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madic Feb 25. 2020

우리에게 별 일이 생겼다

[나와 우리의 투쟁일기_4]

(지난 글을 쓴 지 열흘 남짓 사이에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그 변화된 상황들 속에서 어떤 글을 이어갈지, 무엇을 말할 수 있을지 망설였다.

하지만 우리의 선택도, 나의 선택도, 우리 각자의 선택도 올곧이 우리의 몫으로 받아들이며 다시 또 키보드를 꺼내 들었다.)


눈인지 비인지 모를 고체의 것들이 얼굴을 따갑도록 내리쳤다. 그것들을 온몸으로 맞아내며 기자회견을 마친 우리는 다시 우리의 일터로 들어갔다. 기자회견의 성과라면, 전화 조차 피하던 담당 공무원과 대면할 수 있었고 이 문제에 대해 금주 목요일까지 의견을 주겠다는 답을 들은 것이었다. 명확한 실체도 구체적 의지도 없는 그 답변이나마 희망의 끈으로 붙잡고 싶던 우리는 그리 잠시나마 안식의 찰나를 만끽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찰나와도 같았다.


약속한 목요일 오후, 담당 부서의 공무원 몇몇과 직원들이 마주 앉았다. 아무런 말도 아직 시작하지 않았지만 불과 며칠 새에 달라진 그들의 눈빛과 그 눈빛 아래 시선을 어디둘지 몰라 헤매는 눈짓만으로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긴 침묵 끝에 나온 답은 직감과 일치하였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 말들이, 때로는 고성이 오고 갔지만 그것은 모두 허공을 떠다니다 사라져 버리는 소음에 불과했다. 소음은 소음에 불과하여 그것 자체로 모두 소멸하였고, 결국 의미를 발하는 언어로서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공연장에서 매번 숨죽여 듣던 노래 속 가사말이 떠올랐다.


나를 어렵게 만드는 얘기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결국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터를 박차고 나와 도청으로 향했다. 무려 70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운전하는 내내 분노, 한탄, 회의감, 모멸감, 경멸.. 세상의 모든 부정적인 수식어들이 감정을 사로잡았다.

그리 도청에 모인 우리는,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가장 높은 사람을 만나 달라 울분했다.

'답답하고 분함. 또는 그런 마음'

울분이라는 단어가 갖는 정의 그대로의 의미를 담은 외침, 그것이 지금의 우리였다.


우리가 만나고자 하는 그 사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확신할 수 없었으나 수많은 정치인들, 공무원들 가운데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가장 높은 사람임은 분명했다. 건물 앞에 진을 치고 서있는 우리를 향해 하나둘 청원경찰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우리는 '여기서 소리 치면 집회법에 어긋 난대, 여기 앞에서 피켓은 들면 안 된대'라고 속닥속닥 메시지를 전달하며 매우 조용하고도 순진한 투쟁을 벌여갔다. 그럼에도 우리와 대치하는 이들의 시선 속 우리는 마치 이 곳을 부수고 달려들 것만 같은 사회의 방랑자이자 이 넓은 청사 안의 이방인과도 같았다.    


담당 공무원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그들이 하는 말은 이미 서로 대본을 맞추고나 온 듯 동일했다.

"여기에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결국 한 시간 만에 높으신 분이라고 알고 있던 그분을 만나게 해 주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대면의 조건은 하나였다. '회의를 마치면 접견실을 바로 나가야 한다는 것, 그곳을 장악하고 계속 진 치고 있음 안된다는 것'.

그들에게 우리는 단순히 떼를 쓰러 온, 그러다 이곳에 진을 치고 드러누울지도 모를 막무가내의 민원인에 불과하였다.


높으신 분이라 일컬어지는 그분은 늘 보아왔던 높으신 분들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이야기를 늘어놨다.

"검토해보겠다, 최선을 다해보겠다."

매우 긴 이야기를 늘어놨지만 마땅히 남길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급히 꺼내 든 포스트잇 열 장 가까이를 채웠건만 그것은 선거판에 뛰어들기 위해 잠시 공무직에 들른 전형적인 정치인의 수사에 불과했다.


왜 장기하가 그토록,

니가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며 꺼낸 말이,

나는 별일 없이 산다고, 뭐 별다른 걱정 없이 산다고, 이렇다 할 고민 없다고

한 것이었는지 알 것만도 같았다.  


우리에겐 지금 별일이 생겼고,
별다른 걱정이 생겼고,
이렇다 할 고민이 바로 앞에 다가와있었다.


그리 많지도 않은 그렇다고 아주 젊지도 않은 삶을 살아가며, 순간순간 예상치 못한 일들이 펼쳐지고 그 예상치 못한 일들에 방황한 적도 고뇌한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삶은 내가 예상하고 계획해 온 길들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지나고 보니 그리 별 탈 없는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의 이 순간들은 한순간도 예상하지 못 한 상상해보지 못 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종무식을 마칠 즈음엔 당연스레 신년식으로 시작되는 출근이 내일로 있었다. 그리고 그 당연한 내일 속에 나와 우리는 사무실에 있어야 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예기치 못한 변수들이 아직 남아있었고 그 변수는 절묘하게도 지금 우리 곁을 바로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이 변수들 속에 왜 우리가 있어야 하는 것인지, 왜 이 변수는 우리를 피해가지 않고 정면으로 이 앞에 멈춰 선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이것이 지금 우리가 직면한 별일이고 또한 현실이었다.


유난히 해가 짧아진 1월의 저녁, 우리는 짧은 계획 몇 마디를 나누며 헤어졌다.


우리는 내일 사무실로 돌아가지 않아요,
내일 아침 여기에서 다시 만나요,
이제 시작이에요,
우리의 목소리를 외쳐봐요.



그렇게 40일이 넘는 우리의 거리 투쟁이 시작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투쟁은 처음이라...(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