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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수치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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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고 Jul 24. 2024

수치의 생 2 - 심해어 3

동경대 교수에 대해서는 결론도 내지 못했는데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양손 가득 무언가 짊어진 녀석의 부모님이었다. 이불이며, 옷가지며, 평소 녀석이 쓰던 물건들까지 모조리 가져온 모양이었다.


두 분은 인사를 건네는 우리에게 멀뚱하니 세워놓고는 집안을 휘젓기 시작했다. 싱크대, 세면대, 변기, 방바닥, 어디 하나 놓치지 않고 훑어보더니 가져온 짐을 풀러 수리와 청소를 시작했다. 어머니는 가져온 짐에서 빗자루를 꺼내 바닥을 쓸었고, 아버지는 삐걱거리는 문 경첩에 윤활제를 뿌렸다.


세 남자는 순식간에 객사람이 되어있었다. 좁은 방안은 발붙일 곳도 넉넉하지 않았다. 눈앞에서 일하는 녀석의 부모님을 그냥 두고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앉아만 있는 것이 곤욕스럽던 찰나 샤워기 헤드를 붙잡고 씨름을 하던 녀석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아, 그렇지, 우리 아들 친구들인가? 어디 좀 나가서 우리 애랑 좀 놀고 있게. 이것만 금방 정리할 테니까.


녀석의 아버지가 다 큰 아들을 '우리 애'라고 부르는 순간, 녀석의 지난 삶이 보이는 듯했다. 단 한 번도 인정받지 못하고 쓰레기 취급을 당했다는 녀석은 아버지에겐 그저 '애'였던 모양이다. 문득 녀석이 내 아들이라면 나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내놓기도 부끄러운 자식이라니, 생각만 해도 목덜미가 당겼다. 한편으로는 녀석 아버지에게 측은한 마음마저 들었다. 나이 들면 자식새끼와 함께 늙어가는 거리던 사이좋은 부자지간 이야기가 생각났다. 술 한 잔 기울이면서 인생을 논하는 친구 같은 부자지간. 녀석과 녀석의 아버지는 그런 부자지간은 분명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아버지 세대가 아비로서 가졌던 다짐들이란 거창하고 고귀하며 숭고한 것이었을 터, 많은 결심 아래 나타난 결과가 녀석이라면 상심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녀석이 날 때부터 저런 모양이었는지 살아가면서 저렇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가 만난 기간은 짧아 녀석의 과거까지 전부 다 되짚을 수는 없었으니까. 다만 스물일곱 먹은 아들이 자신의 부모에게 보이는 모습 만으로도 어느 정도 예측할 수는 있었다.


녀석의 부모님은 녀석이 사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계획했던 일을 시작했고, 그러는 동안 아들에게 어떠한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런 무관심이 익숙한지 녀석은 유령처럼 방안에 서 있었다. 우리 역시 유령과 같았다.


그러면 저희 잠시 나가있겠습니다.


아, 그러게. 이따가 저녁에 밥 먹고 가게. 할 이야기도 있으니까.


옥탑방에서 나온 남자 셋은 찌걱거리는 철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우리는 지상에 발을 내려놓자마자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집안에 흐르는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매캐한 냄새로 호흡을 제한하다가 맑은 공기에 몸이 제멋대로 반응해 버린 탓도 있었다.


아,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혀, 형님들. 죄, 죄송해요. 부, 부모님들 때문에 부, 불편하셨죠?


괜찮다고 했잖아.


그, 그렇지만 혀, 형님들 표정이 너, 너무 아, 안 좋으셔서요.


냄새나서 그래. 깨끗하게 하고 좀 살아, 제발. 부모님이 집 봐주시고 가면 그 상태 잘 유지하란 말이야.


후배의 핀잔에 녀석이 몸을 움츠렸다. 녀석은 과연 우리가 하는 말의 몇 퍼센트나 알아듣고 있는 걸까. 녀석이 하는 말로는 그 정도를 알아챌 수 없었다. 녀석과의 대화는 사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아직도 심해에 머물고 있는 녀석에게 물 밖에서 소리치는 느낌이랄까. 떨어진 말들을 주워다가 녀석의 사정을 연결하면 피로해졌다.


애초에 녀석에게 다가갔던 이유는 동정을 빙자한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알면 알수록 사람을 공허하게 만들었다. 허공에 멈춘 녀석의 초점 없는 눈동자는 녀석의 삶과 닮아있었다. 시선의 자극을 쫓았다가 성과 없이 멈춰 서고 또다시 시선의 자극을 쫓았다가 성과 없이 멈춰 서기를 반복하는. 심해어는 심해에서 볼 필요가 없었을 텐데, 천해로 올라와 빛을 보고 보이지도 않는 눈이 멀어버린 걸까. 


자꾸만 집에 가고 싶어졌다. 부모님과의 저녁 약속이 없었다면 아마도 그대로 집으로 향했을지도 몰랐다. 녀석은 갑작스레 생겨난 일로 넋이 나간 듯했다. 부모님이 집에 오는 것만으로도 벅찼을 텐데, 우리 두 사람 집에 들인 것도, 동경대 교수의 연락도 녀석의 마음을 어렵게 했을 것이었다. 녀석은 귀찮은 존재였지만 측은함에 신경 쓰이는 존재이기도 했다. 카페에 가고 싶다던 녀석의 말이 떠올라 점찍어둔 카페로 안내해 달라고 했다. 골목을 몇 번 돌자 건물을 통째로 쓰는 카페가 나타났다.


혀, 형님들. 뭐, 뭐가 마, 맛있어요? 이, 이런 데 오, 오면 뭐, 뭐 먹어야 해요?


아메리카노 마셔. 다들 그거 마셔.


그, 그건 쓰, 쓰잖아요.


그럼 단 거 시켜줄게 올라가 있어.


메뉴판에 적힌 수십 개의 메뉴가 녀석에게 얼마나 혼란을 줄지 알 것 같았다. 후배가 알아들었는지 자기는 아메리카노를 마시겠다고 말하고 녀석을 데리고 이 층으로 올라갔다. 후배도 나만큼 피곤해 보였다. 


카페 안에는 녀석이 부러워했을 만한 광경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연인들, 친구들, 가족들, 모두가 무리를 지은 채였다. 외롭다는 녀석의 메시지는 이런 시선의 자극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었다. 커피를 받아서 이 층에 올라갔을 때 후배가 난감한 표정으로 손짓을 했다. 이쪽으로 오라는 손짓인 줄 알았는데 후배가 손끝으로 저만치 떨어져서 앉은 녀석을 가리켰다. 녀석은 후배와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후배가 소리 없이 입을 열었다.


동, 경, 대, 교, 수.


왜 전화한 거래?


모르지. 올라왔을 때쯤 전화받았는데 계속 통화하는 거야, 쟤.


우리 지금 뭐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그러게.


얼음이 가득한 아메리카노를 쭈욱 빨아올리자 반절도 남지 않게 됐다. 후배도 목이 타는지 잔을 거의 비운 상태였다. 통화를 마친 녀석이 몸을 배배 꼬면서 어쩔 줄 몰라했다. 


혀, 형님들, 교, 교수님이 부, 부모님을 뵈, 뵙고 싶대요.


그게 무슨 말이야.


그, 그건.......


우리는 어떻게 하라고. 집에 가?


아, 아니요. 다, 다 같이 뵈, 뵙는 건 아, 안 될까요?


교수가 그러자고 해?


아, 아니요.


당황한 녀석은 다시 전화기를 가지고 저만치 떨어졌다. 한참을 뭐라고 하더니 녀석은 휴대폰 마이크를 손바닥으로 막고서는,


지, 지금 보, 볼 수 이, 있냐고 하, 하시는데요?


누구를? 우리를?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라 그래. 이쪽으로 오라고 해.


동경대 교수가 진짜 교수인지 아닌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피로감과는 별개로 만일 교수가 사기꾼이라면 녀석은 정말로 위험한 상태였다. 어차피 녀석이 벌 수 있는 돈은 한 달에 백만 원 남짓, 그걸 위해서 녀석에게 접근했을 리는 없었다. 녀석의 부모마저 구워삶아 더 큰돈을 뜯어내거나 녀석의 장기라도 탐내고 있는지도 몰랐다. 만일 동경대 교수가 진짜라면 그건 그거대로 좋은 일이 아닌가. 기껏해야 말로 선도하는 정도로 그치는 나보다야 더 확실한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전화를 받은 지 오 분도 안 되었는데 교수가 나타났다. 백칠십 후반의 건장한 체구였다. 체육계 교수라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트레이닝복 차림에 롱패딩을 입고 있었다. 왼쪽 다리가 불편한지 살짝 절었다. 묘하게 불쾌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앉으세요.


안녕하세요.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녀석은 교수를 보자마자 꾸벅 인사를 했다. 교수는 녀석과의 친밀감을 과시하려는 듯 녀석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 헝클어뜨렸다. 교수의 얼굴에는 고생의 흔적이 묻어있었다. 외모로만 보았을 때는 육십은 훌쩍 넘은 듯했지만 그렇다고 중후한 느낌을 주는 건 아니었다. 기름진 머리칼은 뒤로 넘겼고 그 위로 스포츠 고글을 이마 위로 걸쳐 멋을 부린 듯싶었다. 그에 비해 삐죽삐죽 솟은 수염은 정리가 되지 않아 더러워 보였다. 건조하다 못해 쩍쩍 갈라진 입술 사이로 부러지거나 빠져버린 치아가 보였다. 체육계 교수보다는 동네 양아치가 떠오르는 인상이었다.


저는 골프선수로서 장애인 국가대표 생활을 하다가 동경대에서 교수로 일을 했습니다. 지금은 동남아를 오가며 스포츠 용품 사업을 좀 하고 있지요.


교수는 묻지도 않았는데 앉자마자 자신을 소개했다. 허름한 배낭에서 파우치 하나를 꺼내 카드 꾸러미를 뒤적여서 라이선스를 하나를 보였다. 많은 사람에게 그 라이선스를 보여야 했었는지 플라스틱 카드가 이리저리 긁혀 하얗게 바래있었다. 현재는 사업을 한다면서 굳이 과거에 일했다는 교수 직함을 들이미는 것도 이상했지만, 사업을 하고 있으면 명함을 줄 것이지 골프선수 라이선스를 보여준다는 것도 이상했다.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게 교수는 계속해서 자신을 설명하려 들었다. 아마도 자신이 의심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듯했다. 준비한 듯한 말을 늘어놓는 것이 영 못 미더웠다. 


동경대 교수님이시라고요? 동경대에 한국인 교수가 있었어요?


아, 동경대에서는 시간제로 일했습니다. 제가 좀 도와준 셈이지요. 제가 장애를 겪고 있다 보니 이 친구를 보고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는 친구인데 말이지요.


곤란한 질문이었는지 시간제 교수 건에 대해서는 얼른 마무리하고 녀석 이야기를 꺼냈다. 교수는 녀석의 어리숙함을 장애로 여기는 듯했다.


그렇습니까? 대단하시네요. 저 친구 케어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바로 떠오르시나 봅니다.


비꼬는 말이었는데 교수는 자신을 추켜세워준다고 생각했는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또다시 그가 장황하게 자신을 설명하려 들었다. 장애를 겪으면서 운동을 시작했고, 선수 생활 중에 고달팠던 이야기들이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아픔들이 녀석의 아픔과 닮아있다고 했다.


후배는 내가 교수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동경대 한국인 교수'와 '골프 장애인 국가대표'라는 키워드로 계속 검색을 한 모양이었다. 교수의 자기소개가 끝나갈 때쯤 후배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었다. 


형, 그런 사람 없어. 사기꾼 확실.


교수와 내가 탐색전을 벌이는 동안 녀석은 불안한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교수가 말할 때는 교수 얼굴을, 내가 말할 때는 내 얼굴을 쳐다보면서 눈치를 살폈다.


제가 뭐라고 불러드려야 합니까? 사장님?


교수라고 불러주세요. 그게 편합니다.


시간제 교수로 오래 일하셨나 봅니다. 그런데 보통 시간제면 시간제 강사라고 하지 않나요?


교수는 교수입니다.


교수는 자신을 설명할 때는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굴더니 위협을 느끼자 돌연 정색을 했다. 후배도 나도 심드렁한 표정으로 일관하니 제 말이 먹히지 않는다는 생각에 기분이 상했던 걸 수도 있었다.


좋습니다, 교수님. 좋은 마음으로 도와주신다고 하니까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지금 저 친구 상황은 최악이에요. 서울에서 혼자 산다는 건 거의 불가능해요. 쟤 스펙으로는 취직도 어려워요. 스펙 안 보는 곳에 지원한다고 해도 면접에서 탈락할 겁니다.


혼자가 아닙니다. 저도 있고요. 그리고 도와주는 선배가 하나 있습니다.


선배요? 저 친구가 '형'이라고 부르는 사람 말하는 건가요? 뭘 알고나 하시는 말인지 모르겠네요. 지금 그 사람한테 돈 빌려주고 못 받고 있어요. 도와주긴 뭘 도와줍니까? 죽여버리겠다는 협박까지 듣고 있는데.


교수는 난생처음 듣는 소리라는 것처럼 놀라워했다. 하얗게 얼굴이 질린 녀석에게, 


정말이니? 왜 얘기를 안 했어?


하고 말하더니,


그 친구가 그런 친구가 아닌데 아마 오해가 있었나 봅니다.


하고 내게 말했다. 그 순간 나는 그 인간과 교수가 한 패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해라고요? 결과가 이미 있는데 무슨 오해입니까? 교수님도 저 친구 돕고 싶다면서요. 


그렇지요. 그래서 제가 라면도 사다 주고, 외로워하길래 밤새 이야기도 나누고 그랬지요.


아뇨, 진짜 저 친구 돕고 싶으면 그런 게 문제가 아니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쟤는 지금 서울에서 살고 싶대요. 아시잖아요. 서울에서 쟤가 혼자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거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불쌍한 친구죠, 맞아요.


그럼 그 돈 좀 받아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는 사이인 거 같은데.


얼마나 되는데요?


넉넉잡아서 사백 정도 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게 둘 다 제가 아끼는 아이들이니까 애매하네요.


한참을 골똘하더니 꺼낸 말이었다. 한숨을 연거푸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걔는 그럴 애가 아닌데 말이죠. 정말 착한 친구입니다.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분명히 갚을 겁니다.


지금 변호하시는 건가요? 듣기로는 교수님이 그 사람이랑 한 패라는 거 같네요.


아이고, 아닙니다. 한 패라뇨. 그저 제 입장이 난처하다는 겁니다.


뭐가 난처하다는 거죠?


둘 다 제겐 소중한 사람이니까요.


재밌네요. 소중하면 바른길로 선도해 주셔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지금 그 친구 옹호해 줄 만한 상황이 아닌 거 같습니다만.


교수는 말문이 막힌 듯했다.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자기 선에서 조율을 해보겠다고 했다. 아마도 녀석과 비슷한 수준을 생각하고 우리에게 찾아온 듯한데 막상 말발에 밀렸으니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었다. 한참 연장자인 사람이 따지고 보면 무례했을 수도 있는 내 태도를 지적하지 못했다는 건, 스스로 켕기는 구석이 있다는 반증이 되기도 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사기꾼이었다.


두 분이 있어서 일단 안심이네요. 저 친구 혼자 두기에는 걱정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부모님도 만나보려고 했던 겁니다. 오늘은 두 분이 먼저 선약이 되어 있었다고 하니 저는 가보겠습니다.


급하게 자리를 뜨려 하는 교수를 녀석은 종종걸음으로 나가 배웅했다. 옆에서 대화만 들었어도 교수가 자신을 도와줄 존재가 아니라는 것쯤을 알아챌 줄 알았는데 역시 그럴 리 없었다. 교수와의 싸움은 아직 결판이 나지 않은 셈이었다. 녀석에 대한 피로감은 아드레날린으로 잠시 사그라들었다. 그래, 딱 여기까지만, 아버님에게 상황만 말씀드리자. 그렇게 다짐했다. 


죄, 죄송해요, 제, 제가 미리 마, 말을 안 해서 혀, 형님들을 나, 난처하게 해, 해 드렸어요.


교수를 배웅하고 난 녀석은 우리에게 사과를 했다. 아마도 교수에게도 똑같이 말한 듯싶었다. 카페에서 나온 우리는 녀석 부모님의 연락을 받고 고깃집으로 향했다.


왔는가? 여기들 앉게. 우리 애랑 잘 놀아준다니 참 고마워.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녀석의 부모님은 그렇게 말하고는 우리와 합석하지 않았다. 분명 할 말이 있다고 했는데 이걸로 끝난 듯싶었다. 고향에서 떠나온 아들이 서울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지 않았을까. 아들의 서울 적응을 도와주는 사람이 앞에 있는데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는 게 영 이상했다. 한 가지 추론은 가능했다. '우리 애랑 잘 놀아준다니'라는 말은 곧, 녀석과 어울리는 비슷한 수준의 친구들로 여겨졌다는 것. 


하는 수 없이 녀석의 아버지께 식사 끝나고 집에서 뵙자는 말씀을 드렸다. 녀석의 부모님은 식사를 끝내고는 얼마든지 더 먹고 오라면서 카드를 건네고 먼저 집으로 갔다. 부모님이 자리를 뜨는 중에도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집게를 손에 쥔 채 고기에 시선을 맞췄다. 문밖으로 부모님이 빠져나갔고, 곧 죽을 것처럼 굴던 녀석의 입에는 커다란 상추쌈이 들어갔다.


식사를 마치고 녀석의 집에 들어섰을 때 방안에 진동하던 매캐한 냄새는 없었다. 도무지 사람 사는 곳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던 공간이 꽤 아늑한 곳으로 변해있었다.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방 가운데에 작은 테이블이 놓여있었고, 그 위에는 정갈하게 깎아놓은 과일 접시가 있었다. 그래도 좁은 방 안에 다섯 사람이 앉기는 버거웠다.


내가 살아보니까는 삶이 녹록지 않아. 공무원 만한 게 없지. 월급 따박따박 나오고 연금으로 노후까지 보장되지 않나. 자네들도 늦지 않았어. 내 주변에서도 나이 사십 먹고 공무원 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단 말이지. 우리 애도 좀 공부하면 좋겠는데 말이야. 영 소질이 없어서 안타까워.


그렇게 시작한 훈화는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녀석 아버지는 자식의 친구들이 자기 자식처럼 살기를 바라지 않는 듯했다. 한두 번씩 녀석을 흘겨보며 한심하다는 눈초리를 보냈다. 같은 말이 반복되는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말을 하는 게 걸렸는지 녀석 어머니가 갑자기 말을 끊었다. 


어머, 너 안경은 왜 그러니?


어머니, 혹시 안경 하나만 해주실 수 있으세요? 취업하려면 여기저기 면접 봐야 할 텐데 안경다리가 부러져서 보기가 안 좋네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녀석 어머니는 녀석을 붙들어 일으켜 세웠다. 거의 끌려나가다시피 녀석은 어머니와 함께 집을 나섰고, 집안에는 세 남자만이 남게 됐다. 녀석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본격적으로 공무원에 대해 설명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가 지갑 속에 버리지 않고 둔 예전 명함을 뽑아서 녀석 아버지에게 건넸다.


아버님, 사실 제가 뵙자고 한 이유가 있어요. 아버님도 알고 계시는 것 같아서 가감 없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은 아드님은 서울에서 살아낼 정도가 아니에요.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단기로 계약되고 일회성으로 끝나는 일이라 한 달 내내 할 수도 없고요. 일이 끝나고 나면 좋은 평가도 못 받아서 같은 업체에서는 더 이상 쓰지 않으려고 해요. 아버님도 아시잖아요. 아드님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 못할 거라는 거요. 


녀석 아버지는 건넨 명함을 한참이나 훑었다. 친구와 함께 했던 스타트업 회사에서 이사 직함을 받아 파놓은 명함이었다. 녀석 아버지가 소리 없이 입으로 '이사'하고 중얼거렸다. 어느새 경청하기 시작한 녀석 아버지는 낯빛이 어두워졌다.


매일 같이 힘들어하더라고요. 이상은 큰데 현실은 그게 아니니까요. 부모님 기대에 못 미치는 걸로 매일 같이 고통스러워하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몰라요. 아무도 안 가르쳐줬으니까요. 보통 사람들은 이쯤 하면 다들 알겠거니 하지요. 그런데 아드님은 그 정도로는 안 돼요. 더 자세하게 알려줘야 하고 차근히 오래 기다려줘야 해요. 그런데 세상은 절대 기다려주지 않겠죠.


못난 자식의 부족함이 까발려지는 동안 아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애가 많이 부족한 거는 알고 있었네. 다그치는 것밖에 할 줄 못해서 매번 상처만 줬던 것도 알았고. 그런데 사실 나는 그렇게밖에 안 나와. 그게 미안하면서도, 매번 그렇게밖에 못하고 있지.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솔직히 잘 따라와 줄지는 모르겠어요. 자신감도 너무 떨어져 있고, 기본기도 부족해서 취직은 진짜로 어려워요. 일단 아르바이트하면서 생활비 마련하고요. 청년 대상으로 하는 국가 지원 사업 많이 있으니까 새로 뭔가를 배우게 하는 수밖에 없어요. 지금 가지고 있는 걸로는 아무 데도 가지 못해요. 아마 아무도 원하지 않을 거예요. 하나씩 해결해 가야 하는데 누군가 지지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 엄청 힘이 되지 않을까요. 그게 부모님이면 제일 좋고요.


일장연설은 자식 얘기에 경청하는 녀석 아버지 덕에 수월했다. 말은 봇물 터지듯이 흘러나왔고, 방 안의 공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녀석의 아버지는 지난날의 과오를 더듬는 듯했다.


고맙네. 내 새끼 옆에 있어줘서. 정말로 고맙네.


준비해 둔 취업 지원 사업 자료들을 꺼내려는 찰나에 녀석과 녀석의 어머니가 집안으로 들어섰다. 새 안경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녀석은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간이침대 위에 벌러덩 누웠다. 더 깊은 대화는 어려울 듯싶었다. 그 인간과 교수에 대해 말해야 했지만 오늘 녀석 아버지에게 더 큰 충격을 안기면 멘탈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다음 기회에 더 자세하게 설명하기로 하고 인사를 드리고 집을 나왔다. 


피로감은 녀석 아버지와의 대화 이후에 책임감으로 변해있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우리는 다시 만났다. 몇 가지 결정해야 할 것이 남아있어, 녀석을 카페로 불러냈다.


돈 받고 싶어?


네, 네. 바, 받아야지요. 하, 하지만 그, 그 자식이 저, 절 주, 죽이려고 하, 할 거예요.


받으려면 받아줄 수는 있어. 네가 해야 할 일들도 하나씩 알려줄게. 경찰에 신고하면 수사관 붙어서 웬만한 것들은 알아서 처리해 줄 거야. 주체는 네가 되어야 하겠지만 어려운 게 있거든 바로바로 도와줄게. 할 수 있겠어? 


그, 그렇지만 그, 그 자식은 아, 악랄한 노, 놈이에요.


신변 보호나 접근 금지 같은 것도 신청도 할 수 있어. 협박받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하니까. 대신 우리가 다 해줄 수는 없어. 중요한 건 너 스스로 해야 한다는 거야. 우리는 네가 어려워하는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와주겠지만 주체는 네가 되어야 해.


그, 그 자식이 혀, 형님들에게 해, 해코지를 할 거예요. 혀, 형님들이 피해를 다, 당할 거예요.


우리에게 피해를 끼칠 거라는 말이 꼭 자신에게 올 피해를 걱정하는 것처럼 들렸다. 공연히 핑계를 대면서 마음속에 공포심을 포장하려는 게 눈에 보였다. 언제나 그렇듯 녀석의 거짓말은 누구를 위한 건지 알아내기가 어려웠다. 피로감이 몰려올 때마다 녀석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피곤한 책임감이었다.


저, 저, 조, 조금만 새, 생각할 시, 시간을 주, 주세요.


고개를 끄덕이자 녀석은 조용히 카페 밖으로 나갔다. 겨울바람이 제법 날카롭게 불었는데 이따금 유리로 된 통창이 흔들흔들 소리를 냈다. 바람은 녀석의 머리칼을 마구잡이로 흩어놓았다. 바람은 마치 교수의 손아귀 같아 보였다. 녀석이 다시 자리로 돌아왔을 때 눈동자에는 초점이 사라져 있었다. 몇 번이나 입만 벙긋거리더니 힘겹게 말을 이었다. 


도, 돈이요. 포, 포기할게요.


그럼 그냥 완전히 싹 잊어버리고 앞으로 열심히 해 보자. 자, 이거 형이 준비한 자료들이야. 지역별로 청년 지원 사업이 다른데 너 사는 동네에서는 이런 것들이 있더라고. 집에 가서 한 번 보고 제일 마음에 드는 게 뭔지 얘기해 줘. 그다음에 할 일은 그때 알려줄게.


그날 밤 녀석 아버지에게 전화를 받았다. 그날은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를 못해 명함의 번호로 연락을 했다고 했다. 몰라봐서 미안하다, 아들과 어울리는 친구 정도만 생각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고맙다. 같은 말을 수십 번은 더 반복하고서는 간절한 녀석의 아버지는 전화를 끊었다. 옆에서 잘 지켜보겠다고 녀석 아버지를 안심시켰고, 피곤한 책임감을 앞으로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걱정스러워졌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록 녀석은 연락이 없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몇 번이나 전화도 걸어보았고, 메시지도 보냈지만 답신은 없었다. 매일 밤 외로움에 허덕이던 녀석은 이제 더 이상 외롭지 않게 된 걸까. 후배도 나만큼 녀석에게 연락을 해왔던 모양이었다. 후배와 술자리를 가지면 녀석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 끝에는 주소록에서 녀석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녀석 목소리는 결국 들을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달이 더 흘렀을 때 후배가 녀석 근황을 알아 왔다.


걔 결국 동경대 교수에게 붙었나 봐. 카카오톡 프로필에 골프채 휘두르는 사진 올려놨더라고.


동경대 교수가 진짜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다만 녀석의 프로필에서 녀석은 골프를 하고 있는 듯했다. 잘 지내고 있다면 다행이다,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리고 또 몇 달이 흘렀고 후배는 이직에 성공했다. 나는 여전히 휴식 중이었고, 늘 무료했다. 상심은 오래 묵어 익숙했다. 괜찮은 일거리가 있으면 한두 번씩 단기로 아르바이트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녀석을 만났던 카카오톡의 구직방에 남아있었다. 무기력은 여전했고, 동기를 만들어줄 후배가 없으니 일을 나간 적은 없었다. 구직방은 언제나 인력을 찾는 업체들의 구직 공고가 넘쳐났다. 그곳에서 아주 오랜만에 녀석이 소식을 전해왔다.


숙식 제공되는 알바 있나요?


참담했을 녀석의 지난 몇 달이 눈앞을 스쳤다. 익숙한 피로감이 화면 위로 솟구쳐 내 몸을 덮치는 듯했다. 한동안 구직방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때 화면 위로 배너가 하나 올라왔다. 아버지의 메시지였다. 거의 한 달 만에 받는 아버지의 연락이었다. 배너를 클릭하니 지난달에도, 그 지난달에도, 또 그 지난달에도 아버지에게 받은 메시지가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씩만 우리 부자지간은 대화를 나눴다.


아들, 이번 달 전세 이자랑 용돈 조금 보냈다. 많이 못 보내서 미안하다. 언제나 믿는다.


아버지의 메시지로부터 녀석과 내가 겹쳐 보였을 때 비로소 심해 갇힌 나를 발견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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