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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전자 Feb 03. 2024

당신은 스스로를 어디까지 받아들였나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많은 리뷰가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젊음에 대한 미련'에 대해 얘기한다고 표현한다. 젊었던 시절 혹은 자신이 가장 사회에서 주목받고 빛났다고 생각하는 때에 대한 미련과 열망이 어떻게 시야를 가리는지 보여준다고. 한 스타가 주연에서 조연으로 몰락하는 과정과 거기에서 나오는 깨달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리아의 젊음에 대한 미련은 영화 속 드러나지 않는다. 젊음에 대한 미련이라고 하면 자신의 젊을 적 모습에 대한 그리움이나 예찬이 드러나야 하는데 이런 장면은 보지 못했다.


나는 자신에 대한 받아들임이 부족했던 개인의 성장 과정을 표현한 영화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마리아가 어떻게 자신의 베일을 벗고 다음 단계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얘기해보고 싶다.


자신의 여러 측면과 다양한 모습을 보려는 용기도 수용하려는 노력도 하지 못했을 뻔한 마리아. 그녀는 어떻게 자신의 그러한 점을 인정하고 마침내 연극에서 '헬레나' 역할을 진심으로 연기할 수 있었던 걸까? 그 용기와 깨달음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가장 큰 요소는 발렌틴을 상실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발렌틴은 마리아의 조수로 연극 연습을 위해 마리아와 대사를 맞추는 일을 한다. 그 외에도 함께 생활하며 이혼 절차 준비나 출연 제의를 관리하는 매니저 역할도 한다. 연극 대사를 연습하며 발렌틴은 마리아의 히스테리와 배역에 대한 끊임없는 불평을 듣게 되며 그것 말고 다른 시선이 있을 수 있음을 다른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음을 계속해서 얘기한다. 일상을 함께하면서도 마찬가지.


마리아는 계속해서 자신의 불평을 쏟아내고 불평이 타당하다는 고집을 피운다. 발렌틴은 마리아가 힘들다면 관두자는 말을 하고, 마리아는 결국 출연을 취소하려고 한다. 하지만 엄청난 위약금 때문에 출연을 취소할 수 있는 방법은 찾지 못했고 마리아의 불평과 의구심과 고집은 멈추지 않는다.


발렌틴이 지칠 법도 하다. 결국 발렌틴은 자신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사용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이 중요하지 않다면 일을 그만두겠다고 한다. 한마디로 마리아에게 답정너짓 좀 그만하라고! 고집 좀 그만 부리라고! 너의 시각만 그러니까 미디어의 시각만 주류 세상의 시각만 옳지 않다고! 아주 나이스하게 얘기한 것이다.


마리아는 발렌틴의 말이 결코 틀리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발렌틴이 떠나겠다고 얘기했을 때 마리아는 네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그녀를 아주 꽉 껴안는다. 연극을 하기 위해서 자신의 상황을 다른 시선으로 직면해야 함을 알고 있으며, 그녀에게는 발렌틴의 시선과 생각이 필요함을 잘 알고 있다.


다만 마리아가 발렌틴의 시선을 내면화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이 여태 옳다고 믿은 가치에 대한 미련과 두려움 때문에 나아가지 못한다. 가슴속 두근거림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여행을 떠나기 위한 설렘이 아니라 공포와 두려움으로 느껴진다. 20년 전 주인공 배역이었던 배우가 같은 연극에서 조연을 맡게 됨으로써 찬란했던 개인의 몰락으로 대중에게 프레임화 될 것에 대한 두려움, 나이 듦에 따른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사회적 위치 변화를 몰락이라고 생각하는 마리아의 경직된 사고, 이전 ‘헬레나’ 역할을 했던 배우의 자살과 그것을 자신과 연관시켜 자신도 그 길을 걷게 될 거라는 증거 없는 믿음, 자신의 결말에 대한 상상력 부족..이라는 복잡한 감정과 상황적 요소가 그녀의 발목을 잡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마리아는 발렌틴을 상실함으로써 나아간다. 자신의 불평을 유일하게 받아줬던 발렌틴. 그녀가 떠났지만 연극은 계속되어야 했고 마리아는 일종의 투명한 방패막이었던 발렌틴 없이 세상에 자신을 내어놓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세상에 우두커니 놓였지만 세상을 둘러보니 그녀는 혼자가 아니다. 시간이 흘러 마리아의 나이가 헬레나만큼 들기를 기다렸다는 인물의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다른 시선으로 자신의 상황을 재조명하며 마침내 그녀는 외부와 연결된다.


발렌틴이 떠난 후 경험에서 마리아는 성숙해진 상태였을 것이다. 그리고 조앤과의 대화 장면에서 마리아가 성장한 모습이 엿보인다. 조앤의 말을 듣고 그것에 동의하며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수용한다. 더 이상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힘이 생겼다는 것이다.


여기서 객관적이라는 것은 단순히 남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역할을 잘 알고 전체적 모습에서 자신을 볼 수 있음을 말한다. 어쩌면 메타인지가 생겼다는 말이다. 이것은 마리아가 외부와 연결되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지 못했을 경우 그녀는 버림받는다는 생각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했을 것이기에.

마지막 장면에서 마리아는 자신의 현재를 받아들이고 자신과 한층 가까워진 모습이다. 그리고 가장 젊은 때 혹은 가장 빛나는 때는 나의 여러 모습을 받아들일 때이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신체적 젊음으로 삶에 대한 명확함으로 지혜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내면의 힘과 삶에 대한 의지는 자신의 여러 측면을 계속해서 발견하고 의도치 않은 상황에서 발견되기도 하며 그것을 바라보고 수용해 가는 과정에 길러진다는 생각이다.


다른 결말은 그렇게 시작될 것임에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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