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공감자가 될 수 있다
관계라는 것이 내 마음과 상대방 마음의 연결이라고 보면, 상대방의 존재에 시선을 맞춰 바라보는 것은 내 마음의 문을 여는 작업입니다.
그렇다면 상대방 쪽의 문을 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대가 나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줄 마음이 들도록 만들어 주면 됩니다. 그런 마음상태를 세팅하는 작업을 우리는 ‘공감’이라 부릅니다. 공감은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활짝 여는 열쇠입니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마크 고울스톤은 그의 저서 <뱀의 뇌에게 말을 걸지 마라>에서 “사람들이 당신의 말에 저항하다가 경청하게 되는 순간은 ‘당신이 그들에게’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당신에게’ 무엇을 말하게 만드느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느냐에 달려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책에서는 상대가 마음을 여는 순간을 바이 인(buy in)이라 명명하는데, 바이 인은 말하기를 통해서가 아니라 듣기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문을 열기 위해서는 말하지 말고 들으라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많이 듣고 잘 듣자’ 라는 조언이 통하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하고 싶은 말은 꾹 참고 지내면서 하기 싫은 말은 많이 듣고 사는 사람들이 이미 충분히 많은데, 그들에게 더 많이 들으라는 이야기는 잔소리로밖에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단지 귀를 열고 많이 들어주는 것을 공감이라 부를 순 없기 때문입니다. 영어로도 ‘hear’과 ‘listen’은 그 뜻이 다릅니다.
그렇다면 공감으로 듣는다는 건 무엇일까요?
올바른 공감의 기본 전제는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버스를 타고 창 밖을 보고 있더라도, 내가 보는 풍경과 옆 사람이 보는 풍경은 분명히 다릅니다.
우리는 각자의 의식 안에서 재구성된 세계를 보고 듣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 철학적인 논의를 할 의도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모두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전제를 토대로 보면 공감이 더 쉬워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널 이해해”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누군가를 완벽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어렵기 때문에, 기꺼이 타인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마음의 소리를 들으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면, 어떻게 해야 존재의 차원에서 소통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 봉착합니다.
오랜 세월 치유자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공감의 전모를 밝힌 정혜신 박사의 책 <당신이 옳다>에서, 그녀는 존재의 실체는 감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진짜 ‘나’라고 부를 수 있는 핵심은 내 감정이라는 뜻입니다. 존재를 만난다는 건 감정을 만난다는 뜻입니다.
“지금 무슨 생각해?” “이거 어떻게 생각해?”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파악하기 위한 대화엔 익숙합니다. 그러나 감정을 읽는 것은 생각을 읽는 것과 달라서, 주파수를 제대로 맞추고 질문을 해야 합니다.
<당신이 옳다>는 공감의 철학과 방법론을 모두 아우르고 있어서, 공감을 배우려 한다면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책에 따르면 감정을 만나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은 ‘네가 그럴 때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입니다. 상대방이 화가 났든, 서운해 하든, 슬퍼 하든, 말하기 싫어하든 모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진심으로 믿는 겁니다. ‘감정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래서 모든 감정은 옳다’라는 태도는 존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감정을 알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형태로 질문할 수 있습니다.
가령 “지금 어떤 마음이야? 마음이 어때?”라고 직접적으로 마음을 물을 수도 있습니다. 상대가 먼저 감정을(짜증나, 힘들어) 내비쳤을 때는 “어떻게 해서 그런 마음이 든거야? 언제부터 그랬어?”라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다. 충분히 그럴만 했네”와 같은 적절한 추임새를 쓸 수도 있습니다. 일명 ‘거울처럼 반영하기’ 라고 하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멘트 자체가 핵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상대의 마음을 궁금해하고 존재에 집중하려는 나의 태도가 온전히 전해진다면 아무 말도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를 정혜신 박사는 인지적 공감이라는 용어로 설명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책 본문의 몇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상황을 자세히 알지 못하면서 으레 던지는 '힘들었겠다'는 말은 사람 마음에 의미 있게 가닿지 않는다. 잘 모르면 우선 찬찬히 물어야 한다.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시작되는 과정이 공감이다.
자세히 알아야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어야 공감할 수 있다. ···정서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으로 나눈다면 그 비율이 2:8 정도로, 공감이란 것은 인지적 노력이 필수적인 일이다.
어떤 것을 묻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통이 아무 관심도 받지 못하고 방치되거나 외면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에게 집중하고 나의 마음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치유이기 때문이다.
공감은 똑같이 느끼는 상태가 아니라 상대가 가지는 감정이나 느낌이 그럴 수 있겠다고 기꺼이 수용되고 이해되는 상태다. 이해되는 만큼만 공감해 줄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도움이 되는 공감이다.
이는 기존의 공감에 대한 통념과 조금 다릅니다. 특히 정서적인 부분보다 인지적인 부분의 비중이 더 크다는 주장은 처음엔 생소했습니다.
우리는 관계에 필수적인 능력인 공감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공감을 학교에서 배울 수 있다면 어떨까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자주 언급되는 덴마크에서는 실제로 학교에서 공감능력 키우기(empathy building)라는 수업을 시행합니다.
이 수업에서 학생들은 감정이 그려진 감정카드를 보고 감정을 맞히고, 2인 1조로 짝을 지어서 서로의 고민을 듣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등의 활동을 합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록산느 셰프레비는 공감능력이 덴마크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만들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다행인 점은, 공감능력은 성인인 우리도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감을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사실은 희망적입니다.
알고 보면 나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타인의 마음에 관심을 줄 수 있는 조금의 여유, 그리고 그 마음을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인지능력만 있다면 누구나 공감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공감을 바탕으로 한 관계는 우리 삶을 단단히 받쳐줍니다.
마음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이 단 한명만 있어도 사람은 무너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