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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수치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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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고 Jul 19. 2024

수치의 생 1

거짓말을 해야 하는 이유가 많았다. 삶 자체를 숨겨야 했으니 나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진실되지 못한 삶에 후회가 많다. 반평생 인생을 걸었던 곳에서 빠져나온 뒤에야 지난 삶 전체에 걸쳐 깔려있던 수치심과 마주했다. 원래부터 있었으나 애써 외면했던 것들이다.

사이비에 빠졌다고 인생 자체가 송두리째 사라졌다거나 보통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에서 살아야 하니 한쪽 다리는 걸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중에 꽤 오랜 시간 나는 고통스러웠고, 마음의 병을 앓았다. 이 이야기는 브런치북 "사이비 종교 도망기"에서 설명하기로 하고 현생을 사는 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내가 썩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로서는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결정한 선택들이 있었고, 그로 얻은 결과가 있었다. 대단한 인생은 아니었지만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우여곡절이 많았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선택했으나 끝이 좋지 않았다. 그러니 나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 

지금의 내가 지난날을 두고 혹평하는 이유는 지금이라도 조금은 좋은 사람이고 싶기 때문이다.

염세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때가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그런 나를 어려워했다. 도무지 경계를 풀지 않는 내게 피로를 느꼈고, 스스로를 옥죄는 상념에 질색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나를 보았으리라. 

어릴 때를 돌이켜 보면 도무지 싫은 것은 좋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싫은 티를 내지 않았다. 그러니 매번 마음은 이미 떠났으면서도 다시 생각을 고치는 수고를 했다. 싫은 걸 내게 건넨 사람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에게 실망을 주지 않으려는 노력이 어린 시절의 전반에 걸쳐있었다. 아마도 기저에 깔린 어린 시절의 기억이 폭발해 염세적인 태도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일종의 반항심으로 생긴 염세적 태도는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순전히 직관에 의존한 판단이면서도 어쩐지 최선의 판단을 내린 거라는 착각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어릴 때의 나를 떠올리면 꽤나 고리타분하고 어리석다. 그런 중에 패기까지 넘치니 주변 사람들의 미움을 사는 일이 잦았다. 한 번 내린 판단을 밀고 나가는 일이 내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 고심해서 이른 선택을 비판하면서 나는 무엇에 분노했던 걸까. 지금 생각해 보면 상대를 향한 분노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나 아닌 타인에게 주어진 기회를 질투해 그를 헐뜯었을 뿐이었다.


내 인생의 첫 좌절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리틀야구단에서 8개월쯤 야구를 배웠다. 대개 6학년이 되면 주전선수를 골라냈다. 주전이 되기 직전 단계인 후보주전으로서 선배들의 경기를 직관하고 이따금 대타의 기회도 주어졌다. 그리고 주전 발표가 있던 날, 나는 완전히 무너졌다.

돈 없이 엘리트 야구를 하려면 특출 난 실력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특출 난 실력은 재력으로 메울 수 있었다. 평범한 집에서 자란 나는 부모의 재력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특출 난 실력이 있어야 했는데 거기에 미치지는 못했다. 함께 야구를 시작했던 친구의 아버지는 동네에서 알아주던 재력가였다. 주전은 그 친구가 되었다.

친구가 돈으로 주전을 산 건지, 실력이 출중했던 건지는 알지 못했다. 나처럼 돈 없이 야구했던 선배들은 나를 위로했고, 야구배트를 선물 받은 선배들은 친구를 응원했다.

몇 년이 지난 뒤 아버지가 미안하다는 말을 힘겹게 꺼냈다. 꽤 오랜 시간 아들을 다른 학교로 이적시켜 야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애를 쓴 모양이었다. 그러나 리틀야구단 감독은 일정 금액을 내지 않으면 이적동의서를 써줄 수 없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그 돈을 구하지 못해 아들의 꿈이 짓밟히게 된 것에 크게 상심했다. 

한편으로 나는 야구를 그만둔 것에 대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도무지 내 실력으로는 잘 해낼 자신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보다 먼저 주전이 된 친구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내가 친구보다 못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가진 걱정은 투자에 대비해 내가 얻을 결과가 처참할 거라는 확신이었다. 


스스로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나는 오랜 시간 야구 중단 사건을 방패막이로 삼았다. 꿈을 접을 수밖에 없던 순간을 다가올 미래의 선택을 미룰 수 있는 빌미로 삼은 것이다. 나는 친구를 점차 멀리하기 시작했다. 나와는 다른 세계에서 사는 것을 보면서 그를 온전히 응원하지 못했다. 아마도 내 꿈을 가진 친구의 삶을 지켜보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다. 정확히 내가 어떤 감정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보다 나는 내가 선택한 세상으로 가야 했다.

이따금 친구의 소식을 찾아봤다. 친구는 아마추어 야구 선수 시절을 모두 겪어내고 결국 프로에 입단했다. 부상으로 인해 1군에는 올라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는 중에 나는 한 번도 친구의 연락을 받지 못했다. 친구는 야구인으로서 나를 대한 적이 없다. 친구는 가끔씩 다른 친구들을 만날 때 내게 전화를 걸어 함께 볼 수 있냐고 물었다. 친구의 머릿속에서 나는 함께 야구를 시작했던 동료가 아니라 그저 불알친구 중에 하나였다. 이제는 도무지 마음을 열지 않는 옛 친구.

 이제 와서 그 친구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볼 생각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다. 다만 나는 내가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나는 그를 미워했나, 응원했나. 삶에서 선택을 받아야 하는 순간이 생길 때마다 나는 주전 선발을 앞둔 그날이 떠오른다. 나는 정말 주전이 되고 싶었나. 야구를 그만하기 위한 핑계를 찾고 있던 것은 아닐까.


그날로부터 수십 년이 흐르고 아버지와 술자리를 갖다가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이미 완전히 옛날 일이 되어버려 마음에도 남지 않은 것들이 여전히 아버지의 마음속에 응어리로 남아있었다. 아버지는 그날의 기억을 술기운에 기대어 조심스럽게 꺼냈다. 


"아들, 나는 아들이 최고였다고 생각해. 그 팀에서 당연히 네가 주전이 되었어야 했는데 말이야. 내가 부족해서 그래, 내가 부족해서 그래. 그 돈만 마련했어도 이적해서 선수생활 했을 텐데."

"무슨 말이에요, 아버지. 저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저 야구 안 한 게 다행이에요. 끝까지 못했을 거예요."

"아들이 먼저 딱 야구 그만하겠다고 얘기했을 때 말이야. 내가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데.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부모 마음 먼저 알아주고 그렇게 해 준 게 얼마나 대견하던지. 고마웠어. 미안했어."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내가 안 하고 싶어서 그만한 거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선수로 성공할 수가 없었어, 잘 그만뒀어요."

"내가 OO 그 녀석 경기 계속 지켜봤거든. 스윙할 때 공에서 눈을 떼더라고,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말해줬던 건데 말이야. 여전히. 여전히 그랬어."

"알아서 잘하겠지요."

"그 녀석보다는 우리 아들이 계속했어야 했는데. 그래도 말이야. 나는 내 아들이 최고야. 내 아들이 최고야."


술자리를 끝내고 가만히 침대에 누웠다. 아들의 미래에 발목을 잡은 무능력한 아비, 아버지는 과거에 사로잡혀서 내게 부채감을 갖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마도 그날의 기억이 인생에서 손에 꼽을 만큼의 커다란 수치였을 것이다. 아비로서 아들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너무 오래 남아서 스스로를 괴롭혀 왔다.

그리고 아버지의 수치심을 알게 된 뒤 도리어 내가 수치심에 휩싸였다. 야구를 그만두겠다는 선택을 했던 순간은 아버지의 짐을 덜겠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섞여있었다. 그러나 나는 사는 동안 그 순간을 내 삶의 방패막이로 삼았다. 아버지의 짐은 다른 형태로 변해 새로운 수치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아들의 꿈을 지키려는 아비의 마음을 이용한 패륜아나 다름없었다.

성찰은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수치의 순간을 끄집어낸다. 수치심과 마주한 뒤에 오늘의 내게 질문을 던진다. 지난 순간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오늘의 나를 과거로 돌려 같은 순간에 놓는다.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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