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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 May 29. 2019

상주가 된다는 것,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가족이라는 굴레, 세번째 기록]

부모의 죽음,

상주가 되었다는 겨를도 없이,

죽음을 정리하는 절차는 지체 없이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사람의 한 생을 정리하는데

그리 많은 절차와 결정들이 필요하다는 것은

처음 안 사실이자, 놀라운 일이었다.


(어른들은 이런 일들을 버텨내며 살아온 거였구나...

그리고 또 태연하게 일상을 살아낸 거였구나...)


모든 것이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든 이 절차에선 초짜 티를 내면 안 된다는 것 마냥,

수많은 질문과 재촉들이 쏟아졌다.


"빈소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아 안하신다구요.

그럼 바로 장례로 들어가시면 돼요.

이리 들어와서 이것 좀 보시겠어요.

먼저 수의는 oo종류가 있고 가격은 oo예요.

보통 이 정도 선에서 가장 많이들 하세요.

관은 나무에 따라 가격이 다른데 아무래도 너무 싼 거는 나무도 그렇고 사이즈도 그렇고.

여기 제일 저렴한 건 간혹 가다가 사이즈가 안 맞을 수도 있어요. 그럼 망자가 들어가시기에 쫌..

연화장은 시에서 하는 데가 훨씬 싼데 지금 순서가 좀 많이 밀려서 기다리셔야 해요.

여기는 바로는 되는데 사설이라 좀 비싸구요.

아 여기서 하시겠어요?

버스를 불러야는데 버스 대절비는 oo구요.

기사님 비용은 기사님한테 직접 챙겨주셔야 해요.

그리고 톨비는 따로 챙겨주셔야 하구요.

그럼 최종 결제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현금으로 할게요.
현금영수증은 되죠?"


"유골함을 고르셔야 하는데요.

이건 제일 저렴한 건데, 습기가 많이 차서 가루가 썩을 염려가 있어요.

이건 고급자기라 안에 이중으로 돼있고 겉에 보셔도 딱 다르죠.

이 정도 선에서 제일 많이 하세요. 이걸로 하시면 될 거예요.

화장비용은 카드결제 안돼요. 현금 주셔야 하구요.

기다리시는 동안 식사 좀 하실 시간 될 거예요.

식당은 이층에 있어요. 입구에서 식권 구입하셔서 드시면 돼요."


"기사님도 식사하셔야죠.
식권 사서 드릴게요. 기다리세요.
고생 많으셨어요. 이건 담뱃값 좀 넣은 거예요."  


"여긴 시민공원이라 시에서 관리하는 거라 이용료도 저렴한 편이에요.

15년마다 연장하는 방식이구요.

이용요금은 지로로 보내드릴 거예요.

오늘은 어떻게 결제하시겠어요?"


그리 이틀이 지났다.

그 흔한 빈소 조차 차리지 않았건만,

망자를 누이고 입히고 보내는 데에만 오백만 원가량의 돈이 들었다.

그만큼의 돈을 결제하고 이체한 후에야 한 생이 정리되었다.


그 날 저녁, 맥주를 연거푸 들이키며 생각했다.


'죽음의 마디마디마다 자본이 스며들어있구나.
사람을 보내는 일, 망자를 정리하는 고비고비마다 돈 냄새가 지독히 배어있구나.
이 망할 삶 속에서 가난한 죽음은 뜨거이 타보지도, 제대로 뿌려져 보지도 못하겠구나.
홀연히 육체 그대로 사라져 버리지도 못하는구나.묵중하게 굳어버린 몸과 쉬이 떠나지 못하는 영혼은 장사치들 사이에 떠밀려,
수의는 얼마 관은 얼마, 유골함은 얼마인지를 계산하며 삶과 죽음에 값을 메겨야 하는구나.
살아생전에도 그깟 돈 몇 푼에 지지리도 싸워대며 울어가며 헐뜯으며 생을 낭비했건만,
그러다 죽은지도 모른 채 쓸쓸히 죽었건만,
그리 죽어서도 또 돈돈돈이구나.
사람 하나 없는 마지막 길에 몸뚱아리 하나 챙겨 홀홀히 사라지는 것도 어려운 일이구나.'

그 푸념에 망자가 답하는 듯했다.

"끝까지 폐만 끼쳤지만,
지금이라도 이리 가는 것이,
내 마지막 부정(父情)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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