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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욱정 Jan 20. 2020

0. 다시 만난 영어, 그리고...

두 개의 영혼 프로젝트의 의미

영어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2013년, 공중보건의로 발령받고 3년의 시골 생활이 시작됐다.

나는 3년 동안 이루고 싶은 일들을 노트에 쭉 적어보았고 중요도를 매겨 표시했다.


영어는 별표 하나짜리였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었다.

내 삶에 영어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고 영어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많았다.




그로부터 3년 후.

공중보건의 근무가 끝났고 나는 짐을 싸서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영어를 배우러.


뜬금없는 행보였을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고등학교 시절 내게 영어는 시험과목이었다.

주어진 시간은 70분. 문항은 50개.

이 50문제를 잘 풀어 높은 점수를 받으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에는 영어권에서 살다 온 친구들이 많았다. 원어민 영어선생님과 아무 불편함 없이 대화하는 친구들이 부럽기는 했지만, 유창한 영어실력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모의고사만 잘 보면 만사 오케이였다.


매 학기마다 있었던 영어회화 시험에서는 하위권을 맴돌았지만, 다행히 수능시험에서는 만점을 받았다.


나름 해피엔딩인 셈이었다.

그렇게 좋은 기억으로 영어와 이별했다.



대학을 다니면서는 영어를 쓸 일이 거의 없었다.

한동안 멀리했던 영어를 20대 후반에 접어들어 다시 만났다.


공중보건의 시절 어떻게 해서 영어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뚜렷한 계기는 없었던 것 같다.

아마 시간이 많아서 자기 계발의 일환으로 EBS 라디오를 듣던 게 발단이지 않았나 싶다.



오랜만에 다시 마주한 영어는 내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시험의 압박에서 벗어나 영어를 바라보니 이제껏 보지 못했던 모습들이 보였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영어를 할 줄 알면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영어를 붙들고 씨름을 하기 시작했다.

아픈 사람이 몸에 좋다는 것을 다 먹어보려 하듯,

좋다는 영어 공부법을 찾아다니며 이것저것 시도해 보았다.


삼 년이 흘렀고, 공중보건의 생활도 마무리되었다.


꾸준히 연마해 온 나의 영어를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과 예전부터 막연히 꿈꿔왔던 외쿡 생활의 낭만이 결합하여, 캐나다 어학연수라는 매듭을 지었다.



캐나다에서의 여름은 길고도 짧았다.

다양한 경험을 하는 와중에 소중한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언제까지나 영어를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야 할 때였다.

한의원에서 일을 시작하며 자연스레 영어는 가장자리로 밀려났다.



그 후 또 몇 년이 지났다.

2020년, 다시 영어를 붙들기로 결심했다.

목표는 애매한 영어실력을 벗어나는 것.


여러 해 동안 영어를 공부해오며

언어는 중간이라는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언어든 애매한 실력을 유지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그래서 위로든 아래로든 결론을 내기로 했다.

올해 말이면 아주 잘하게 되든, 아예 놓아버리든

결말이 날 것이다.





영어를 공부하며 느낀 점, 발견한 것들을 정리해 글로 써보려 한다.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기록의 의미

나의 여정을 기록해 두고 싶다. 훗날 되돌아보았을 때 꽤 중대한 한걸음이 될지도 모를 지금의 과정을 잘 정리해 남겨두고 싶다. 원하는 지점에 이를 수도 있고, 그러지 못해 낙담할 수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배움들은 남을 것이다. 때문에 결과에 상관없이 성장의 기록이 될 것이다. 물론 성장과 동시에 성공의 기록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나눔의 의미

한국에는 나처럼 영어를 붙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영어 선생님도 아니고 여전히 영어와 씨름하는 학습자 중 한 명이지만, 오히려 그런 점에서 나의 기록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영어를 공부하며 겪는 어려움들이 공통된 부분이 많다. 앞으로 이야기할 내용이 정답이라 할 순 없다. 다만 영어와 오랜 시간을 지지고 볶고 하며 깨달은 관점이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길 바랄 뿐이다.



영어를 공부하는 동안 늘 가슴에 새기고 싶은 말이 있다.

책을 읽다가 발견했는데 언어에 대한 격언 중 가장 좋아하는 말이 되었다.


"두 개의 언어를 안다는 것은 두 개의 영혼을 갖는 것과 같다"


프랑스의 샤를마뉴 대제가 한 말이라고 한다.

이 한 문장에 영어를 배우는 목적, 영어를 배웠을 때의 이점, 영어를 공부하는 방법이 모두 녹아있다.


그래서 이름을 두 개의 영혼 프로젝트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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