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훈 Mar 29. 2024

운의 총량

나는 가끔 운명론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서 아이 엄마로부터 핀잔을 자주 듣는다. 허무주의자 같다거나 아니면 사람이 삶의 목표가 없어 보인다거나 하는 쪽으로 연결시켜서 말하곤 한다.

그런데 실상 세상과 사람들의 삶을 우연찮게 보다 보면 복권에 운이 좋게 당첨되는 이도 있고, 게임만 하다가도 큰 수입을 얻는 이들을 보게 된다.

물론 열심히 노력하는 이들도 사회적으로 명성을 얻거나 부를 얻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우리가 받은 교육으로 보면 당연한 것 아니냐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자식들에게도 일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하고 학업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고 다그치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이왕이면 선택지가 조금이라도 더 넓은 것을 알려주고 또 그러한 사회 속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인생선배의 도리로 비치기도 한다. 즉 세상이 원하는 인사이더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삶의 가치로 이해하는 이들이 많다. 또 실제로도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 없이도 우연치 않은 기회를 잘 잡아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이들도 부지기수로 많다. 초등학교만 나오고도  금형회사 취직해 금형을 배우고 사장님의 도움으로 회사를 차려 어엿한 중소기업 대표가 된 이들도 적지 않고, 연고 없는 사장님의 회사를 물려받는 경우도 보았다.

반대로 대학을 나오고 자신의 삶에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고 이들에게도 일반인들이 통속적으로 생각하는 성공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게 본다. 실패한 이들도 물론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들여다보면 어려움 속에서 우연히 성공한 이들의 삶과 유별나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삶을 대하는 작은 차이는 물론 있지만 그것으로 성공과 실패로 귀결 지을 수는 없었다. 둘 사이에 삶을 살아가는 노력의 크기는 대동소이했다는 것이다.

그런 고로 나는 삶이 어쩌면 누군가로부터 주어진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물론 명품은 작은 차이에서 나타난다는 광고카피와도 같이 작은 차이가 쌓여 크게 실패와 성공으로 나타났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노력을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노력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고 각자의 삶을 살아내는 이유가 되기도 하기에 말이다. 나는 한편으론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여 살아내는 것이 지금 세상에서 나의 몫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나의 인생이 실패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인생은 총량의 법칙과 같다. 삶을 구성하는 것이 인간관계, 의식주의 질, 질병, 가족관계, 돈, 명예 등 다양한 것이 있다. 이 중 잘 산다고 평가를 받는 부분은 돈이나 명예가 압도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다. 이 부분만을 놓고 보면 총량의 법칙을 적용하기 곤란한 면이 없지 않으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인들을 결합시켜 보면 완벽한 성공은 손에 꼽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삶을 한 번 돌이켜 보자. 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동기들을 갖고 사회에 나와 마음에 드는 배우자와 가슴 떨리는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집 장만에 성공했다면 보통 30대에서는 성공한 삶이다. 성공한 삶의 구성요소가 이런 것들로만 이루어졌다면 말이다.

그런데 행복한 삶이란 반드시 그렇지 않다. 삶에 대한 고민이 동반되어야 하고 고민에 대한 해답을 명확히 알고 있어야 조금은 행복한 삶이 아닌가 싶다.     

인생을 살면서 잘 사는 이나 못 사는 이나 모두 질병이나 사고 등을 경험한다. 결혼을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입사가 쉽지 않았던 회사에 들어간 다음 날 불의의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어려서부터 막노동을 전전하다 요리사로 성공하는 이도 있다. 노력만 해서 되는 일이라면 공부만 해서 되는 일이라면 성공은 반드시 공부를 많이 하고 사회가 바라는 노력을 끊임없이 한 이들만 성공해야 한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지 않다. 물론 비율과 표본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또 성공한 삶으로 가기 위해 하는 것들 중 많은 것이 배워서 성공한 이들의 표본이 많다는 것도 나의 주장이 갖는 한계성을 갖는 이유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흙수저와 금수저 논리도 어쩌면 여기에 부합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주어진 운명을 노력으로 극복하는 것이 가능은 하지만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사례이니까 말이다.

그런 고로 나는 주어 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영위하다 보면 우연처럼 성공한 삶을 가질 수도 있다.는 그런 확신 같지 않은 확신 같은 정신세계가 내 머리 어느 구석에 박혀있다.     

작가의 이전글 돈과 갑질 그리고 자본주의 본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