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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칼럼] "이름만 바꾸면 바로 당신인데"

by 길엽

호라티우스가 건네는 2천 년의 경고


"뭘 웃나, 이름만 바꾸면 바로 당신인데."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가 『풍자시집』에 남긴 이 한 줄은,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뺨을 따끔하게 때린다. 누군가의 험담에 맞장구치며 히죽거리는 순간, 우리는 이 경고를 떠올려야 한다. 지금 당신이 비웃는 그 사람의 결점이, 어쩌면 당신 자신의 초상화일 수 있다는 것을.



험담의 심리학: 왜 우리는 남의 흉을 보는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도 칭찬보다는 비난, 격려보다는 험담이 훨씬 더 많다. "그 사람 말이야, 정말 이기적이더라" "요즘 누구 봤어? 완전 거만해졌던데" 이런 이야기가 오가면 분위기는묘하게 달아오른다. 마치 공통의 적을 발견한 듯, 사람들은 서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마디씩 거든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하향 비교'라고 부른다. 자신보다 못한 사람, 혹은 문제가 있는 사람을 찾아 비교함으로써 자존감을 회복하려는 무의식적 방어기제다. 내가 직접 뛰어나지 않아도, 타인을 깎아내림으로써 상대적으로 나를 높일 수 있다는 착각. 그러나 호라티우스는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착각인지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열등감의 가면: 히죽거리는 자들의 초상


험담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대개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다. 내면 깊은 곳에 열등감과 자격지심을 품고 있다. 자신의 부족함을 직면하기 두려워, 타인의 결점을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며 안도감을 얻으려 한다.


"저 사람은 학벌은 좋은데 인성이 별로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어쩌면 자신의 학벌 콤플렉스를 감추려는 것일 수 있다. "요즘 누구 완전 잘난 척하더라"고 수군대는 사람은,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는 데 대한 분노를 투사하는 것일 수 있다. 우리는 타인을 비난하는 말 속에서, 실은 자신의 아픈 상처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호라티우스가 지적한 것은 바로 이 아이러니다. 누워서 침을 뱉는 자들은, 그 침이 결국 자신의 얼굴로 떨어진다는 것을 모른다. 오늘 당신이 비웃는 그 사람의 자리에, 내일은 당신이 앉아 있을 수 있다. 이름만 바꾸면, 그 이야기는 당신의 이야기가 된다.


거울 앞에 선 용기


몇 년 전, 한 직장 동료가 있었다. 그는 회식 자리만 되면 다른 팀원들의 업무 태도를 비판하곤 했다. "A는 맨날 지각하고" "B는 일 처리가 엉망이고" 처음에는 사람들이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 동료 자신이 사람들의 험담거리가 된 것이다. "그 친구도 사실 별로 성실하지 않던데" "남 욕할 처지인가?"


이것이 호라티우스가 경고한 바로 그 순간이다. 타인을 비난하는 그 기준이, 언젠가는 자신을 향해 돌아온다. 우리가 던진 돌은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깨닫게 된다. 내가 그토록 혹독하게 비판했던 그 결점이, 사실은 나에게도 있었다는 것을.


진정한 용기는 거울 앞에 서는 것이다. 타인의 결점을 지적하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 "저 사람의 저런 모습이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가 뭘까?" "혹시 나도 비슷한 면이 있지 않을까?" 이렇게 자문할 때, 우리는 비로소 호라티우스의 일침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공감의 시작: 이름을 바꾸는 연습


심리학에서 '역지사지'라는 개념이 있다. 상대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 그런데 호라티우스는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제안을 한다. "이름을 바꿔보라." 당신이 비난하는 그 이야기에서, 주인공의 이름을 당신의 이름으로 바꿔보라는 것이다.


"철수는 약속 시간을 잘 안 지켜" → "나는 약속 시간을 잘 안 지켜" "영희는 너무 자기중심적이야" → "나는 너무 자기중심적이야"


이름을 바꾸는 순간, 이야기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진다. 타인에 대한 비난이 자기반성이 되고, 험담이 성찰로 변한다. 그리고 우리는 깨닫는다. 내가 타인에게서 발견한 그 결점이, 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보편적인 약점이었다는 것을.


이것이 바로 공감의 시작이다. 타인의 실수를 비웃는 대신, "나도 그럴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성숙한 인간이 된다. 호라티우스의 경고는 단순한 도덕적 훈계가 아니다. 그것은 공감과 연대를 향한 초대장이다.


정신을 차리라는 일침


"정신 차려라." 호라티우스가 히죽거리는 자들에게 던진 말이다. 이것은 잔인한 비난이 아니라, 차라리 따뜻한 충고에 가깝다. 깨어나라는 것. 무지에서 벗어나라는 것. 당신이 비웃는 그 순간, 당신도 누군가의 비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는 진실을 직시하라는 것.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타인의 실수를 보며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과, 타인의 실수를 보며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 전자는 평생 남을 깎아내리며 살아가지만, 결국 자신도 같은 운명을 맞이한다. 후자는 타인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그로부터 성장한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험담의 자리에서 히죽거리는 사람인가, 아니면 침묵하며 자신을 성찰하는 사람인가? 호라티우스는 2천 년 전에 이미 답을 제시했다. 누워서 침 뱉지 말라고. 이름만 바꾸면 그것은 당신의 이야기라고.


오늘,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


다음에 누군가의 험담이 시작될 때, 한 번쯤 멈춰 서보자. 맞장구를 치기 전에, 호라티우스의 말을 떠올려보자. "뭘 웃나, 이름만 바꾸면 바로 당신인데." 그리고 조용히 물어보자. "저 사람이 나였다면?" "내 이름이 저기 들어간다면?"


이 작은 질문 하나가, 당신을 히죽거리는 무리로부터 구해낼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다. 타인의 실수를 비난의 재료로 쓰는 대신, 자기 성찰의 거울로 삼는 사람. 그것이 바로 호라티우스가 바랐던, 정신을 차린 사람의 모습이다.


2천 년의 시간을 건너온 이 한 줄의 경고는, 오늘도 여전히 유효하다. 당신이 비웃는 그 이야기에, 당신의 이름을 넣어보라. 그것이 낯설지 않다면, 바로 지금이 변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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