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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욱정 Dec 15. 2019

마음건강을 위한 관계법 - 지지하기 [2]

작은 노력으로도 삶은 괜찮아진다

지지하기는 방향성에 따라 밀어주기받쳐주기의 두 가지 형태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두 개의 방향성을 잘 이해한다면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한 지지를 보내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밀어주기 - "잘할 수 있다"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입니다.

존재 자체를 힘껏 밀어 줄 수도 있고, 생각이나 신념을 밀어 줄 수도 있고, 하고 있는 일을 밀어 줄 수도 있습니다.


핵심은 “지금 잘하고 있어. 앞으로 더 잘될 거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겁니다. SNS에서 게시물에 좋아요 버튼을 누르듯이, 누군가의 삶에도 좋아요 버튼을 눌러줄 수 있습니다.



학창 시절, '사회의 다원화'라는 개념을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다원화는 사회가 점차 다양해진다는 뜻입니다. 사람도 다양해지고, 직업도 다양해지고, 가치도 다양해지고, 삶의 방식도 다양해집니다.

이런 세상에는 답이 하나가 아닙니다. 답이 하나만 있으면 그 답만 따라가면 되는데, 답이 여러 개면 혼란에 빠집니다.


그때로부터 십수 년이 지난 오늘날, 사회는 더욱 '초 다원화'되었습니다. 확실한 답은 사라진 지 오래이고, 혼란이 디폴트(default) 값이 되었습니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주 흔들리고 불안해집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뭔가 하고는 있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건지 제자리를 빙빙 도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나조차도 나에 대해 확신이 없을 때, 우리는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지금 가는 길 계속 가도 된다고 누가 좀 말해줬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누가 살짝 밀어주기만 해도 자신감을 갖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 노트에만 머물던 메모들을 다듬어서 이렇게 글로 내보일 수 있었던 것도, ‘너의 생각은 가치 있다’고 저에게 용기를 주신 선생님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친구의 의미가 조금씩 변화하는 걸 느낍니다. 고등학생 시절, 친구는 함께 공부하고 입시 스트레스를 나누는 존재였습니다. 대학생 시절, 친구는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노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졸업 후에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하나둘 결혼을 하고 아이도 생기고 나니, 이제 친구는 한 번 만나서 밥 먹기도 쉽지 않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함께 공부하지 않고 함께 놀기도 어려워진, 친구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저는 친구는 서로의 삶을 응원해 주는 존재라 생각합니다. 하는 일이 다르고, 사는 동네도 다르고, 자주 만나지도 못하지만, 서로를 잘 알고 아끼기에 진심으로 응원하고 잘 되기를 바라는 존재.

짧은 시간을 알고 지냈더라도, 나를 지지해 준다면 그는 내 친구입니다.



"넌 있는 그대로 충분해"라는 말을, 우리는 몇 번이나 들으며 살까요.

어른이 되어 책임져야 할 일이 많아지면 칭찬보다는 지적에 익숙해집니다.

“괜찮아”라고 말해 주는 사람보다는 “잘해라”라고 말해 주는 사람이 더 많아집니다. 지금 지고 있는 무게만으로도 벅찬데 덜어 주는 사람은 없고 하나씩 더 얹어 주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내 곁의 소중한 사람에게 힘을 주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라고 마음을 담아 지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강하고 분명하게 밀어줘야 하는 상황에서는 “너는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야.”라는 말로 존재감을 확실하게 짚어 줄 수 있습니다. 가정, 학교, 직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수고를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작은 노고도 인정해 주는 습관을 가져봅시다. 관계가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누구나 애쓰며 삽니다. 세상에 수고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받쳐주기 - "못해도 괜찮다"



받쳐줌으로써 누군가를 지지할 수 있습니다. 넘어질 때를 대비해 등 뒤에 안전망(Safety Net)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매년 UN이 발표하는 세계 행복 보고서의 행복지수 산정 방식을 아시나요?


각 나라별로 사회적 안전망(큰 어려움이 처하면 도움을 청할 만한 누군가가 있는가), 자유(자신의 인생을 선택할 수 있는가), 관용 의식(자선단체에 기부를 하고 있는가), 주관적 부패지수(정부와 기업의 부패가 어느 정도인가)를 묻고, 이 응답들과 1인당 GDP, 기대수명을 점수로 환산해 총점을 내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행복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회 안전망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편에 속합니다.


정부가 압축적 근대화 과정 내내 유지한 기본 기조는 ‘선 성장, 후 분배’ 정책이었고 그 결과 복지와 교육, 의료, 부양 등 거의 모든 사회 문제를 가족에게 떠넘겼다.

내가 없으면 내 아이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불신은, 실제로 그러한 안전망이 결여된 데다 자녀를 키우고 가르치는 것이 순전히 부모의 능력과 자원에 의해 결정되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특징에서 기인한다.

 <김희경,  이상한 정상가족>


부모가 자녀의 목숨을 자기 손으로 거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른바 일가족 동반자살 사건은 해마다 발생하는데, 위는 그러한 일이 발생하는 사회적인 배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라고 부르곤 하는데, 벼랑 끝에 몰린 사람이 달리 무슨 선택지가 있었겠느냐는 지적도 일리가 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자신을 떠받쳐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자각은 깊은 절망감과 두려움을 안깁니다.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이 과연 스스로의 선택으로 뛰어내리는 건지, 절망에 떠밀리다 떨어져 버리는 건지 한 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설령 내가 넘어져도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받쳐줄 거라는 믿음은 마음을 뿌리까지 단단하게 만들어 줍니다. 사회 안전망이 그러한 역할을 해 주면 좋겠지만,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면 서로가 서로를 받쳐 지지해야 합니다.


핵심 메시지는 “넘어져도 괜찮아. 내가 뒤에 있어줄게”입니다.

늘 그 자리에 있어 준다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일회성 도움이 아니라, 언제든 돌아보면 그 자리에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



한 때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주었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이러한 ‘받쳐주기’의 모습이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인 박동훈과 이지안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날 뿐 아니라 직급도 다르고 살아온 배경도 다르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 진심으로 서로를 아끼고 보살핍니다.




"그놈이 또 못살게 굴면 그땐 바로 전화해. 그 동네에 네 전화 한 방에 달려올 인간 서른 명은 넘어. 백 명 오라고 하면 백 명도 와"



"죽고 싶은 와중에.. 죽지 마라.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다. 그렇게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숨이 쉬어져"


드라마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든든한 안전망이 되어 주며 힘겨운 시간을 버티고 살아냅니다.



“뭐 어려운 일은 없어?”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걱정 마, 내가 있으니까.”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 한 명만 있어도 사람은 살 수 있습니다. 많은 노력이 드는 일도 아닙니다. 짧은 말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받쳐 주기는 일방향의 연결인 것 같지만, 실은 양방향의 연결입니다.

가족을 마음으로 보살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수 있습니다.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을 지탱하는 것만큼, 받는 사람이 주는 사람을 지탱하고 있는 무게 또한 크다는 것을. 내가 누군가의 손을 잡아 주면, 그 손을 통해 나도 지지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받쳐 주어야 하는 이유는, 남을 살게 하는 동시에 나를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어른>에 의하면, 인간이 어떨 때 행복할까에 관해서는 심리학자마다 관점이 조금씩 다르지만 인간이 가장 싫어하는 것에 관해서는 한 목소리를 낸다고 합니다. 바로 '불안'을 제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불안한 상태에서 괴롭거나 고통받거나 슬퍼하면 그 물리적 크기가 수십 배 이상 커질 수 있다고 합니다.



지지하기는 불안을 치유할 수 있는 쉽고 확실한 방법입니다.


밀어주기는 잘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줍니다.

자존감의 한 축인 자기 효능감이 힘을 받고, 나는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받쳐주기는 못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줍니다.

자기 안전감이 확보되고 내가 무엇을 하든 큰일 나지 않을 거라는 안도감을 얻습니다.


밀어주기와 받쳐주기를 모두 받는 사람에겐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왠지 잘 될 것만 같은 느낌이 솟아올라서 의욕이 나고, 설령 잘 안되더라도 괜찮을 걸 알기에 걱정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의 마음이 건강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너’ 편을 마치며



‘관계’라는 주제를 한의학적 진단법인 망문문절(望聞問切)을 활용하여 여러 측면으로 살펴보았습니다. 바라보고(望), 공감하고(聞), 소통하고(問), 그리고 의사의 손으로 환자의 몸을 접촉해서 진찰하는 절진(切診)에서 힌트를 얻은 지지하기(切)까지.



캐나다의 신경외과 의사인 와일더 펜필드(Wilder G. Penfield) 대뇌와 여러 신체 부위의 상관관계를 밝히고 각 신체 부위가 대뇌에서 차지하는 영역의 비율에 따라 인간의 몸을 모형화한 모듈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호문쿨루스(Homunculus)'라고 합니다.


펜필드의 호문쿨루스 모형


부위의 크기가 곧 대뇌에서 차지하는 영역의 크기를 의미합니다.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대뇌의 가장 넓은 영역에 걸쳐 있는 부위는 이고, 그다음은 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느끼기 위해 손을 잡고 입을 맞추는 이유는 우리 뇌가 본능적으로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아끼고 위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그저 손을 한 번 잡아 주면 어떨지요.


한 번의 접촉이 백 마디 말보다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지도 모릅니다.


결국 우리가 전하려는 건 따뜻함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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