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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다 Sep 06. 2021

굿바이 마케팅 400일 차, 새 직장의 세번째 월급날

나는 더 이상 내 직업을 혐오하지 않는다

    문득 얼마 전 디데이 카운팅 어플을 봤더니 작년에 마케터 때려친 이후로 400일, 보다폰으로 이직한지는 어느덧 90일이 지났더라.. 이직을 할 때면 내 마음속의 적응기간 마지노선은 세 번째 월급을 받는 날로 정해두곤 했었는데 지금까지 큰 사고 안치고 무사히 세 번째 페이 슬립도 받았다. 지금까지 마케터로서 일했을 때의 나에게 회사생활이란 밥벌이에 불과한 일일 뿐이었어서 일로서 재미를 찾는다는 게 도시 전설 속에나 존재하는 일인 줄 알았다. 그치만 개발자로 커리어를 바꾸고 나서는 새로운 것을 배워간다는 기쁨과 이제야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는 만족감에 매일매일이 행복하다.


Progression Board 점검하기

총 5개의 평가 분야 아래에 세부적인 태스크들이 정의되어 있다. 자세한 항목까지 공개하면 안 될 것 같아 가림..

    내일 라인 매니저와 면담을 하기로 되어있어서 주말 동안 Progression Board를 뜯어보면서 내가 잘 해온 부분들과 보완이 필요한 부분들에 대해 돌아보았다. 저번 면담에서 매니저가 미드레벨 보드를 목표로 삼아서 업무를 해나가면 좋겠다고 조언해줬어서 미드레벨에 해당하는 항목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는데, Communication, Deliverables 열에 있는 항목들은 어느 정도 다 커버가 가능한 걸 보니 그동안 동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면서 나에게 할당된 업무를 정확하게 딜리버리 하는 능력치는 꽤 쌓인 것 같다. 스토리 티켓이 나한테 토스되면 누구한테 연락해서 일을 처리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됐고, 처음엔 암호문 같이만 들렸던 Refinement 세션도 이제는 대강 이 정도 요구사항이면 스코어가 어느 정도겠다는 각이 잡히기 시작해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주로 프로그래밍 스킬을 평가하는 Core mastery와 Tool 분야는 아직 절반 정도의 항목들은 경험해보지 못했다고 표시할 수밖에 없다는 게 아쉬운데, 주로 HTML/CSS, 크로스 브라우징, 웹 접근성과 같은 우리 팀에서 다루지 않는 영역의 항목들이라 어쩔 수가 없다. 그 대신 타입 스크립트 활용, MobX를 이용한 상태 관리, 클래스 버전 리액트, Jest와 Cypress를 이용한 테스팅에 대한 이해도는 많이 높아진 것 같다. 그 덕분에 그전에는 손대기조차 무서웠던 결제 관련 페이지의 코드들도 이제는 과감하게 뜯어보고 리팩토링할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데이터 핸들링을 처리하는 코어 패키지를 업데이트하는 일들을 담당하면서 커스텀 라이브러리를 빌딩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배웠다. 예전에 구글에서 일하시는 UX 엔지니어님이 프로젝트할 때마다 라이브러리를 커스텀해서 만드신다고 했을 때 와 쩐다;; 싶었는데 나도 언젠가 내가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빌딩해야 하는 일을 하게 된다면 눈앞에 던져진 디자인을 구현하는데만 급급해하지 말고 어떻게 효율적인 라이브러리를 구성해서 개발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지를 먼저 고민할 것 같다.

    전반적으로 아쉬운 점을 돌아보자면 이제 겨우 내가 1인분의 개발자로서 주어진 할 일을 하게 되었을 뿐, 넓은 관점으로 프로젝트를 바라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CI/CD 프로세스를 최적화해서 배포 사이클을 더 빠르게 개선한다거나, 웹팩을 경량화해서 로딩 속도를 줄인다거나, 비개발 부서들의 요구사항들을 분석해서 해결책을 구상하는 등 거시적인 레벨의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은 아직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내가 개 쩌는 천재도 아니고 고작 3개월 만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언젠가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재빨리 손을 들고 내가 하겠다고 뛰어들 수 있도록 미리미리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요새 몇 달간 데이터 분석팀과 개발팀이 함께 협업해서 Adobe Analytics를 웹사이트에 설치하는 작업을 하는 중인데 이를 위해서 분석 툴을 위한 라이브러리를 따로 만들었다. 지금껏 나는 분석 툴을 설치해달라고 하는 사람이었지 직접 설치를 해본적이 없었어서 개발 조직 단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항상 궁금했었는데, 만약에 내가 좀 더 역량이 갖춰진 시니어였다면 그 업무에 합류해볼 수도 있었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달라진 나의 삶의 태도

    작년에 마케터를 그만두고 개발자로 전향하기로 결심했을 때 모닝 저널 확언으로 가장 많이 적었던 나의 다짐은 '나의 직업을 혐오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였다.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나의 직업에 대해 스스로 하찮다고 여기는 것은 자존감에 엄청난 상처를 주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확언을 적은 지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내 직업이 정말 의미 있고 값진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일이라 믿고 그 일을 해내는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얼마 전 아침 스탠드업 미팅에서 최근 홈페이지 업데이트 후 상승한 전환율과 추가 수익에 대한 정보를 공유받았는데, 이젠 남의 돈과 플랫폼에 의지해 일하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든 제품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수백만명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개발자로 전향한 후 오른 연봉보다도 훨씬 값진 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믿음이다. 세상은 앞으로도 빠르게 변하겠지만 그 사실이 나를 더 이상 불안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나는 무엇이든 새로운 지식을 배울 수 있고 앞으로도 배움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면 어떤 문제를 마주하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 모두 코딩을 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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