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장소와 색다른 경험을 통해 결국은 나를 찾아가는 게 여행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도여행은 그러한 면에서 나에게는 최적의 여행지였다. 여행지 선정에서 부터 여행을 하는 동안의 변화와 융합 그리고 여행 후의 미묘한 편린들이 헤집고 다니며 바꿔놓은 일상까지 인도는 나에게 나로서 살아도 괜찮다고, 그것에 대한 끝없는 의심에서 벗어나 이제 안심해도 된다고 이야기하는 곳이었다.
No Problem
나만 그런 건지 모르지만 인도에 있으면서 인도인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다. 비행기가 몇 시간씩 늦을 때도 태연한 그들의 태도에 나 또한 그 시간을 어떻게 하면 재밌게 보낼수 있을까 생각하는것이 효과적이겠다 싶어 마음을 비워냈다. 심지어 여행을 간 그때에 마을에 홍수가 나서 집의 세간살이가 쓸려가고 농사지은 것들이 엉망이 되어 보는 나도 참담할 때에도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정확한 그들의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그러함에는 이유가 있음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아닐는지 추측해 본다. 때때로 홍수가 난 마을에서 찍은 빨래사진을 들여다보며 그때의 분위기를 떠올려 본다. 그리고 투정하기보다는 빨래를 하기로 선택하자고 혼잣말을 한다.
*표지에 걸려있는 빨래 사진이 그때의 사진입니다
Hari om
늘 곁에 있어서 잘 모르는 것들이 있는데, 인도에서 재발견한 하리옴이었다. 요가노래를 틀다보면 곧잘 나오는 만트라라 그냥저냥 넘겼는데 유난히 귀에 꽂혔다. 그리고 찾아본 의미는 모든 상처를 치유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었다. hari는 자신을 속박하는 것들을 제거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를 속박하고 괴로워하며 고의 둘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그날 내게 들려온 hari om은 자유에 나를 놓아주는 신호로 들렸다.
lila 우주/신의 유희/춤!
정신과학을 공부하다 보면 깨달음에 대한 얘기가 빠지지 않고 나오는데 내겐 꽤나 엄숙한 목표 같아서 어쩐지 입고 싶지 않은 옷 같았다. 오히려 너무 젊은 나이에 깨달으면 삶이 너무 심심해지지 않을까? 싶은 공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수련을 하는 이들의 삶을 보자면 물론 샤트바(밝고 가볍고 건강한)적인 요소들이 좋아 보이기도 했지만 재밌어 보이진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책을 보다 눈에 들어온 lila, 우주의 춤이라니! 내겐 훨씬 자유롭고 아름답고 풍요롭고 인간적이었다. 우리의 에고를 건강하게 쓸 수 있구나 싶었고, 그러면서도 영적이고 인간미가 풍기는 단어였다. 물론 제대로 된 이해가 부족한 탓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 닿는 어감은 이쪽이 훨씬 좋았다. 그러다 인도여행중에 한 연극을 보았는데 막이 오르고 연극이 시작되는 게 아니라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화장을 하고 소품을 가져다 놓고 연습을 하는 모습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닌가. 물어보니 그들에게는 무대에 오르기 위한 준비과정과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정리하는 모습들도 연극에 모두 포함된 것이라 했다. 놀라웠다. 완벽하게 짜인 한편이 아니라 전체의 과정을 포함하는 그들의 자연스러움이 마치 삶이라는 놀이판 위에서 펼쳐지는 우리들의 모습 같았다. 누군가의 아이로 태어나서 학생이 되기도 하고 백수였다가 워커홀릭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를 찐하게 사랑하는 로맨티스가 되기도 했다가 누군가의 배우자가 되기도 부모가 되기도 하는 우리의 역할들이 배우들과 다르지 않다고 여겨졌다. 심각했던 삶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았다.
namaste
내 안의 신성이 당신 안의 신성에게 인사합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사실 요가를 하기 전 나는 그런 게 어딨어! ㅎㅎㅎ라고 했다. 그리고 심지어 정신에너지에 대해 인정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단순히 정신을 의지 정도로 번역하고 살았다. 그러다 매트 위에서 하루 이틀 16년을 살면서, 내 안의 신성이 당신 안의 신성에게 인사합니다.라고 서투르게 읆었던 이 작은 만트라이자 인사말로부터 시작된 모든 삶의 영감들이 나를 나로서 살게 해주었구나 싶어졌다. 우리의 신성은 우리가 가장 행복하고 잘살길 바란다. 그리고 이 모든 신성들은 연결되어 있기에 진심으로 하나 된 스스로를 그리고 우리임을 당연히 여긴다. 인도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namaste가 인사말이라는 것이었다. 문맥에 안 맞는 생뚱맞은 얘기지만 인도여행에 용기를 낼 수 있게 해 준 건 가이드 덕분이라는 이야기를 해두고 싶다. 그리고 그녀는 가이드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진정으로 신성한 요기였음을 이 글을 쓰면서야 아하! 하고 생각했다. 아망고님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아망고님이라고 검색하시면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인도여행 후의 나는 어땠냐면, 여행 후 보름정도를 거의 잠만 잤고, 충분히 잤다 싶었을 때 요가원의 한 면을 부수고 통창을 내며 하늘과 노을을 십여 년 만에 마주하며 수련을 했고, 코로나가 터지자 이때다 싶어 요가원을 철거하고 작고 아름답고 다정한 요가원을 아주 만족스럽게 운영하다 신랑을 만나 서울로 이사를 와서 아기를 키우고 있다. 인도 후의 나는 swasthya 자신이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되려 그렇지 못할 때가 불행했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마지막으로 좋은 말은 한번 더
Swasth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