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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워킹맘 손엠마 Jul 16. 2019

애둘맘의 24시간 자유시간 보내는 법

갑자기 주어진 휴가에 대하여 ㅡ

우리 부부는 마지막으로 싸운 기억이… 작년 5월쯤 둘째를 임신했을 때였을 정도로 잘 싸우지 않는다. 하지만 한번 싸우면 우주의 기운을 모아 번쩍번쩍 스파이크를 내며 피 튀기게 싸운다. 물론 상대방 앞에서 말로하진 않고 대부분 문자로 싸운다. (둘 다 A형이기 때문일까) 그래야 나의 생각을 최대한 이성적이고 논리 정연하게 정리할 수 있고, 남편의 생각을 요리조리 반박하는 데서 희열을 느낄 수 있으니까 (남편도 이런 생각으로 말로 싸우지 않고 문자로 싸우는 것 같다.....참 잘 맞는 커플이네............)


저번 주말이 올해 처음 싸운 날이었다. 토요일은 내가 주최하는 첫 글쓰기 모임이 있었고, 난 이 모임을 만들고, 준비하고, 실행하기까지 많은 에너지를 쏟았기에 살짝 텐션이 업되어 있었고, 다소 예민 했었을지도 모르겠다. 수업 준비를 위해 남편의 칼퇴를 그렇게 바랬건만, 무심한 하늘은 4일 내내 회식과 금요일 10시 퇴근을 안겨 주셨다. 그러니 내가 진노할 수 밖에


문자로 '다다다다다다다다' 써내려가고 저녁에 들어갈테니 알아서 애 둘을 보라는 최후의 통첩을 날렸는데, 오후 5시쯤 되니 시댁에서 아이들과 자고 갈 테니, 오늘 하루쯤은 온전히 편안하게 쉬라는 남편의 문자가 왔다. 처음에는 '그래서 결국 간다는 곳이, 결국 비빌 언덕이 시댁인거야? 그럼 그렇지.' 하며 콧방귀를 꼈지만, 이내 얼굴에 살짝 웃음이 올라오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이 말인 즉슨, 나에게 24시간의 자유가 주어졌다는 것이 아닌가.!!




일단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 데이트 약속을 잡고 원래 계획되어 있던 강의를 들으러 갔다. 그리고 엄마와 저녁을 먹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미뤄두었던 '영화감상' 미션이 떠올랐다. 자유시간이 주어지면 하고 싶었던 것 1순위! 밥을 잽싸게 마시고, 영화관으로 올라갔는데 보고 싶었던 영화 '기생충'은 시즌이 거의 막바지인지라 밤 12시가 상영시간이었다. 애둘맘에게 밤 12시란 하루의 체력이 모두 방전하여 이미 떡실신해 잠들어 있는, 누가 업어가도 모르는, 남편이 들어와도 눈을 뜰 수 없는 (안 뜨는게 아니라 못 뜨는 것이다..)시간이 아닌가. 이 날은 아침 7시에 일어나 집에서 나왔기 때문에 밤 12시 영화를 맨정신으로 졸지 않고 볼 자신이 없었다. 


결국, 간단히 아이쇼핑만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한 일은? 수업 내용을 정리하고, 오늘 들었던 강의 후기를 블로그에 포스팅하는 것이었다. 12시 영화는 졸 것 같다며 보지 않아놓고, 블로그 포스팅을 새벽 1시까지 졸린 눈을 비벼가며 영혼을 다해 썼다. 정보 공유용 글쓰기란 것이 참 묘한 것이, 분명 나와 이웃을 맺은 또는 해당 정보를 검색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쓰기 시작한 것이지만, 쓰다 보면 온전한 내 글이 되어 결국에는 내가 그 글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된다. 그래서 서평도, 강의 후기도 더 열심히 정성껏 쓰게 되는 것 같다.  이 날 밤은 블로그 포스팅을 하는 범생이다운 행동으로 마무리했으니, 다음날 오전은 좀 불량스럽게 놀아보자고 다짐하며 떡실신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아이들이 없으니, 아침에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운동과 아침독서였다. 개인적으로 아침에 독서를 하는 것이 집중이 잘 되는지라, 운동이 끝나면 바로 카페에 가서 아이스 라떼와 함께 독서하는 것을 좋아한다. 1시간 열심히 땀 흘려 걷고, 인근 카페로 가서 2시간 가량 초집중해서 책을 읽었다. 아, 이 얼마나 한량같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란 말인가. 평소 같으면 '유치원 하원시간', '친정엄마와의 귀가 약속시간'에 쫓겨 조금이라도 책을 더 읽으려, 조금이라도 글을 더 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을 테지만, 오늘은 시계따위는 슬렁슬렁 봐도 되는, 진정한 한량이 된 것 같았다. 아, 굉장히 행.복.하.군


그래도 아이들이 오려면 아직 3시간 가량이 남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최후의 발악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없을 때 할 수 있는 것'을 떠올리니, 정말 유감스럽게도 '창틀 청소'가 생각났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건 아이들이 없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이사올 때, 입주 청소를 하지 못했더니 창틀에 먼지가 세상 가득했었는데 그것이 항상 마음의 짐이었는데 하필 그게 지금,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떠오른 것이다. 먼지가 많이 날릴 것 같아, 애들이 없을 때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그렇게 2시간 영혼을 바쳐 집안을 대청소하기 시작했고, 청소가 끝나지 않은 시점에 아이들이 돌아왔다. 아, 이렇게 나의 자유도 끝이 났구나 싶었지만, 오랫만에(?) 보니, 더 예쁜 내 아이들이었다. 


나태주 시인의 작품을 조금 빌려 표현하자면,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가 아니라 '오랫만에 보아야 사랑스럽다'의 느낌이랄까


창틀 청소 전과 후, 실화냐.....


돌이켜보니, 나의 자유시간의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또 언젠가 '남편찬스'로 자유시간이 주어졌을 때, 하고 싶었던 일들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다. '아이들이 없을 때 하고 싶은 것'보다는 '그냥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하는게 좀 더 큰 효용을 줄 것 같기 때문이다. 이 글의 메인 사진을 보고 들어온 구독자라면 죄송하게도 24시간이 주어졌을 때, 내가 했던 것들은 '여행'이 아니게 되어 죄송하다. 제주도 한달살기가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 탓인지 여행보다는 '일상'속에서 혼자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싶었다.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가 아닌 그냥 '나'의 목소리가 시키는 일들로 말이다. (근데 창틀 청소는 누구의 목소리지?)


결론적으로 남편, 다음에도 자유시간 또 달라는 얘기야. (feat.고마워, 사랑해) 




'손엠마의 워킹맘 이야기'가 더 궁금하신 분들은 블로그로 놀러오세요.▼

https://blog.naver.com/emmawit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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