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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워킹맘 손엠마 Jul 22. 2019

엄마가 글을 쓰면 한가한 건가요?

'엄마'의 시간에 대하여 ㅡ

나는 그냥 온전한 내 목소리로 된 글을 쓰고 싶었다.


육아휴직 9개월차, 주말 부부 7개월 차의 경력이면 그동안 소비되지 못한 말들과 감정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 모든 걸 묵혀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 난 그냥 내 이야기를 쓰고 싶었을 뿐이다. 내 감정에 조금 더 솔직해지고, 내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고,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는 것은 아이와의 시간을 조금 줄여야 하는 일이었지만, 결론적으로는 그게 나와 내 가족이 함께 행복해지는 길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가지 에피소드에서 엄마가 글을 쓴다는 것이, 혹은 책을 읽거나 자유시간을 가진다는 것이 엄마의 엄청난 이기심처럼 치부되는 분위기를 경험했다. '그 자리에서 당당하게 얘기하지 못하고 여기에 글을 쓰면 무슨 소용이냐' 하겠지만, 이렇게 글로 써놔야 다음에 같은 상황을 접하면 '비교적' 당황하지 않고 웃으며 얘기할 수 있고, 굳이 대꾸하지 않더라도 나의 생각을 굳힐 수 있기 때문에 안 쓸 이유가 없었다.




Episode 01.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시어머님께서는 '너는 네 인생을 살아, 꼭 잘 됐으면 좋겠다'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그리고 내심 책을 출간하지도 않았는데 며느리 자랑이 하고 싶으셨는지, 내 또래 비슷한 아이엄마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우리 며느리가 책을 낸다고 이렇게 (블로그를 보여주며) 글을 쓰고 있더라구, 호호"

"어머, 애가 둘인데 아직 한가하네 ~~ 호호호"


Episode 02.

육아휴직 중, 오랫만에 만난 동료들과의 대화였다.

"잘 지내고 있어? 이제 복직 얼마 안 남았네~~"

"응. 애가 둘이라 엄청 정신없긴 하지. 그래도 아침 10시부터 2시까지 도서관 가서 책도 보고, 글도 써서 숨통은 틔여."

"아니, 그럼 애가 눈 떠있는 시간 중에 1/3을 나가있는 거야? 그러다 분리불안 오면 어쩌려고"




굉장히 이상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명함(엄마, 딸, 아내, 회사원, 사람) 중에 '아내'가 글을 쓴다거나, '회사원'이 글을 쓰면 '아, 글 쓰시는 걸 좋아하시나보네요.' 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데, '엄마' 명함만 들어가면 나의 글쓰기 작업은 '한가한 것'으로 저평가되었다. 도대체 왜.그.럴.까


이는 '엄마의 시간'에 대한 대중(적어도 내가 겪은)의 이해가 부족한 탓인 것 같다. 시대가 많이 좋아져서 맞벌이 비율(2018년 기준 46.5%)도 올라가고, 이에 따라 가사도 예전보다는 많이 분담되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육아에는 역시나 엄마의 손길이 많이 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육아휴직 기간, 또는 하루의 모든 시간을 아이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은연 중에 뉘앙스를 풍기는 것이다.


100명의 엄마가 있으면 100명의 모성애가 있다. 나의 모성애는 '아이와 같이 보내는 시간에는 최선을 다해 놀아주고, 나만의 시간에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한다'는 철학이 있다. 모성애는 어떤 절대적인 진리나 법칙이 아니고, 개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가치관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모성애가 맞다고, 혹은 자신이 겪어왔던 모성애가 더 좋다고 남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많은 엄마들이 자신만의 모성애를 드러내지 못하고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모습을 많이 봐왔고, 나 또한 첫째를 키우던 시절만 해도 그랬다. 적어도 나는 '좋은' 엄마는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추상적이고, 범위도 애매모호하여 그 단어를 쓰는 사람 마음대로 해석이 가능하다. 아이가 떼쓸 때, 혼내지 않으면 좋은 엄마인가? 24시간 아이 옆에서 하루종일 놀아주면 좋은 엄마인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좋은' 엄마라는 단어는 얼마든지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며, 그렇기에 누구든 자신만의 '좋은' 엄마 기준을 만들수도 있는 것이다. 


아이와 떨어져 있는 4시간, 물론 짧지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나는 이 시간을 통해 하루를 되돌아보고, 누구의 아내 또는 누구의 엄마도 아닌 30대 중반의 여자사람으로써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 나가야 할 길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한다. 이 시간이 없다면 둘째를 낳고 한없이 추락했던 내 자존감을 끌어올리는데 꽤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많은 시간을 소비했을 것 같다. 글쓰기는 그래서 나에게 생존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은연 중에 드러내는, 무의식에 깔려있는 '좋은 엄마'의 기준을 남에게 무턱대고 들이대지 않고, 온전히 자신만의 가치관으로 만들어낸 아름다운 모성애를 자유롭게 존중받을 수 있는 날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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