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운전과 다른 점들
한국으로 휴가 다녀온 이후로 최대한 운전 감을 잃지 않도록 영국에서도 꾸준히 운전연습을 하고 있다. 제주도에서 한번도 사고 안 내고 무사히 잘 여행했으니까 이젠 운전에 좀 자신감이 생겼다고 생각했지만 영국에서 또 완전 다른 환경에서 운전을 하자니 운전실력이 다시 초기화된 것 같다..ㅠㅠ 특히 다음과 같은 이유들로 인해 영국에서의 운전은 정말 어렵다..
영국에서의 운전 방향은 좌측통행
익히 알려진 대로 영국은 한국과는 반대로 좌측통행으로 차들이 움직인다. 사실 직선 도로를 달릴 땐 이 방향이 헷갈릴 일이 잘 없지만 큰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해야 하는 상황에 내가 맨 앞줄에서 운전을 하게 될 때는 갑자기 순간적으로 오른쪽 차선으로 들어서려고 할 뻔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ㄷㄷ 한번은 엘리펀트 캐슬이라는 아주 혼잡하기로 악명 높은 회전 교차로가 있는 동네에서 운전강사가 말리지 않았다면 크게 역주행 할 뻔 했다ㅠㅠ 그래도 도로 상황을 잘 살피면서 운전하면 사실 방향이 반대인 건 금방 적응이 된다.
비보호 좌회전이 없어요
대부분의 도로 규칙은 사실 한국과 크게 다른 점이 없는데, 좌회전할 때에도 무조건 신호를 받아서 좌회전을 해야 한다는 점은 확실히 다르다. 한국에서는 별도의 신호를 받지 않고도 보행자가 없거나 횡단보도가 보행신호가 아니면 우회전을 할 수 있으니 영국에서도 얼핏 좌회전은 그냥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가 신호 무시하고 그냥 지나칠 뻔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참고로 영국의 신호 위반 벌금은 £100(약 16만원)이다^^......
보행자 우선 신호
운전하다 보면 도로에 지그재그 선이 그어져 있고 양쪽으로 동그란 노란 가로등이 반짝이고 있는 횡단보도를 자주 만나게 된다. 이건 Pedastrian crossing이라고 하기도 하고 Zebra crossing이라고도 하는데, 보행자가 우선으로 길을 건널 수 있도록 운전자는 무조건 멈춰야 한다. 가끔은 횡단보도에 있는 초록색 신호가 깜빡이는 주황색 신호로 변하기도 하는데, 이럴 땐 일반 신호가 Pedastrian crossing으로 전환되었다는 의미라서 건널목에 사람이 없다면 그냥 지나가도 된다.
회전교차로는 개미지옥
한국도 이제는 회전교차로가 많아지는 추세인 것 같은데, 겪어본 바로는 대부분 한 눈에 들어오는 작은 크기여서 출구를 찾는 게 크게 어렵지 않았었다. 하지만 영국은 가는 곳곳마다 회전교차로가 정말 많은데다 크기도 커서 내비게이션을 정확히 보지 않으면 어느 출구로 나가야 하는지 엄청 헷갈린다. 그래서 그냥 어떨 때는 회전교차로에서 한 번에 나오길 포기하고 몇 바퀴 돌다 나오는 게 마음 편할 수도 있다.
그리고 몇 가지 암묵적인 룰이 있는데 반드시 회전교차로 진입 시에는 속도를 줄여 내부에서 운전 중인 차에게 먼저 순서를 양보해야 하고, 진입할 때는 오른쪽 깜빡이, 빠져나갈 때는 왼쪽 깜빡이를 켜서 차가 어디로 움직이려고 하는지 다른 운전자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내가 금방 회전교차로를 빠져나갈 것이라면 바깥 차로에서 돌면 되고, 빠져나가야 할 출구가 멀리에 있다면 안쪽 차선에서 돌아야 한다.
런던 시내는 전체가 스쿨존과 같다
최근에 한국에 스쿨존 관련 규제들이 생기면서 어린이 보호구역에서는 무조건 시속 30km 이하로 천천히 달려야 해서 운전할 때 엄청 불편했었다. (한국의 아이들아 안전하고 행복해야 해..^_ㅠ) 그치만 런던 시내 1존 안은 거의 다 제한 속도가 시속 20마일 (=대략 시속 32km)이고 빨라야 30마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런던 시내는 왕복 2차선 도로일때도 많고 일방 통행만 가능한 엄청 좁은 1차선 도로도 많다. 게다가 영국에선 자전거도 전용 도로가 따로 없는 경우에는 차들과 함께 차선에서 달리고, 보행자들은 신호가 따로 없이도 아무데서나 길을 건넌다. (참고로 영국에서는 보행자가 본인의 안전이 담보되었다고 판단했다면 무단횡단을 하더라도 불법이 아니다.) 즉, 차와 자전거 보행자가 마구 뒤엉켜있는 도로 상황에서 차가 빨리 달렸다간 사고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말.. 다행인 점이라면 계속 느리게 달리고 있으므로 20마일로 운전을 하더라도 한국에서처럼 시속 60으로 달리다 갑자기 30으로 속도를 줄여 달리는 것만큼 체감 상 답답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런던 시내 안은 청정구역
런던 거리를 걷다 보면 빨간색 동그라미 안에 하얀 C가 쓰여있거나, 초록색 표지판에 ULEZ라고 쓰인 표지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C라고 쓰여진 표지판은 혼잡세(Congestion Charge)가 부과되는 구역인데 평일 아침 7시 오후 6시, 주말 오후 12시부터 6시, 그리고 공휴일에 이 지역으로 들어오는 차들은 하루에 £15를 내야 한다. 그리고 ULEZ(Ultra Low Emission Zone)는 시내 중심에 오염 배출이 많은 차량 진입을 제한하는 제도로, 오염 배출량이 많은 차량이 해당 구역에 진입하려면 혼잡세에 더하여 £12.5의 추가적인 통행료를 내야 한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런던 안에서는 웬만하면 차 끌고 다니지 말고 대중교통 타고 다니라는 소리^_ㅠ
고속도로에서는 추월차로를 꼭 지키자
사실 법으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닌데 고속도로에서는 암묵적인 추월차로 규칙이 정해져 있고, 다들 웬만해선 지키는 편이다. 고속도로에 진입하면 보통 3차선이고, 가운데는 속도 제한에 맞춰서 정속 주행을 하는 차로, 왼쪽은 정속 주행보다 느리게 주행하는 차로(보통 화물트럭 같은 대형 차들이 여기를 이용한다.), 오른쪽은 정속보다 빠르게 달려 다른 차들을 추월하고 싶을 때 사용한다. 추월차로에서 정속으로 달리고 있으면 뒤에 따라오는 차들이 굉장히 싫어하니 눈치껏 올바른 차선을 선택하는 게 좋다.
영국 국도의 제한 속도
런던을 벗어나면 위와 같은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걸 종종 볼 수 있는데, 이건 National Speed Limit 구간이라는 의미이다. National Speed Limit 구간의 왕복 2차선에서는 시속 60마일(약 시속 96km), 왕복 4차선에서는 시속 70마일(약 시속 120km)이 제한속도이다. 보통 영국의 시골 국도는 매우 좁은 2차선 도로인데 거기서 시속 60마일로 달리려면 꽤 무섭다 ㄷㄷ
영국의 차는 대부분 수동차
이 부분이 사실 가장 놀라운 점인데.. 자율주행차가 강변북로도 타는 이 시대에 영국의 많은 운전자들은 아직도 수동차를 고집한다. (=그게 바로 내 남편) 고집의 이유는 운전의 참맛은 수동차에서만 느낄 수 있다느니, 원하는 대로 빨리빨리 기어를 바꾸려면 아직 수동차만 한 옵션이 없다 뭐 이런 주장인데... 90년대 이후로 수동차를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21세기에도 아직도 수동차를 고집하는 게 처음엔 이해가 안 갔었다ㅋㅋㅋ 다시 운전연수받기 시작했었을 땐 클러치 컨트롤이 익숙하지 않아서 계속 시동 꺼먹고 고단에서 저단기어 바꿀 땐 변속 충격 와서 운전하면서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그래도 수동차 운전에 익숙해 지니까 이제는 시동 꺼지는 일도 거의 없어졌고 기어 바꿀 때 레브 매칭 착착 해서 스무스하게 차가 움직일 때는 내가 차를 완전히 컨트롤하고 있다는 짜릿함도 느껴져서 이래서 사람들이 수동차 모는 걸 좋아하는구나 조금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얼른 운전 더 익숙해져서 혼자 드라이브 가는 멋진 으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