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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 Mar 10. 2020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나와 우리의 투쟁일기_9]

사무실을 떠나온 후에도, 천막을 설치한 후에도 아랑곳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천막에서 살을 찌우는 동안에도 회사의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는 건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통과의례가 되었고, 관련한 소식들에 귀를 쫑긋 세우는 날들이 쌓여갔다. 아무리 사무실을 박차고 나와 천막에 있는 것이 지금의 우리라지만, 조금이라도 회사 언저리의 소식이 들릴라 치면 온갖 촉각을 곤두 세우며 신경이 우뚝 서는 것은 별 수 없는 사람의 감정이었다.


그 사이 우리는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막기 위해, 때로는 그것들을 우리 눈으로 마주하기 위해 몇 차례고 먼 거리를 달려갔다. 긴 이동 끝에 마주한 사무실은 어느새 우리의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사무실 안에는 이 문제와 관련한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고, 우리는 그새 타자가 되어있었다. 그 움직임들을 막기 위해 사무실 문 앞에 피켓을 들고 서있던 때에도 누군가는 계속하여 사무실 문을 열어 그곳에 들어갔고, 그 움직임들을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우리는 아직 엄연히 이곳의 직원이었건만 그곳에 쉽사리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본능적으로 인식한 우리의 처지였다. 정수기 옆에 놓인 커피를 타들고 자연스레 정수기를 오고 가고, 로비에 놓인 책자와 물건들을 들여다보고 때로는 만지작 거리는 그 움직임들이 너무나도 고요하여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리 서서 사무실 안을 낯선 풍경처럼 바라보고 있을 때쯤, 뒤에 서있던 동료가 조용히 말을 내뱉었다.


"우리 꺼야, 함부로 만지지 마..."


맞아, 저곳은 우리가 매일같이 드나들던 우리의 일터였으며, 우리의 손길로 가꾸고 꾸며둔 곳이었다. 하지만 어느덧 계속하여 열고 닫히는 저 사무실 문이 우리에겐 닿지 못할 커다란 장벽과도 같았다. 불과  주만에 우리의 사무실이 마치 '내꺼인  내꺼 아닌 내꺼같은 '처럼 가깝고도 낯선 곳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공간은 타자의 공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천막에서 하루하루 힘겨운 투쟁을 이어가는 동안에도 사측은 나름의 논리로 분주하고도 빠르게 그 논리를 완성해갔다. 그리 논리를 완성해가는 절차 중 하나로 해고된 동료들에 해당하는 채용공고가 올라왔다. 공지가 게시된 날로부터 3일간의 서류 접수, 서류 접수 마감 당일 서류 합격자 발표, 발표 다음 날 바로 면접, 연이은 최종합격자 발표와 출근까지, 이 모든 것들이 설 연휴를 제외하고는 고작 4일 만에 번개같이 이뤄질 일정이었다.


천막에서 투쟁 노선을 펼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허상과도 같았다. 이곳에서 매일매일 목 놓아라 외치는 목소리는 그곳까지 가닿지 못하였고, 그 거리만큼이나 '어쩔 수 없음'으로 포장되는 일들이 늘어가고 있었다. 넋 놓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하루의 시간이 귀했고 그만큼 절박했다. 여기서 머리 싸매고 있는 이 순간에도 시간은 제 속도대로 부지런히 지나고 있었고, 우리가 어찌해볼 수 있는 절대적 시간 또한 줄어들고 있었다.


설 연휴를 목전에 둔 늦은 밤,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사측의 제안이 들려왔다. 우리가 줄곧 이야기하던 해고자 복직에 대해 긴 논의를 거친 끝에 '안'을 마련했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무엇이 크게 바뀌기나 하겠냐만은 콩닥콩닥 가슴이 뛰어왔다. '드디어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이제 우리는 모두  함께 사무실로 돌아갈 수 있는 걸까' 하는 결코 져버릴 수 없는 기대과 함께, '또 어떤 꼼수가 있는 거지' 하는 마음 한 켠에 자리 잡은 불안들이 뒤섞여 밤새 뒤척이던 그 사이에도 시간은 정직히 흘러갔고, 어느새 약속한 그 날이 되었다.


아침부터 둘 이상 모이기만 하면 상상 가능한 온갖 시나리오들이 쏟아졌다. 절대 불가, 부분적 수용, 극적인 타협까지 예상할 수 있는 모든 선에서의 다양한 예측들이 오고 갔다. 다들 어디서 들어봤음 직한, 이전 직장에서 경험했던 비슷한 사례들을 꺼내어가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아니 이 상황에서 그 끈마저도 놓아 버리면 정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내심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사무실까지 이동하는 한 시간 반 동안 '섣불리 기대하지 말자, 그 어떤 상황에도 실망하지 말자, 주저앉지 말자' 체면을 걸어가며 들뜬 마음을 가다듬었다.  


드디어 사무실에 도착한 순간, 긴장 탓인지 배가 아려왔다. 그 긴장만큼이나 몇 주만에 제대로 마주한 이 공간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공간을 낯설어하는 내가 또한 낯설었다. 어쩌면 오늘이 우리의 계속된 싸움의 전환점이, 또 다른 분기점이 될 수도 있다는 직감이 스쳐 지나갔다.


사측과 마주한 자리는 언제나 양측의 긴장과 묘한 경계가 공간을 가득 메웠고 오늘 역시 마찬가지의 날이었다. 사측에서 먼저 말문을 열었다. 고심했다는 그 '안'에 대해 말하는 순간이었다. 앞선 말보다 긴 시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답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현기증이 일렁였다. 종일 '예상할 수 있는 선에서의 모든 예측'을 했건만, 언제나 답변은 우리가 예상할  있는  선을 넘어섰다.


현재 진행 중인 채용공고의 합격자 발표 전날까지 수용 여부를 알려달라는 그 안은 '한 달짜리 단기계약'이었다. 약 5년간을 일해왔고,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이들에게 '한 달짜리 단기계약을 체결해줄 테니, 한 달 후 나가 달라' 이것이 설 연휴를 하루 앞두고 사측이 제시한 안이었다.


"그게 다인가요?"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은데... 이런 걸 데자뷰라고 하는 건가?’

이 상황이 낯설지 않았다. 새해를 하루 앞둔 날 문자로 통보된 고용 불가, 설 연휴를 하루 앞두고 제시된 한 달 단기근로계약. 날짜를 되돌려 다시 작년 12월 31일로 되돌아간 것만 같았다.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했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그리 고대하던 대화가 끝이 났다. 사무실을 박차고 나오는 길, 결국 주저앉아 한참을 울고 나서야 이 상황들이 자각되기 시작됐다. 그간 오고  지난한 대화와 울림들은 다시금 허공으로 증발되었음을,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음을.


세상엔 논리와 이성만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 가득했다.
무장된 논리도 이성도 현실 앞에서는 단어가 지닌 그 정의만큼의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사회란 더욱 그러했다.


그렇게 연휴가 다가왔다. 민족 최고의 명절이라는 설을 맞아 고요하기만 한 도청 앞 한 켠에는 여전히 천막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안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시간은 때때로 잔인하리만치 어느 곳에서든 공평한지라 천막에도 새해가 밝아왔다.


연휴가 끝나자마자, 정해진 수순이라는 듯 다시 또 고용 취소를 예고하는 문자가 도착했다. 문자 속 메시지에는 매일매일이 마지막이었고, 이제 실로 마지막일 수 있다는 위기감들이 천막 안을 잠식했다. 천막을 가득 채운 고요가 적막함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더 이상 강요할 수도, 강제할 수도, 하나의 다짐으로 이 투쟁을 끌어갈 수는 없는 시점이었다. 이제 사무실에 복귀할 사람은 서둘러 움직여야 할 터였다. 발걸음을 떼기 전, 한 달간 이어 온 이 투쟁에 대한 소회와 못다 한 이야기들을 내놓았다. 힘겹게 이어내는 목소리마다 떨림이 묻어났다. 어느샌가 모두들 울음을 삼켜내고 있었다. 누군가는 흐느꼈고, 또 누군가는 흐느낌을 참아내며 뒤 돌아 눈물을 닦아냈다.


그간 아껴둔 고백과 눈물 머금은 긴 인사들을 주고받은 끝에, 마지막까지 천막에서 발을 옮겨내지 못 한 이들이 둘러앉았다. 서로를 향해 “미쳤어, 미쳤어” 하며 허허허 웃어댔지만 그 소리는 헛헛하게 울려왔다. 오늘로 7명이 사무실로 복귀했고, 이제 6명이 남았다. 15명으로 시작한 싸움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기까지 딱 한 달이 걸렸다. 6명으로는 과연 얼마를 더 버틸 수 있을까. 이제 6명이 해야 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우선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간만에 진수성찬으로 먹어볼까?!


진수성찬이라고 해봐야 짜장면에 탕수육이었지만, 어느새 테이블엔 고량주 두 병과 맥주 두병이 빈 병으로 놓였다. 아침부터 알콜로 공허를 달래던 중 전화가 울려댔다. 우리의 오늘을 알지 못할 다른 사업장의 노동자분들이 점심 연대투쟁을 기다리고 계셨다. ‘아뿔싸! 점심 선전전 할 시간이구나!’ 다시 또, 남은 이들이 이어가는 점심 선전전이 시작됐다.


다음 날,

전 날 그리 장고의 인사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낸 것이 무색하게 4명의 동료가 다시 또 천막으로 출근도장을 찍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도저히 천막에 남아있는 직원들, 해고된 동료들을 두고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 아니, 돌아가지 못하겠다는 것’


때로는 무장한 이성을 이겨내는 감정들이 존재했다.


6명으로 이어가기로 했던 싸움이 하루 만에 10명으로 늘어난 아침,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첫마디를 뱉어냈다.


미쳤어! 미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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