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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훈 Jun 29. 2024

뒤란

뒤란이라는 말이 좋다.

뒤란에는 장독대가 있고 채송화 꽃밭이 있고 월계꽃 덩굴이 울타리를 빼곡히 채워 놓고 있었다. 특히 기억이 남는 항아리가 있다.  항아리 안에는 메주가 떠있고 사이사이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지났다. 항아리 안의 깊이는 하늘만큼 컸다. 가만히 보면 하늘에는 없던 내 얼굴도 보았던 듯싶다.

뭐라 말하지 않는 보드랍고 말랑말랑한 초록의 이끼류도 담벼락 둘레에 가득하다.

우리 집 초가의 뒤란으로 난 창문은 낮아 애써 창문을 넘지 않아도 되었는데 창문 앞에 앉아서도 뒤란의 좁은 뜰을 직관할 수 있었다.

보통의 집들은 창문이 높아 앉아서는 하늘만 볼 수 있었던 것 비하면 뒤란의 풍경과 하늘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것은  감성적 기운을 몸에 배게 하는 요소였겠다.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는 그늘 진 곳에 피어있는 이끼와 채송화나 봉숭아, 맨드라미 등의 꽃을 보기 위해 나가 보기도 한다. 한가로움 지친 날에는 장독대 안에 얼굴을 넣고 소리를 질러 보기도 하고 가끔은 외부와 차단된 곳인 만큼 여름날에는 등목을 하러 나가기도 했다. 뒤란에는 천둥나무 한그루가 서 있기도 했다. 잎을 나물로 무쳐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향이 너무 독특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뒤란의 토방에 쪼그리고 앉아 추녀에서 떨어지는 낙수를 손바닥으로 받아 보기도 한다.

외가의 뒤란에는 두 개의 굴뚝이 있을 만큼 뒤란이 크고 넓었다. 그 뒤란에는 깊은 우물이 있었고 여름날엔 냉장고 역할을 했다. 사금파리로 굴뚝 뒤에서 고만고만한 계집아이들과 섞여 소꿉장난을 하던 날들도 어렴풋하다. 그니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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