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우리의 투쟁일기_2]
2019년 12월 31일, 우리는 함께 일하던 동료였다.
2020년 1월 1일, 누군가는 새해 출근을 앞두었고, 누군가는 해고자가 되었다.
4년을 넘게 일해 온 누군가의 해고 사유는 하나였다.
‘우리를 위탁 운영하는 법인이 바뀌었다는 것’
우리는 중간지원조직 노동자이며, 민간위탁기관 노동자이다.
이 사태를 겪고 나니, 그간 우리를 정의해왔으며 아무런 의심 없이 사용해왔던 단어들이 우리를 끊임없이 옭아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스스로에 의해 정립된 것인지, 타자에 의해 규정된 것인지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하였다.
“중간지원조직”
아직까지도 그 정의가 정확히 무엇인지, 그것이 지향하는 바가 어디쯤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리 불리우는 곳에서 5년 간을 일해오며 이해한 바로는 우리는 행정영역과 민간영역을 잇는, 가교역할을 하는 기관이고 또한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벌어지고 보니, 중간지원조직은 행정의 영역과 민간의 영역, 그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 중간지대- 그 중간 어디쯤에 애매하게 걸쳐진 기관이었다. 그 누구도 우리의 온전한 동그라미가 아니라며 책임지지 않아도, 그 책임을 서로에게 떠밀어도 모두가 교묘하게 피해 갈 수 있는 중간 그 어디쯤에 위치한 지점이 바로 우리였다. 그것은 일종의 회색지대와도 같은 곳이었다.
“민간위탁기관”
민간위탁, 민간위탁, 우리를 가리키는 그 단어를 당연하도록 내리 사용해오며, 으레 민간위탁이란 행정이 수행하기 어려운 역할을 민간에 위임하고 자율성을 부여하여 그 역할을 다하도록 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는 또한 의미했다. 이 안에서 벌어지는 사태에 대해, 행정이 책임질 이유도 민간이 책임질 이유도 없다는 것이었다. 언제든 예고 없이 행정이 원할 때엔 사업장을 불시 검문할 수도 있고, 관련한 모든 자료를 요구할 수도 지시할 수도 있으며, 원하는 때에 언제든 점검을 할 수도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것이 바로 행정이었다. 그러한 행정이 이번 문제에 대해서는 인사권에 대한 민간의 자율성을 강조하며 5년을 일해온 직원들의 해고사태에 대해 방관하고 있었다.
분명히 그들이 직접 서명한 협약서에는 일하던 직원들을 계속하여 일할 수 있도록 ‘우선고용’해야 한다고 되어 있었으나, 그 문구는 노동자에게만 의미를 발할 뿐, 정작 사용자에게는 협약서의 많은 조항 중 한 줄의 문항일 뿐이었다. 그리 우리 기관의 운영을 두고 협약을 체결하고 직접 서명을 한 주체들이 아무런 책임도 지려하지 않은 채, 문제 해결에 대한 서로의 방기가 이어졌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각성하였고, 우리의 위치에 대해 자각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회색도 그 나름의 색을 지니고 있는지라, 회색이 안고 있는 본연의 색과, 중간을 점하고 있는 집합 속 교집합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다. 그렇게 한해의 마지막 날 별다른 이유 없이 해고된 동료를 위한 새로운 한 해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2020년 1월 1일, 우리는 더 이상 같은 처지에 놓인 노동자가 아니었다. 하루를 기점으로 우리의 신분은 서로 달라져있었다. 요구는 단 하나였다.
약속을 지켜달라.
약속한 대로 우리 모두 함께 일하게 해 달라.
이 요구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아니, 이러한 상황에서 으레 해야 하는 적절한 일을 탐색하고 빠르게 결정하는 행위 그 자체가 우리에게는 너무도 낯설고도 서투른 일이었다. 하지만 함께 일하던 이들이 계속하여 함께 일하고 싶다는 간절한 요구, 딱 그만큼의 바람을 담아 서투르지만 분주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새해의 시작일 누군가는 성명서를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고, 누군가는 강경한 요구를 꾹꾹 담아낸 푯말을 만들었다. 또 누군가는 집안의 아이들을 재운 후 밤늦게야, 사무실에 들어와 성명서와 푯말을 출력하고 사무실 곳곳에 붙여 내었다.
새해의 첫 출근일, 우리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이, 사무실에 모였다.
모두들 밤새 뜬 눈으로 지새운 듯 눈이 벌거 하였다. 그 누구도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하였고, 눈을 마주치지 못하였다. 막상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앞으로 우리 각자가 어떠한 상황에 놓이게 될지 그 무엇에 대해 어느 누구도 쉽사리 말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하루를 기점으로 달라진 우리의 처지에 대해 누구도 쉽사리 실감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계속하여 침묵할 수도 서로의 시선을 회피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9시경, 새로운 수탁법인의 대표와 관계자들이 사무실의 문을 두들겼고, 팽팽한 긴장감이 사무실을 감싸 메웠다. 그리고 양자가 마주한 첫 대면의 자리, 우리의 밤샌 긴장과 준비가 무색하게 회의는 매우 짧고 간결하게 종료되었다.
매우 간결하게 아무런 성과와 이해 없이
새삼 깨달았다. 가장 어려운 상대는 서로의 이해가 다르거나, 주장에 차이가 있거나, 생각의 다름이 있거나 한 것이 아니라 ‘논리가 없는’ 상대였다. 같이 일해온 직원들이 해고된 이 사안에 대해서 직원들과 논의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 그것이 새로운 수탁기관 법인 대표가 내세우는 유일하고도 명명백백한 단 하나의 입장이었다. 그 외에 어떠한 논리도 주장도 생각도 깊이도 그에 대한 방어도 존재하지 않았다.
논리가 상실된 순간 한가운데에 서있다는 것이 이리도 고통스러운지는 새삼 알게 된 사실이었다. 세상에 온갖 불의가 존재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은 티비 속, 모니터 속, 휴대폰 속에 담긴 누군가의 삶인 줄로만 알았지 우리가 맞닥뜨리게 될 삶의 순간이라고는 상상 조차 해보지 못하였다. 불과 며칠이 지났을 뿐인데, 돌아보니 그 불의는 어느새 이미 우리 곁에 성큼 도달하여 바로 옆에 닿아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살 수 있는 기회 조차 박탈당한 세월호의 아이들이, 야금야금 삶을 빼앗긴 삼성 백혈병 노동자가, 높은 곳에 매달려 목소리내던 한진 중공업 노동자가, 비리를 고발하고 생을 마감한 문중원 기수가, 웃옷을 벗어던지던 톨게이트 수납원 어머님들이, 이 모두가 결코 멀리 떨어져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세상은 점점 더 살기 좋아지는데 아니 그렇다고들 하는데 많은 삶들은 여전히 고되었고, 고달팠고, 궁지 속에 처해진 이들은 한치의 볕을 쬐지 못한 채 늘 궁지 속에 처해있었다. 심지어 궁지 속에 진입하는 이들은 점점 더 많아지고 폭넓어져 세상의 불의란 온갖 일상의 것이 된 듯만 같았다.
그간 수많은 정치적 사고, 사회적 사유, 철학적 때로는 종교적 신념, 이를 바탕으로 한 생활 속 실천을 이야기해왔으나, 막상 이것들이 현실이 되고 나니, 무엇이 사고이고 신념이고 실천인지 분간해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그리고 사고와 신념과 실천을 일치시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사고와 사유와 신념들이 계속하여 머리와 마음을 헤집고 입안을 옮겨 다니며 주장하였다.
일상의 문제들에 대해 침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사유를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게 어느덧 세상의 불의란 우리의 일상 속 에피소드가 되었다. 그리고 불의를 일상의 당연함으로 받아들이고 방치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보다 촘촘히 역할을 나누었다. 보도자료 작성, 현수막 제작, 피켓 문구 제작, 필요 물품 정리, 대외 홍보 및 미팅 등등, 각자가 가진 강점과 그간 일을 통해 서로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기꺼이 품을 나누었다.
그리고 1월 6일, 우리는 생애 첫 기자회견 자리에 나섰다.
눈발이 날리고 메서운 바람이 볼을 할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