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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어 Aug 19. 2021

비폭력 대화 연습하기

Masahll B. Rosenberg 박사

 안기철은 보도 위에 아이처럼 누워 있었다. 나이가 마흔도 넘은 놈이 다리를 아기처럼 구부리고 누워 햇볕이 뜨거운지, 수건으로 얼굴을 덮고 있었다. 처음 신고가 들어왔을 때 지구대 동료들 모두가 안기철일 거라 예상했다. 낮에 술도 취하지 않고 길바닥에 누워 있을 놈은 그놈밖에 없을 거라며 저마다 한 마디씩 보탰다. 그때 출동하면서 함께 순찰차를 타는 후배에게 말했다.

“유치장에 집어넣게 채증 잘해!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 해!”

 요사이 그로 인한 신고가 잦았다. 112에 전화를 걸어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끊는다거나 동네 이곳저곳에서 사람들과 말이 통하지 않아 생기는 마찰로 신고가 들어오게끔 하는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 매번 어김없이 상식을 깨는 안기철이었다. 한 동료는 그를 만나는 경찰관마다 따끔하게 한마디 하는 사람은 없고 살살 달래 버릇하니까 자기 행동에 재미가 들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를 비난하는 말들을 등 뒤에 남기고 사무실을 나서며 오늘 그 따끔한 한마디를 하리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현장에 그는 이미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신고자에 따르면 길 위에 누워 있다가 지나가던 택시 기사와 몇 마디 다투다가 어딘가로 갔다고 했다. 운 좋은 놈이라며 다시 전의를 불태우던 중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신고가 들어왔다. 처음 신고됐던 곳에서 좀 떨어진 곳이었다. 이번엔 놓치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급하게 순찰차를 그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막상 누워 있는 그를 대했을 때는 그의 얼굴이 너무 천진난만해 약간 난처한 생각이 들었다. 지구대 신고 리스트에 여러 번 올라 있었지만, 실제 얼굴을 마주한 건 처음이었고 지적장애 3급, 나이 40세, 인근 아파트에 거주한다는 정보도 이미 갖고 있었다. 처음과 달리 인도에 누워 있어 이번엔 교통에 방해가 되진 않는 상황이었다. 오가는 사람에게 방해가 되긴 하겠지만 결정적으로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체포하기엔 애매한 상황이었다. 갑자기 전의를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기철씨! 왜 여기 누워 있는 거야?”

 “버스 기사가 욕하고 때리려고 했어.”

 일단 길에 누워 있는 이유를 점잖게 물었는데 엉뚱한 대답이 나왔다. 정상적인 대화를 기대한 것도 아니면서 기분은 별로였다. 그러니까 그로서는 동문서답을 한 건데 일종 관점의 전환 시도 같은 거였다. 3급 지적장애라고 보기엔 지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스 기사가 욕하고 때리려고 그랬구나? 그래서 기분이 어땠어?”

 “짜증 났지….”

 자기를 공감해 준다고 생각했는지 대답이 곧장 나왔다. 얼른 *비폭력 대화로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이 지적장애 3급에게 밀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자꾸 길에 누워 말썽을 일으키는 그의 심산이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기철 씨가 이렇게 길에 누워 있어 마음이 아프다.”

 “......”

 이어진 말이 자신의 예상과 다르다고 생각하는지 그는 잠깐 멈칫하는 거 같았다. 재빠르게 다시 한번 그렇게 누워 있는 이유가 뭔지 물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자는 심산이었다. 

“기철씨! 여기 길에 이렇게 누워 있는 이유가 뭐야?”

“너무 더워서 힘들잖아”

 이번에도 너무 쉽게 대답이 나왔다. 그런데 그 대답에 일체 주저함이 없었다. 그 순간, 그 당당한 대답에 마치 뒤통수를 한 대 맞는 기분이 들었다. 길을 가다 덥고 힘든데 거기에 누워 있지 못할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눕든 앉든 당연히 쉬어야 마땅한 일 아닌가? 더욱이 그곳이 교통에 방해도 없는 한적한 인도라면 아무도 불편할 일도 없지 않은가?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112신고 한 사람은 누워 있는 사람의 건강이 걱정된다고 했고 출동한 우리는 동네의 평온한 질서를 어지럽히는 그의 행동이 못마땅했다. 어쩌면 신고한 사람도 그의 안위보단 깨끗한 동네에 그런 모습이 보이는 게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119가 아닌 112에 신고한 것을 보면 말이다. 

 비폭력 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 개념을 창시한 마셜 로젠버그(Marshal Rosenberg) 박사에 따르면 우리는 무언가 금지 규범을 어겼을 때, 수치스러움을 느끼거나 그 행위자를 비난하는 방식으로 교육받아왔는데, 이는 권력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그 사회가 유지되도록 만들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금지 규범이라는 것이 싹트는데 문명 초기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영웅 서사가 바로 그 금지 규범을 내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동한다고 로젠버그 박사는 말한다. 따라서 막연히 당연하다고 여기는 규범을 한풀 걷어내고 그런 행동이나 말 뒤에 어떤 욕구가 있었던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면 비폭력 대화가 가능하다고 한다. 나아가 상호 이로움을 주고받으며 공존하고자 하는 인간 본성에 충실할 수 있으며 이는 곧 조화로운 사회로 이르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 비폭력 대화를 실천하겠다던 나는 박사의 메시지는 까맣게 잊고 우리만의 평온을 깨뜨린, 그 존엄해 마땅한 질서를 어지럽힌 안기철을 평가, 비난하는 마음 한가득 안고 현장으로 달려갔던 것이다. 그가 어떤 욕구 때문에 길 위에 누워 쉬고 있는지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말이다. 그런 경찰의 무지를 지적장애 3급인 그가 한방에 일깨웠다.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린 뒤 그에게 나의 욕구를 다시 표현했다.

 “..... 그런데 기철씨가 여기 누워 있으니까 나는 슬프네?”

 “..... 그럼 더운데 어떻게 해?”

 나의 욕구를 확인한 그는 잠시 말문이 막히는 듯했지만 이내 다시 자신의 감정으로 답변했다. 

 “아니~ 여기 누워 있다고 뭐라고 하는 건 아니고 내 감정이 그렇다는 걸 말하는 거야”

 “... 아. 이제 집에 가야겠다.”

  그동안 그가 이런저런 말썽을 피울 때마다 장애가 있는 그를 원칙대로 처리할 수 없는 노릇이라 살살 달래서 집에 보내곤 했고 그럴 때마다 그를 어르고 달래느라 꽤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됐다고 동료들이 말했던 것이 그때 기억났다. 하지만 그날은 단 두 마디를 그와 나눴을 뿐이다. 첫 번째, 그가 변명으로 말했던 버스 기사의 행동 때문에 어떤 기분이었는지 그의 감정을 물어봤고 두 번째, 그가 어떤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길 위에 누워 있었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그의 행동으로 인한 나의 감정을 표시했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내가 무의식적으로 그에게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금지 규범을 강요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감정이 공감받았다고 생각했는지, 슬프다는 나의 감정에 대해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는 듯 수동적으로나마 존중하는 거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그렇게 쉽사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때까지 출동한 경찰관들이 아무리 어르고 또는 무섭게 협박을 해도 자기주장을 좀처럼 굽히지 않았던 그다. 

“기철씨! 집에 갈 거면 순찰차로 태워다 줄게”

“아니야 걸어갈 수 있어. 나 혼자 걸어갈 거야”

 태워주겠다는 제의를 뿌리치고 안기철은 굳이 걸어서 돌아갔다. 조금 전 더위에 힘들어서 길에서라도 좀 누워 쉬어야겠다는‘땡깡’은 더 보이지 않았다.

 보통 다른 현장에서 비폭력 대화를 한답시고 사람들에게 어떤 욕구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는지 또는 상대의 행동으로 인해 어떤 감정이 들었던 것인지를 물으면 경찰이 별걸 다 물어본다는 표정으로 눈만 끔뻑거리며 말문이 막히기 일쑤다. 사람들은 좀처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몰랐고 자기 행동의 원인이 된 욕구를 말하기보단 상대를 평가, 비난하기에 바빴다. 그와 달리 안기철은 자신의 감정에 대해 천진난만하게 너무도 잘 표현해 주었다. 그리고 상대인 경찰의 감정도 존중해 주는 것 같았다. 지적장애 3급의 그가 로젠버그 박사가 말했던 ‘상호 이로움을 주고받으며 공존하고 싶어 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에 더 가까운 건 아닌지 진지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비폭력 대화(NVC, Nonviolent communication)

 미국의 마샬 로젠버그(Marshall B. Rosenberg 임상심리학) 박사가 중재와 의사소통 방법을 가르치며 처음 시작한 교육. 현재 국제비폭력대화센터(CNVC)가 설립돼 전 세계 교육자, 군인, 교정당국, 경찰, 성직자 등을 상대로 NVC를 가르치며 그 실천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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