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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다 Sep 01. 2022

인생 첫 승진 회고

영국 대기업에서 승진하기

    9월 1일 자로 Mid-level Software Engineer로 진급하게 되었습니다! 입사 1년이 되기 전에 진급하고 싶어서 올해 초부터 매니저한테 엄청 어필하기 시작했는데 승진 심사 완료까지 무려 8개월이 걸리는 바람에 결국 입사한지 1년 3개월 만에 공식 타이틀에서 Junior 를 뗄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서 광고회사 도비였을 시절엔 대리로 진급하기 전에 영국으로 넘어오느라 퇴사를 했고, 영국에 와서 처음 일했던 한국 회사 유럽지사는 승진하기도 전에 망해버려서(ㅠㅠ) 커리어를 시작한 지 7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회사에서 승진이란 걸 해보았다. 지루하게 오래 기다렸던지라 승진 발표가 나면 엄청 기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마음은 덤덤하고 오히려 좀 무서워졌다. 지금까진 주니어였으니까 사람들이 나에 대한  기대치가 별로 없었을 텐데, 이젠 미드레벨이니 해야 할 일의 기대치가 올라간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부담이 된다 ㄷㄷ

    한국 회사와 영국 회사에서의 승진 프로세스 중 가장 다른 점은 누군가가 때 되면 승진을 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승진시켜달라고 자발적으로 지원을 해야 했다는 점이다. 딱히 승진 시기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서 매니저의 재량으로 팀원이 승진할 만한 역량을 갖추었다고 판단하면 엔지니어링 헤드와 논의 후 HR 팀에 추천서를 보낸다. 그리고 HR 팀에서 추천서를 검토하고 추천 대상자가 적절하다 판단하면 그때 공식적으로 승진 여부가 결정된다. 매니저가 저번 달에 이미 추천서를 보냈는데 한 달이 넘어가도록 회신이 없기에 HR팀에서 추천을 거절할까봐 좀 걱정했었는데 팀 내부의 논의를 이미 거쳐 추천서가 넘어온 마당에 HR 선에서 추천을 거절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냥 다음 달까지도 기다려야 하는가 보다 하고 마음을 비우고 있었는데 어제 갑자기 매니저가 좋은 소식이 있다면서 미드레벨 엔지니어로서 어떻게 처우가 조정될 것인지에 대한 상세 사항이 담긴 승진 승인 레터를 공유해 주었다.

이렇게 공식적인 문서로 승진을 통보받기는 또 처음이라 신기했다ㄷㄷ

    보다폰은 각 직급별로 어떤 수준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가 정의된 Progression Board가 있고, 각 항목별로 내가 이 업무를 실제로 수행했음을 증빙할 수 있는 PR, 커뮤니케이션 기록 등등을 꼼꼼하게 첨부해야 승진 심사 대상자로 추천받을 수 있다. 매 달마다 하는 매니저와의 1-2-1 미팅에서 이 보드를 기준으로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매니저한테 특별히 관련 업무를 할 수 있도록 배정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승진 심사를 준비했다. 이 회사의 미드레벨 엔지니어의 평가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Communication : 얼마나 미팅에서 엔지니어 및 다른 직군의 동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지, 코드 리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지, PR을 만들 때 적절한 설명을 덧붙여 구현 사항을 전달하는지를 평가하는 항목

2. Deliverables : 기능 정의 - 구현 - 프로덕션 배포에 이른 모든 과정을 정확하게 수행할 수 있는지, 유관 부서들과 적절하게 협의하여 기한 내에 기능을 완성하는지를 평가하는 항목

3. Core Mastery : 전반적인 프론트엔드 관련 기술들을 능숙하게 다루는 지를 평가하는 항목. 다음과 같은 기술들이 세부 평가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


- Typescript

- Testing (Unit test, Snapshot test)

- React, State management

- CSS Processor

- Pacakge management 

- 웹 접근성 개선 및 반응형 웹 구현 경험

- 네트워크 트래픽, HTTP 요청에 대한 이해

- 보안 이슈를 핸들링했던 경험 


4. Tools : 개발의 생산성을 높이는 신규 툴을 도입해 본 적이 있는지를 평가한다. 예를 들어 페이지 빌드 속도를 개선하는 툴을 도입했다거나, 테스팅을 자동화하는 툴을 도입한 경우가 이 항목에 포함되어있다.

5. Influence : 신규 입사자의 온보딩을 도와주거나 멘토링에 참여해 동료들의 성장을 도왔는지, 프레젠테이션 혹은 문서화를 통한 신규 기술 관련 지식 공유 등 팀 내에서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항목


    사실 2, 3번은 어느 정도 작년부터 이미 다 채워놓은 상태였어서 올해 초에 매니저한테 승진대상자로 고려해달라고 요청했었다. 근데 아직 신규 툴을 도입한다거나 주도적으로 개발 생산성을 개선했던 경험이 부족했고, 엔지니어링 헤드로부터 아직 커뮤니케이션이나 영향력 측면에서도 좀 더 보완해야 되겠다고 피드백을 받아서 한번 승진이 보류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올해는 적극적으로 테크니컬 티켓이 있으면 발 벗고 나서서 제일 먼저 주워 들어 노드 서버 관련 보안 이슈도 해결하고, 웹팩 대신 Vite를 도입해 페이지 빌드 속도도 개선하고, 프론트엔드 코드에서도 Feature flag 기능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암암리에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테스트 환경 별 프로젝트 빌드 방법이라던가 프로덕션 배포 방법, CI/CD 에러 디버깅하는 방법 등 문서화가 필요한 부분이 보일 때마다 꼼꼼하게 위키도 업데이트했고 온보딩도 무려 네 명이나 해줬다.(심지어 온보딩 대상은 나보다 훨씬 경험 많은 시니어들이었음;;) 그리고 스프린트 끝날 때마다 신규로 런칭한 프로덕트를 소개하는 전사 미팅에서 프레젠테이션도 담당해서 부족했던 영향력 부분을 채우려고 노력했다. 

    그리하여 장장 8개월간의 승진을 위한 여정이 드디어 결실을 맺어 내일부터는 공식적으로 미드레벨 엔지니어가 된다!!! 사실 올해 상반기 동안 승진 과정이 지지부진했던지라 내가 정말 잘해나가고 있는 걸까 수도 없이 회의감이 들어 괴로운 순간들도 많았다. 그렇지만 힘이 빠질 때마다 적어도 이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고 있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더 잘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이니 감사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여기까지 왔다. 고작 한 번의 작은 승진일 뿐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에겐 뒤늦게나마 시작했던 도전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성취의 순간이라 이번만큼은 마음껏 기뻐하고 싶다. 앞으로 또다시 힘 빠지는 순간이 찾아올 때, 이 순간의 성취감을 자양분 삼아 앞으로도 나에게 친절하려 노력하며 적어도 어제보다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자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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