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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 Feb 26. 2020

우리도 우리가  투쟁이란 걸 할 줄 몰랐습니다

[나와 우리의 투쟁일기_5]

집회 신고

스피커&앰프와 필요 물품 준비

문구와 구호 정리

우리의 요구가 담긴 피켓과 현수막 제작

보도자료 작성과 SNS 계정 관리

대외 홍보 및 연대 단위 조직 등등


다시 또 분주한 역할 분장과 움직임들이 이어졌다. 피켓에 담길 구호 하나 만드는 것에도 고민과 고민이 계속되었다. 혹여나 너무도 공격적인 메시지가 담기면 되려 악영향을 끼칠까, 최대한 정제되고도 정돈된 메시지를 골라냈다. 그렇게 제작된 우리의 피켓을 보고 누군가는, 이렇게 착하고 예의 바른 투쟁 메시지를 담은 피켓은 처음 보았다며 낄낄 웃어댔다.


그리 한 주가 또 시작되었다.

8시~9시: 출근시간 선전전

11시 30분~1시: 점심시간 선전전


시간에 맞추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것,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일과였다.  


올겨울이 기상 이후라 할 만큼 유난히도 따스한 겨울이라고 하지만, 겨울은 겨울인지라 바람이 매서웠다. 특히 이른 아침 온몸으로 맞이하는 겨울바람은 유독 차가웠다. 더군다나 우리는, 양주, 의정부, 남양주, 서울, 하남 등지에서 새벽같이 이곳으로 움직여야 했다. 짧게는 30킬로미터, 길게는 100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이였다.

모두들 이 투쟁을 위해 평소 출근시간보다도 훨씬 더 이른 때에 집에서 나서야만 했다. 기름비 또한 만만치 않아 몇몇은 돌아가며 한 차에 사람들을 태워 매일매일 투쟁장으로 출근했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처음으로 장거리 운전을 해보았고, 누군가는 아이의 어린이집 등원 길을 친정엄마의 손에, 장모님의 손에 맡기고 움직여야만 했다.


첫날, 피켓을 들고 멀뚱멀뚱히 서있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부끄럽고 몸이 간질간질 움츠려 들었다.

자연스레 출근길에 오르고, 점심시간에 커피를 들고 일터를 오고 가는 이들을 바라보며 뭔지 모를 이질감과 묘한 동경이 느껴졌다.


분명 나도 이 시간에 출근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이 시간이면 우리도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 하며 수다를 떨고 있을 때인데,
지금쯤이면 나도 하루를 마무리하고는 집에 가야 할 시간인데,


우리 모두 그러했다.

누군가는 세상에 나온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아이를 두고 이 자리에 섰으며, 누군가는 오는 4월 결혼을 앞두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출근길마다 옷자락에 매달리는 쌍둥이의 아빠였고, 엄마였으며, 또 누군가는 곧 큰 수술을 앞둔 아버지를 병원에 모시고 온 딸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삶에 있어 가장 빛나고도 찬란한 순간을 마다하고 이 곳에, 때로는 가장 힘겹고도 서글픈 가난과 아픔의 순간들을 한켜이 비켜내고 이 자리에 서 있었다. 우리 각자는 하나의 삶으로 일컬어진 가정의 가장이자 버팀목이었으며, 한 가족의 일원이었다. 또한 우리는 너 나할 것 없이 '내 삶의 가장'이었다.


한 달의 월급이란, 부모만을 바라보는 어린아이들의 물줄기였고, 또한 어느 한 가족의 가장인 아버지의 병원비였으며, 형편이 어려운 부모님께 드려야 할 생활비였으며, 삶과 한 가정을 지탱하게 하는 안식이었다. 그런 우리가 일터를 박차고 매일같이 이 자리에 서서 같은 구호를 외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매우 큰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다. 실제로 매일매일이 결단의 연장이었다. 하지만 삶의 무게들을 잠시 비켜낸 채 우리는 매일 이 자리에 모였다.


그 이유는 하나였다.

해고된 동료들 역시, 어느 한 가족의 가장이며 버팀목이며 소중한 딸이라는 것.
그들의 삶과 우리의 삶이 결코 다르지 않았기에, 그것을 외면하고 돌아설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언제든 이러한 일들이 그들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 마음들이 모두를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이다 보니, 어느덧 얼굴과 목소리에 부끄러움이 사그라들었다. 내내 따로따로 각기 울려대던 구호를 가다듬었다. 여덟 글자의 구호를 앞에서 선창하면, 다 같이 여덟 글자를 따라 외치고 마지막 네 글자를 두 번 외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구호를 외치는 목소리는 점차 가다듬어졌고,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그 외침 또한 더욱 절실해져만 갔다.


하지만 추위는 절대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핫팩을 양손에 쥐고 신발 아래에도 붙여두었지만 칼바람 앞에서는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특히 발가락 끝이 추위에 저려오는 것은 그 어떠한 핫팩이 개발된다 하여도 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올겨울을 맞이하며 드라이를 맡겨둔 뒤 꺼내 둔 코트는 옷장 속 사치품에 불과했다. 남편과 아들에게서 뺏어온 롱패딩, 오랜만에 꺼내 든 털부츠, 기모스타킹에 양말, 목도리, 귀마개까지 총동원하였지만 얼굴을 찰싹찰싹 때리는 바람은 차갑고도 시리었다.   


날은 점점 더 추워져만 오는데 달라지는 것들은 아무것도 없었다.

또한 직면한 현실은 결연했던 다짐과는 또 달라, 매일매일이 고심과 고뇌, 갈등의 연속이었다. 이러다가는 정말 우리 모두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었다.


사무실로 복귀하지 않으면 해고될 수 있다는 일터의 문자가 하루를 마다않고 전송되었다.

문자는 늘 가나다 순으로 오는 지라, 가장 이름이 빠른 동료의 휴대폰이 울려대면 모두가 침묵한 채 그 메시지를 기다렸다. 메시지에 동요하는 정도는 각자마다 달랐으나, 우리 모두 추위보다도 더 큰 불안에 떨고 있다는 것은 동일했다.  


그리 매일이 고비였고, 매일 아침이면 다시 또 마음을 가다듬으며 투쟁이라는 것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비록 투쟁 전사는 아닐지언정 우리에게 당면한 부당함을 당연한 관행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에 맞서는 각자의 삶 속 투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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