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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Park Jun 30. 2024

7. 너는 왜 조종사가 되고싶니?

지난번 글은 잠깐 외전으로 빠졌지만, 다시 교관시리즈로 돌아왔다.  아 맞다 나는 이제 더이상 교관이 아니지.  어찌된거냐 하면 나는 무사히 교관생활을 마치고 입사에 필요한 비행시간을 모두 채운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게 작년 7월이었으니까 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 그동안은 참 바빴다…기보다는 쫄리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여기서 잠깐 또 삼천포로 빠져서 이번 항공사 입사전형을 한번 나열해보겠다.

일단 귀국해서 면장전환을 해야했고, 이게 10월. 공채가 열리길 기다렸고, 이게 1월. 그리고 이제 서류접수 끝내고 첫번째 기다림의 시간. 1차 서류전형에 합격하셨습니다 와아. 그리고 이제 2차 필기시험을 위한 폐관수련. 이게 2월. 무사히 잘 치르고 두번째 기다림의 시간. 이게 3월. 2차 필기전형에 합격하셨습니다 우와. 자 이제 시뮬레이터 시험과 극악의 신체검사를 위한 3차전형. 이게 4월이었나? 아닌가? 벌써 가물가물하네. 아무튼 이제는 시뮬레이터 탑승 폐관수련과 몸짱이 아니라 몸꽝만 되지 않기 위한 식단조절과 운동의 시간. 선배님들이 건강관리 해라~ 그렇게 말해줬는데도 피자를 우적우적 먹으면서 네네 하고 흘려들었던 나를 반성하며 참 힘들었던 기간을 거치고 아무튼 시뮬레이터 시험 당일. 내 솜씨를 제대로 보여줄 시간이군! 하며 영종도에 도착해 스킬 하나도 못맞춘 이즈리얼처럼 하얗게 불태웠고, best는 아니었지만 worst도 아니었잖아 하면서 그 추운 겨울바람을 맞고 귀가. 신체검사에서 정말 이런저런 일도 많았고 애태우는 사건도 있었지만, 3차 전형에 합격하셨습니다 메일을 받고 이제 마지막 4차 최종면접 준비. 이게 5월. 그리고 최종면접을 위해 혹시나 들어올 지식관련 질문 대비 지식공부 다시 또 다 하면서 준비하고 여차저차 최종면접까지 무사히 종료. 그리고 또 발표를 기다림. 뭐, 결국은 최종합격을 통보받고 입사날짜를 기다리는 나날이다. 아이고 현직에 계신 분들이 이 글을 보면 얼마나 하찮고 귀여울까. 좋게 봐주십쇼 기장님 헤헤.



아무튼 지난 글에서도 남겼듯이 학생들에 관한 글을 써보려고 한다. 내가 근무했던 비행학교는 크게 두 팀으로 나누어서 교관배정을 했는데 Domestic 팀, 그리고 Asia 팀이었다. 말이 저런거고 도메스틱은 그냥 서양인들, 아시아는 일본80% 나머지 아시아인들을 묶어놓은 팀이다. 내가 입사하고 얼마 있지 않아 저런 구분은 ‘공식적으로는’ 사라지긴 했는데 뭐 그래도 배정받는 학생은 딱 팀별로 나뉘어지긴 했다. 나는 처음에 도메스틱 팀으로 들어갔고 이전 글에도 썼듯이 이탈리아인, 미국인 학생, 미국인 아저씨 등을 주로 배정받았다. 하지만 나는 교관이 되었다고 해서 학생일때와 다른 행동이 아니라 매일매일을 학교에 나가서 공부를 하곤 했다. 일본어도 할줄 알고 그래서인지 학생들이 나에게 많이 물어보러 왔고 나는 성심성의껏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곤 했다. 이런 모습을 본 아시아팀 담당자가 나를 부르더니 매일 나와서 공부하니까 학생인줄 알았는데 교관이었어? 하면서 그때부터 일본학생들을 점점 배정해주기 시작했다. 교관생활을 끝낼때까지 나를 거쳐간 학생은 15명 정도. 이 중 일본인 학생은 약 6명정도이고 이들 모두가 내 기억에 많이 남지만 그중에 가장 마음이 갔던 학생은 오늘의 주인공 A군이다.


A군은 25살이었는데 일본인 학생치고는 나이가 많은 편이었다. 보통 일본학생들은 직업학교를 통해 오기에 보통 17~18세였고 많아야 20살 근처였기 때문이었다. A군은 일본에서 영업직으로 일을 하다 와서 그런지 성격이 매우 싹싹했다. 그리고 가르치는 족족 흡수했기에 지금 생각해도 정말 최고의 학생이었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고 말하면 혼나겠지? 무엇보다 사회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주변인들과도 급속도로 빨리 친해졌고 비행중에도 뛰어난 스킬을 보여주었기에 A군과의 비행때는 스트레스 하나 없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른 학생들에게도 그랬지만 나는 학생들이 비행을 처음 접할때부터 교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스스로 생각하는 버릇을 가지도록 부던히도 노력했다. 스스로 파악하고 판단하고 의사를 결정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A군은 내 의견에 ‘그것도 좋은데 혹시 이건 어때?’ 하고 말하는 유일한 아시아인 학생이었다. 유일하게 걱정했던 비행이 바로 첫 솔로 크로스컨트리 비행이었는데 학생 혼자서 먼 곳의 공항 두곳에 착륙하고 돌아오는 비행이었다. 보통 일본인 학생들, 아니 아시아 학생들은 영어교신에 취약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비행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은 유튜브같은 곳에서 조종사의 교신을 들어본 적이 있을건데 실제 비행기에서는 그보다는 또렷이 들린다. 하지만 아무리 또렷하다고 해도 우리의 뇌는 영어에 또렷하지 않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이 다시 한번 부럽다. 아무튼, 이 학생은 교신도 참 잘했지만 문제는 그날의 날씨였다. 바람이 생각보다 강해서 아침에 출근할때 오늘 이 학생을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다. 브리핑룸에 도착하니 A군은 미리 와서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심지어 오늘 바람이 강해서 돌아오는 시간대에 만약 못내린다면 다른 공항으로 회항을 하겠다는 계획까지 세우고 모든 계산까지 완벽하게 끝내놓은 상태였다.  내가 졌다. 너는 누구보다 위대한 조종사가 되겠구나. 나중에 Thanks for에 내 이름 넣는거 잊지 말고. 그렇게 학생을 보내고 나는 주구장창 비행기의 항적을 쫓는 어플을 켜놓고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저쪽 공항 가서 착륙하면 나한테 카톡(일본애들이니까 라인) 하나 남겨줘 했더니 말 잘 듣는 A군은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라며 연락을 해왔다. A군은 오후가 되어 모든 비행을 마치고 무사히 귀환했고 나는 육즙 가득한 쉑쉑버거를 사주며 축하를 해 주었다.


A군은 이후에도 모든 시험을 한번에 통과하며 안전하게 훈련을 마쳤고 어느새 일본으로 돌아가는 날이 다가왔다. A군의 귀국 며칠 전 우리는 홈파티를 열었고 많은 사람들과 즐거운 식사를 했다. 시원한 맥주를 마시면서 나는 그에게 질문을 했다.

“너는 왜 조종사가 되고싶니?”

A군은 대답했다. “저는요, 일본에서 영업일을 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녔어요. 비행기도 많이 탔고 운전도 참 오래 했고요. 그런데 어느 날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대로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요. 비행기와 차는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데 그 안에서 나는 멈춰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앞으로 나아가고싶었어요.”

와 얘는 이 대사를 준비한건가 싶을정도로 멋진 말을 들려준 A군은 쑥스러운지 연신 맥주를 홀짝였다. 얘는 참 뭘 해도 되겠구나 느낀 순간이었다.


그 이후에도 나는 교관생활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왜 조종사가 되고싶냐고 물어봤지만 저렇게 멋진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학생들의 다짐이 결코 낮다는건 아니다. 누구에게나 꿈이 있다는 건 대단한거고 미국까지 와서 비행을 하고 있다는 것부터가 멋지게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니까. 그렇게 나도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얼마 전 나는 이 학생들을 만나러 일본으로 갔다. 오사카에서 다시 만난 A군과 다른 학생들은 여전히 꿈을 위해 한발자국씩 나아가고 있었고 이제 곧 모든 자격증을 따고 항공사 입사를 위한 취직활동을 시작한다고 한다. 중간에 멈추지 않고 이렇게 한단계씩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 누군가의 선생님이었던 내 시간이 결고 헛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언제나 학생들과 헤어질 때에 하는 말이 있다.

“하늘에서 만나자”

조종사가 되고싶은 이유는 모두가 다르지만 그 목표는 같기에 우리는 항상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고싶은 내 비행도 이런 것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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