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역행하다.
공감Dream. 최종_final_final
역행이란?
사전적 의미로 일반적인 방향과 반대로 나아가거나 정상적인 경로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함. 이라고 한다.
나는 운이 좋게도 이슈 트래킹(혹은 프로젝트 관리)을 위한 도구인 Jira나 Trello 등의 도구를 꽤 오래전부터 사용해 왔다. 이슈 트래킹 이외에도 지식 공유를 위한 Confluence 혹은 Wiki를 통하여 문서도 동시 편집이 가능한 방식으로 업무를 진행한 지가 꽤 되었다.
그런데 지금 시간을 역행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최종_final_final
리더급이 되어보니 회의가 많아지고, 보고도 많아졌다.
그때마다 같은 내용의 보고를 누구에게 보고하는지에 따라서 ppt의 템플릿, 구성, 폰트를 수정하는 것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심지어 동시에 편집이 가능한 공간이 제공되고 있지만 공유는 메일로 해야 하기에 다음과 같은 파일의 구조가 발생하고 있다.
- 초안 (내가 작성)
- 초안_V1 (동료 1 작성)
- 초안_V2 (동료 2의 피드백에 의한 내가 작성)
- 최종 (팀장님 보고)
- 최종_final (팀장님 피드백에 의한 동료 1 작성)
- 최종_final_final (동료 2 피드백에 의한 내가 작성)
디자이너 분들께서 이런 식으로 소통하여 힘들다는 것을 듣기만 했지 실제로 내가 경험한 적은 없어서 몰랐다. 이렇게 비효율의 최고인지
그동안 기술적인 영역에서 도입을 빨리하는 회사, 혹은 내가 그런 도구를 도입한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는 회사를 다니다 이미 업무 문화와 시스템이 정착된 곳으로 와 보니 시간을 역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동시에 공유되는 곳에서 동시 편집하면 어때요?
이미 회사에는 여러 명이 동시에 수정을 할 수 있는 google docs와 같은 온라인 문서편집기를 제공하고 있었다. 다들 좋은 의견이라고 했고, 온라인 편집기를 통하여 자료를 수정했다.
하지만 팀 내 공유에서는 email로 파일을 공유해야 했기에 다운로드하여 파일명을 변경하여 공유를 진행했다. 그것이 이곳의 Rule이라고 한다.
Zero PPT
몇 년 전 재직했던 회사의 사장님께서 어느 날 임원 회의를 마치고 전사에 전달하신 사항이다.
Zero PPT. 글로벌 기업들이 ppt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시간을 본업, 비즈니스, 생산성에 집중해서 더 좋은 제품, 더 좋은 아이디어를 만들라고 한 선언이었다.
오늘부터 우리 회사도 ppt 사용을 줄이고, 업무 혁신을 이뤄내자는 취지였다.
당연히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회의 및 보고를 어떻게 하냐고 불만의 소리를 내는 사람들 또한 적지 않았고, 업무 스타일과 회의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오늘부터 회의를 위한 ppt 금지.
아니 ppt 사용을 금지합니다.
당시에는 아직 주니어에서 시니어로 막 넘어가는 시기였지만 감사하고, 운 좋게도 책임 있고, 비중 높은 업무를 맡아서 간혹 임원 회의나 사장님 말씀을 들을 기회가 많았고, 아직까지도 회사 생활에서 큰 도움을 받고 있다.
당시 사장님은 Zero PPT를 선언하셨지만 기존의 업무 방식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경영자인 본인이 아예 사용을 금지한다면 업무 방식의 혁신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내부 회의, 보고에서는 ppt 사용을 아예 금지하셨고, 사용하면 페널티를 주겠다고 선포하셨다.
결과는? 맞다. 확실히 ppt를 만드는 작업이 줄어들었다. 회의 시 의무적으로 준비하던 ppt를 내용을 전달하기 위하여 Confluence나 Wiki를 통하여 공유하고, 기록을 남겼고, 회의 준비에 투자하는 시간과 회의 자체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다.
아는 맛이 위험하다.
다이어트할 때 가장 참기 어려운 음식을 평소에 좋아하는 음식을 마주쳤을 때일 것이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맛이기에 얼마나 맛있을지 안다. 그래서 더 참기 어렵다.
업무도 그렇다. 내가 평소에 하던 방식이 편하고, 더 좋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하던 방식이 변경되면 배워야 할 것도 늘어나니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변화하기 싫어하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ppt 사용 금지가 모두에게 업무 시간을 확보해 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업무에 쏟아야 하는 시간을 뺏긴 분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특히 보고 받는 입장의 어른들께서는 잘 정리된 ppt를 통한 업무 사항 공유를 계속해서 받기 원하는 분도 있었고, 어느 팀장님은 Confluence를 통하여 주간 보고를 받고, 직접 ppt로 제작하여 보고를 하는 분도 보았다. 대체 실무를 언제 하실 수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졌었는데 내가 지금 그런 상황이 되었다.
그거 하면 뭐가 좋아져요?
Zero PPT 선언도 ppt를 사용하는 것 자체를 나쁘게 보는 게 아니다. 다만 내부에서 회의를 위하여 보고를 위하여 ppt를 남용하고, 내용보다 ppt 템플릿을 예쁘게, 보기 좋게, 폰트 맞추고 하는 비생산적인 부분에 시간이 더 많이 투자되어 내용을 강화하고, 비즈니스 측면과 연계하고, 아이디어를 도출해야 하는 생산적인 부분에 쏟아야 하는 시간이 부족해지니 ppt 말고 텍스트로 내용을 전달하자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ppt는 대외 자료, 전사 보고 등 정말 만들어야 하는 자리에만 만들자는 것이고, 업무 혁신을 통하여 일할 시간을 확보하여 그 시간을 비즈니스에 연계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Amazon, Google, Apple 등의 해외 기업부터 국내 대기업도 불필요한 ppt 사용을 지양하는 곳들이 꽤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익숙함을 변화하기 위해서는 변화했을 때 나에게 어떤 이점이 생기는지에 대해서 알려줘야 한다.
그래서 회사는 직원들에게 오너쉽(ownership)을 강조하고, 요구한다.
업무 방식 변경하면 업무 시간 확보되고, 비즈니스를 강화하여 매출 올릴 수 있다는데 하지 말라고 할 회사의 주인이 있을까? 문제는 이것이다. 우리는 회사의 주인은 아니다.
매출이 늘면 내 월급 혹은 복지가 좋아지나요?
실제로 내가 받은 질문 중 하나이다.
회사가 발전하여 매출이 늘어도 내 월급이 늘어난다는 보장 당연히 없다.
일 잘하고 성과 좋지만 평가와 연계되지 않는 경우도 회사에서 꽤 많이 봤다.
우리 부모님 세대 혹은 이전 선배님들께서는 회사의 발전이 곧 나의 성공으로 생각하신 분들이 많았나 보다. 그리고 모두가 회사의 주인처럼 일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회사에서 시키면 일단 했다.
지금은 그럴까? 아니다. 이해를 동반하지 않으면 요즘은 변하지 않는다.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 나한테 도움이 안 되니까
Give And Take
결국 주고받아야 변화한다.
회사에서 채용할 때 모든 업무를 작성해 두고 채용할 순 없다.
직원도 맡은 업무를 넘어 개인의 성장이 회사의 성장이 되어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정당한 평가와 보상으로 이어지면 업무 혁신, 변화하지 말라고 해도 구성원들 스스로가 변화한다.
보상, 평가를 개선해야 혁신도 있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라는 속담이 있다.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더 주게 마련이라는 뜻으로 보통 사용된다. 즉, 뭔가를 줘야 한다. 변화를 요구하려면 먼저 줘야 한다.
회사의 인사 담당 혹은 변화를 담당하는 부서들도 다 아는 사실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거대한 조직일수록 먼저 주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받고 나가는 사람들 또한 있을 테니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변화와 혁신이 먼저인지 보상과 평가가 먼저인지는 엄청나게 어려운 문제이다.
직장생활 미스터리
시간을 역행해보니 이전에 몸담았던 조직에서 배우고, 도입할 때 힘을 실어주신 부분들이 더욱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때도 지금도 나의 성장이 곧 회사의 성장이라고 생각하고, 회사가 잘 되어야 내가 즐겁게 회사를 다닐 수 있다는 믿음으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러한 믿음이 있는데 왜 나는 아직 나의 회사가 없는 지도 참으로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회사를 잘 운영하고 계신 오너님들과 인사부서에 재직 중인 분들께 존경을 표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