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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 Mar 23. 2020

쌤, 나는 가난에 굴복한 거예요

[나와 우리의 투쟁일기_11]

집을 잃어버린 아이 마냥, 마음의 동요도 몸의 움직임도 모든 것이 분주해졌다. 사실상 해고를 통지받은 동료들을 위해 시작된 싸움이 전원 해고로 귀결되기 직전이었다. 이미 우리는 한 달 하고도 보름째, 출근을 거부하고 매일 투쟁전선을 이어오고 있었고,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여전히 제 자리에 머물러있었다. 그 사이에 우리의 일터엔 해고된 동료들의 자리를 대신하는 새로운 이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고, 투쟁전선에서 먼저 발을 뗀 동료들이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는 새 우리의 채용 취소를 예고하는 채용 공고가 게시되었고, 모두가 실직자가 되기 일보직전이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점차 어려워졌다. 명확한 해고 통보를 받은 적이 없는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해고자가 되는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있었다. 이 시나리오가 어떻게 결론지어질지 예상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모두들 생활고에, 말라가는 마음에, 쌓여가는 피로에 바짝바짝 타들어 움츠려져만 갔다. 우리의 일터를 지키기 위해 시작한 그 마음이야 변함없었지만, 생활은 점차 누더기가 되어갔고, 그 무게는 점차 우리를 짓누르고 있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생활은 유지되어야 하는 지라 누군가는 새로운 일자리를 모색했고 그리 한 명 한 명 수가 줄어들 참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결단의 날이 다가왔다. 

지인, 지인의 지인, 또 누군가의 지인, 할 수 있는 모든 방법과 힘을 찾아 뛰었고, 겨우겨우 사측과의 논의 자리가 마련되었다. 그리 긴긴 회의 끝에, 사측은 채용 공고를 철회하였고 대신 투쟁에 나와있는 직원 전원은 당장 사무실로 복귀해야 했다. 오늘 오후 5시까지 사무실로 이동해야만 우리의 일터로 복귀할 수 있었고, 남아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렇게 우리의 투쟁이 종결되는 것이 맞는지 혼란스럽기는 매한가지였으나, 분명한 건 이렇게 일터를 다른 이들에게 허망히 빼앗길 수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나둘 서둘러 천막을 떠났다. 


저 이동에 합류해야 했다. 그런데 차마 이 천막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천막에는 해고된 동료 둘이 남아있었고, 발걸음을 옮기는 직원들의 뒷모습을 보는 것 외에는 무엇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빨리 걸음을 옮겨내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저들을 두고 이곳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앞으로의 날들을 생각할 겨를 없이, 오늘 당장, 지금 이 순간, 저들을 두고 이곳에서 일어날 수는 것이 지금의 내 모습이었다. 이성, 논리 따위는 진작에 모두 뒤엉켜버렸고, 머리를 휘감는 이 감정들을 제어하는 것이 더 버거운 일이었다. 기나긴 시름 끝에, 우리는 모두 함께 천막 문을 닫았다. 더 이상 돌아갈 곳을 잃은 동료들의 손에, 마지막까지 함께하던 동료의 손에 이끌려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 앞에 도착해서도 쉽사리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았다. 과연 무엇이 맞는 걸까, 그 어떠한 판단을 하더라도 후회는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처지였다. 어떠한 판단이 옳은 것인지가 아닌, 그 판단으로 인해 남은 후회 중 어떠한 것이 나를 덜 괴롭힐지 찾는 것이 필요했다. 허나, 지금만큼은 모두의 결정에 따라야 했다. 그 결정에서 이탈하는 것 또한 다른 동료들에게 상처가 될지 모른다는 자책이 앞섰다. 그렇게 계약서 작성이라는 행위를 통해 우리의 사무실 복귀가 정해졌고, 한 달 반 동안 이어온 투쟁 또한 자연스레 종료되었다. 


먼저 계약서에 서명을 한 후 기다리고 있는 직원들을 향해 가는 잠깐의 순간에도 이 결정이 옳은 것인지 밀려드는 의심에 온전히 걸음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몇 시간 만에 한 곳에 마주한 직원들은 이미 한 차례의 눈물바람을 마친 후였고, 부은 눈으로 술잔을 들이켜고 있었다. 


내 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동료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그만뒀다는 자괴감, 긴 싸움이 이리 끝이 났다는 허망함, 우리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음을 깨달은 패배감 모든 것이 엉켜 누군가는 크게 울었고, 또 누군가는 겨우내 울음을 참아가며 소리 없이 흐느꼈다. 성인 남자가 그렇게 큰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이 생경했고, 결국 이렇게 마무리된 우리의 처지 또한 생경하여 낯설었다. 그리 낯설고도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과 풍경에 눈물을 아껴냈다. 무엇보다 지금 울게 된다면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 같아 아직은 울지 말아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한 시간 만에 이미 거하게 취한 옆자리 동료가 말을 꺼냈다. 


쌤, 난 굴복했어요. 가난에 굴복한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뇌가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참아왔던 눈물과 억눌렀던 감정이 머리 끝까지 몰려들었다. '지지 않았다고, 굴복하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을 했고, 그만큼 우리는 단단해졌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서로를 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우리의 싸움을 에둘러 포장하고 싶지도, 오늘의 결정을 애써 합리화하고 싶지 않았다.  


종종 이 투쟁의 마지막을 상상해왔다. 그것이 아주 드라마틱하고 폼나진 않더라도 서로를 감싸 안으며 그간 걸어온 싸움의 길을 회상할 수 있길 바랬다. 하지만 막상 이것이 오늘이 되고 보니, 현실은 결코 드라마 같지도 폼나지도 않았다. 객관적으로 우리의 투쟁은 진 것이 사실이었다.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는 원점에 머물러있었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떤 결과가 되든, 지는 싸움으로 마무리짓고 싶지는 않았다. 그 무엇이라도 남길 수 있는 싸움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결국 우리는 무엇을 남긴 걸까. 


하지만 무엇이 되었든 간에 우리에겐 결단이 필요했고, 그 결단엔 용기가 동반되었다. 당장 눈에 드러나는 아주 큰 변화는 아니지만 그 용기들이 모여 이 투쟁이 시작되었고 또 종료되었다. 투쟁을 접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했고, 그것을 거부하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용기 중 오늘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용기는 사무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때로는 꼭 폼나고 멋들어진 것만이 아닌, 스스로를 숙여내고 현실을 직시하는 것도 큰 용기였다. 지금껏 우리가 지켜온 일터를 바로 돌아보고, 우리에게 닥친 현실을 명확하게 인지하는 것, 이것이 현재 우리에게 닿은 용기와 결단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투쟁은 끝이 났다. 


마디마디마다 흔들렸고, 힘겨웠고, 괴로웠으나
우리에게 내미는 손길들이 있기에,
또 '우리'였기에 아주 외롭지는 않았다. 

그렇게 주말이 지났고, 지친 몸과 마음을 돌볼 새도 없이 출근일이 돌아왔다. 


그리고 결국 나는 백수가 되었다.  
스스로와의 고된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기 위해 일터를 박차고 나왔고, 
그것이 내가 도달한 용기였고, 결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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