주인공의 내면적 혼란이 다른 청춘 영화의 주인공들과는 확연히 다르게 그려진다. 전통 사회에서 영매라는 역할을 맡은 주인공은 자신이 지켜야 할 가치와 현대적 욕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사실 17살이라는 나이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도 헷갈릴 나이이다. 이러한 내적 갈등은 단순한 청춘의 고민을 넘어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느끼는 불안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얽혀있다. 결국 주인공의 여정은 우리가 흔히 겪는 성장통과는 다른 몽골의 특별한 문화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독특한 정체성의 탐구로 이어진다. 이는 단순한 혼란이 아니라, 몽골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오는 깊은 정체성 고민을 드러내며 주인공이 자신의 자리를 찾는 과정을 더욱 진솔하고 매력적으로 만든다.
주인공의 내적 갈등은 전통 사회에서 영매라는 역할을 부여받은 자신에 대한 고민과 급격히 변화하는 몽골 사회 속에서의 불안,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교차하며 더욱 복잡해진다. 특히 몽골은 1992년 민주주의 헌법을 채택하고 사회주의 체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하면서 큰 혼란을 겪었고,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영화 속 청년들의 일상과 선택에 깊이 배어 있다. 좁은 직업군과 불안정한 사회 구조 속에서 젊은이들이 느끼는 불안정함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복잡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도 주인공은 겸허히자신의 길을 걷는다. 그는 공동체가 부여한 영매라는 일에 몰두하면서도 이웃이 건설업 쪽 일자리를 제안했을 때 그 명함을 받아 들며 그에게 밀려드는 변화의 파도를 받아들인다. 마치 전통과 현대, 혼란과 변화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나아가는 몽골 청년들의 모습은 곧 앞으로의 몽골 사회가 견지해야 할 태도가 아닐까. 앞으로 몽골의 고유한 전통문화와 자연관, 유목민족으로서의 가치가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구현될지는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 몽골 사회는 늦은 개방으로 인해 효율적이고 검증된 근대화 모델을 바탕으로 국가 개발을 진행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지만 이 과정에서 고유성을 잃지 않고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 덧, 제목이 아쉽다. 영화를 통해 내가 전달받은 메시지와 초점이 다른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